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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인메탈의 부상과 유럽 재무장...한국의 안보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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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라인메탈의 부상과 유럽 재무장...한국의 안보는 어디로 향해야 하는가

전후 평화국가의 독일이 유럽 재무장의 엔진으로 변할 때, 세계 질서의 축은 어떻게 이동하는가
한국이 선택해야 할 3 가지 대응 전략: 자체 억지력 강화, 방산·기술 영역에서 한국의 자율적 설계 능력 확대, 방산 산업의 국가전략의 핵심축화
러시아 위협에 유럽의 국방비가 급증하고 있다. 독일은 28% 증액했고 폴란드는 GDP 4.2%를 투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국가들이 국방비 지출을 사상 최대 규모로 늘리면서 군사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미지=GPT4o이미지 확대보기
러시아 위협에 유럽의 국방비가 급증하고 있다. 독일은 28% 증액했고 폴란드는 GDP 4.2%를 투입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국가들이 국방비 지출을 사상 최대 규모로 늘리면서 군사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이미지=GPT4o

근래 들어 독일의 방산업체인 라인메탈이 보여주고 있는 폭발적 성장은 트럼프 미 행정부의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에 대한 방위비 증액 요구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겹치면서 독일이 전후 평화국가에서 유럽 재무장의 엔진으로 변신했다는 것을 뒷받침하는 상징적인 사례로 평가 받는다.

이 글은 미 워싱턴포스트지가 12월7일 보도한 독일 방산업체 라인메탈의 급성장과 유럽 재무장 흐름에 관한 기사를 바탕으로 그 사실 관계를 정리하는 동시에 이것이 국제 질서에서 갖는 구조적 의미와 한국의 안보와 국익에 대한 함의, 그리고 우리가 선택해야 할 대응 전략을 심층 분석한 것이다.

전후 평화국가에서 유럽 재무장의 중심으로


독일은 오랫동안 전쟁 책임과 평화주의를 정체성으로 삼아 군사적 절제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 전제를 무너뜨렸다. 독일은 대규모 국방 재건을 선언했고, 트럼프가 나토 회원국에 방위비 증액을 요구하면서 재무장은 더욱 가속됐다. 이 두 흐름이 포개지며 라인메탈은 유럽 재무장의 상징적 승자로 부상했다. 한때 냉전의 유물로 여겨지던 이 기업은 유럽 최고 가치의 방산 기업으로 도약했고, 이는 전후 독일의 평화주의가 해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트럼프의 압박이 촉발한 독일 중심 군사 생태계


트럼프의 논리는 동맹의 공정 분담이었지만, 실제 효과는 유럽 각국이 군사 재무장을 정당화할 명분을 제공한 것이었다. 독일은 이미 침공 이후 방위비를 대폭 확대한 상황에서 트럼프의 요구를 추가 추진력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유럽은 라인메탈 같은 기업들과 장기 계약을 체결했고, 독일은 육상 전력과 탄약 생산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 부담 감소처럼 보이지만, 구조적으로는 독일의 방산 주도권 확대라는 역설적 결과가 나타났다.

라인메탈이 장악한 유럽 억지력 공급망


라인메탈 성장의 핵심은 실전 수요와 구조적 수요가 맞물린 점이다. 러시아 침공 이후 라인메탈은 포탄과 장갑차를 대량 생산하며 우크라이나에 즉각 공급했다. 동시에 나토는 장기 억지력 유지를 위해 탄약 비축을 확대하고 있어 생산 라인은 멈추지 않는다. 전쟁이 끝나더라도 평화 유지를 위한 재고 확보라는 명분은 지속적 수요를 만든다. 이로써 라인메탈은 유럽 포병·전차 탄약 공급의 핵심 축이 되었고, 유럽은 한 기업에 대한 의존도를 높일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동하고 있다.

전후 질서의 균열과 독일 군사 국가화의 귀환


라인메탈의 이 같은 부상은 단순한 산업 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전후 유럽 질서 자체의 균열을 의미한다. 독일의 군사적 자제는 더 이상 유지되지 않으며, 유럽은 미국의 최종 보호자 역할에 대한 불신 속에서 전략적 자립을 도모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독일은 재정력을 바탕으로 전력 생산의 중심을 차지했고, 전후 독일을 제한된 군사 국가로 묶어 두던 구조적 장벽은 조용히 해체되고 있다.

유럽 방산의 분열과 독일 집중의 위험

유럽의 방산 통합은 프랑스가 오랫동안 추구해 왔으나 정치적 이견과 재원 문제로 큰 틀에서 진전하지 못했다. 그 사이 독일은 자본과 생산 능력에서 우위를 점하며 육상 전력 공급망을 사실상 장악했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유럽 억지력 복원을 빠르게 만들지만, 장기적으로는 한 기업·한 국가에 대한 과도한 집중이라는 취약성을 내포한다. 프랑스와 독일의 견해차는 유럽 방위 체계의 균열을 상징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한국 안보에 드러나는 세 가지 구조적 함의


첫째, 유럽 재무장은 미국의 전략적 여지를 넓힌다. 유럽이 자체 방위를 강화하면 미국은 서반구와 중국 견제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할 수 있다. 이는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선택적 개입 가능성을 키운다.

둘째, 세계 방산 시장은 한층 경쟁적으로 변한다. 유럽 방산 업체가 역내 수요를 흡수한 뒤 해외 시장으로 확장할 경우, 한국 방산 기업은 고전할 수 있다. 동시에 유럽의 장기 계약으로 글로벌 생산능력이 잠식되면 한국이 전시에 외부 조달을 받기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셋째, 억지력의 논리가 달라지고 있다. 유럽은 러시아 재침 가능성을 전제로 장기 재무장을 선택했다. 한반도도 북한과 중국을 상수로 놓은 억지력 재설계가 필요하다. 평화를 전제로 한 전략은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

한국이 선택해야 할 대응 전략


첫째, 연합 억지력 의존을 줄이고 자체 억지력을 강화해야 한다. 탄약·유도무기·장갑전력 등 장기전 자원은 국내 생산 기반을 갖춰야 한다.

둘째, 동맹의 비대칭을 완화하기 위해 방산·기술 영역에서 한국의 자율적 설계 능력을 확대해야 한다.

셋째, 방산 산업을 국가전략의 핵심 축으로 재배치해야 한다. 공급망을 쥔 국가는 외교·안보에서 발언권을 가진다.

현실주의 세계의 귀환 앞에서 한국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독일 라인메탈의 부상은 유럽 재무장의 새로운 시대를 알리는 신호이자 전후 질서의 종언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각자도생의 현실주의가 돌아오는 세계에서 한국은 스스로 억지력과 방산 능력, 동맹 전략을 다시 설계해야 한다. 변화가 우리를 선택하기 전에, 우리가 먼저 선택해야 한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