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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비명, 방산의 축포...서방 군산복합체 '황금기' 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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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의 비명, 방산의 축포...서방 군산복합체 '황금기' 구가

SIPRI "세계 방산 매출 사상 최고"... 獨 라인메탈 등 '전쟁 특수' 톡톡
러-북 '전시경제' 올인하는데...韓, 비핵-재래식 착시에서 깨어나야
최근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난 4년 간 독일을 포함한 서방의 방산 기업들의 매출을 급증시켰으며 2024년 한 해에 걸친 세계 주요 방산기업들의 무기와 군사 서비스 매출이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이미지 확대보기
최근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난 4년 간 독일을 포함한 서방의 방산 기업들의 매출을 급증시켰으며 2024년 한 해에 걸친 세계 주요 방산기업들의 무기와 군사 서비스 매출이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고 분석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독일 국제뉴스 방송사 도이체벨레(DW)는 12월1일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분석을 바탕으로, 우크라이나 전쟁이 독일을 포함한 서방 방산기업들의 매출을 급증시켰다고 분석한 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의 연례 보고서의 데이터를 제시했다.

전쟁은 비극이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기록적 호황이 된다


SIPRI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세계 주요 방산기업들의 무기와 군사 서비스 매출은 사상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전해에 비해 물가를 감안한 증가율도 뚜렷했다. 우크라이나 전쟁과 가자지구 전쟁, 그리고 이에 대응한 각국의 군비 증강이 이 상승세를 이끌었다.

구도를 단순하게 나누어 보면 한 가지 아이러니가 드러난다. 미국 방산기업들은 여전히 전 세계 매출의 절반가량을 차지하지만 성장 속도는 비교적 완만하다. 반면 러시아를 제외한 유럽 기업들의 매출은 미국보다 빠른 속도로 늘어났고, 그 안에서도 독일 기업들은 두드러진 증가세를 보였다. 러시아 방산기업들은 제재로 인해 수출은 줄었지만 국내 군수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전체 매출을 크게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의 포탄 생산량은 불과 몇 해 사이에 여러 배로 뛰어올랐다.

아시아의 방산 매출 감소는 전쟁이 줄어들어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에서 비롯되었다. 중국 방산업계를 겨냥한 대규모 부패 수사가 이어지면서 굵직한 무기 도입 사업들이 취소되거나 미뤄졌기 때문이다. 중동과 이스라엘 방산기업들은 드론과 방공 무기 수요에 힘입어 오히려 두 자릿수에 가까운 성장세를 기록했다.

이 모든 흐름을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렇다. 우크라이나의 참호전과 가자지구의 폐허가 세계 군산복합체의 황금기를 떠받치는 기둥이 되었다는 것이다. 전쟁경제는 사람과 도시의 파괴를 비용으로 삼아, 세계 방산기업의 손익계산서를 부풀리고 있다.

러시아 전시경제와 서방 군산복합체가 서로를 키우는 구조


도이체벨레의 보도와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데이터가 함께 보여주는 또 하나의 그림이 있다. 러시아와 서방 군산복합체가 서로를 적대하면서도 동시에 키워주는 묘한 공진화 관계에 들어섰다는 점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경제를 사실상 전시경제로 전환했다. 포탄과 전차, 미사일과 무인기 생산을 극적으로 늘리고 공장을 밤낮 없이 돌리며 군수 분야에 인력과 재정을 집중 투입했다. 항공기 전자장비 같은 수입 부품이 부족해지는 제재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러시아는 생산 능력과 전쟁 지속 능력을 되레 끌어올렸다.

서방은 러시아 침공에 대한 방어라는 명분을 내세워 자국 방산산업의 재가동과 생산라인 확대, 신규 공장 건설을 정당화하고 있다. 독일 라인메탈이 새 포탄 공장을 세우고 발트해 인근 국가들에 방산 생산기지가 잇따라 들어서는 모습은 그 상징적인 장면이다.
이 구조가 고착되면 전쟁이 끝난 뒤에도 쉽게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이 양측 모두에게 만들어진다. 러시아는 전시경제로 너무 멀리 가 버려 평시경제로의 회귀가 어렵고, 서방은 방산 일자리와 수출, 주가에 얽힌 이해관계 때문에 군비 감축을 정치적으로 꺼내기 힘들어진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숫자는 바로 이런 전쟁에 길들여진 경제 구조를 눈으로 확인시키는 통계다.

독일은 복지와 녹색 전환에서 군사와 탄약 전환으로 기우는가


도이체벨레 보도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독일 방산기업의 폭발적인 성장이다. 독일 주요 방산업체들의 매출은 짧은 기간에 크게 늘어났고, 라인메탈은 전차와 장갑차, 탄약 부문에서 기록적인 실적을 냈다. 디엘이 수주한 포탄 계약은 회사 역사에서 손꼽히는 규모에 이르렀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은 절제된 군비와 두터운 사회복지, 녹색 에너지 전환의 모델 국가를 자처해 왔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전투 가능한 독일과 차세대 연방군 구축 같은 구호가 다시 등장하면서, 방위비 증액과 방산기업 호황이 맞물리는 새로운 축이 형성되고 있다.

이는 단지 예산 항목의 변화만을 뜻하지 않는다. 독일과 유럽의 경제와 사회 모델이 복지와 환경, 평화에서 군비와 방위, 동맹 충성으로 서서히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음을 보여 준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길어질수록 이 전환은 더 굳어지고, 그 중심에는 독일과 미국, 프랑스의 방산 대기업들이 자리 잡게 된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 준 최종 변인은 탄약과 생산능력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몇 해째 이어지는 동안 세계가 가장 뼈저리게 확인한 사실이 하나 있다. 장기전에서 진짜 결정력은 화려한 첨단 무기나 고급 플랫폼이 아니라 탄약과 생산능력이라는 점이다.

서방은 러시아보다 훨씬 큰 경제 규모와 높은 기술력을 갖고 있지만 포탄 생산 능력에서 러시아를 따라잡지 못한 채 시간을 허비했다. 유럽이 일 년에 만들 분량을 러시아가 몇 달 만에 찍어 낸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스텔스 전투기와 정밀 유도무기가 아무리 많아도 결국 전쟁을 지속시키는 것은 값싸고 대량 생산이 가능한 포탄과 탄약이다.

이 교훈은 한국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반도에서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그것은 고강도의 탄약과 미사일 소모전이면서 동시에 장기 소모전이 될 수밖에 없다. 위기 상황이 닥치면 미국과 유럽은 우크라이나와 중동, 대만 등 다른 전장에도 탄약을 공급해야 한다. 한국에 사실상 무한대에 가까운 물자 지원이 보장되어 있다고 가정하고 전략을 짜는 것은 위험하다.

따라서 한국은 수입에 의존하는 현대식 연합군이라는 발상을 넘어서야 한다. 포탄과 미사일, 무인기와 레이더, 방공 체계의 자체 생산능력을 전시 기준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그러나 이 모든 재래식 전력의 보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문제가 하나 남는다. 상대가 핵무기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체제를 이미 굳혀 버렸다면 재래식 수단만으로 완전한 억지와 방어를 설계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핵 없이도 대응할 수 있다는 믿음은 왜 착시가 되는가


북한은 이미 상당한 수의 핵탄두를 보유한 상태에서 전술핵과 장거리 순항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초대형 방사포, 각종 무인기 전력을 겹겹이 쌓아 올리고 있다. 여기에 더해 최근에는 노후 공격기에 공중발사 순항미사일을 매단 모습을 공개하며 스탠드오프 타격 능력을 과시했다.

그럼에도 한국 내부의 논의는 여전히 재래식 전력을 더 정교하게 만들고 미사일 방어를 강화하며 삼축 체계를 업그레이드하면 핵이 없어도 버틸 수 있다는 가정에 기대는 경우가 많다. 얼핏 보면 합리적이고 책임 있는 접근처럼 보이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수치, 러시아와 북한의 전시경제 전환을 함께 놓고 보면 이 발상은 핵심 변수를 지운 채 세운 반쪽짜리 억지론에 가깝다.

핵을 가진 상대는 재래식 전투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언제든 핵 위협을 마지막 카드로 꺼낼 수 있다. 비핵국은 그 순간부터 동맹의 핵우산과 타국 지도자의 결심에 자신의 생존을 맡겨야 한다. 상대는 전시경제를 통해 장기전을 준비하는데 우리는 정치와 여론, 경제적 부담 때문에 짧고 결정적인 전쟁만을 상정하는 전략에 머물게 된다.

핵을 가진 상대가 재래식과 핵 전력을 동시에 증강하는 상황에서 비핵국이 재래식 전력과 동맹 조합만으로 완전한 억지를 달성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결국 착시다. 이것이 이 글이 던지는 핵심 경고다.

한국의 대전략에서 자체 핵무장 논의는 더 이상 금기가 될 수 없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통계와 도이체벨레의 보도는 결국 한국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세계는 이미 전쟁경제와 군산복합체의 구조적 황금기 속으로 들어섰다. 러시아와 북한은 전시경제와 핵 전력, 재래식 전력을 복합적으로 엮어 버티는 전략을 택했다. 미국과 유럽은 자유주의와 인권을 이야기하면서도 방산산업과 군비 확대에 더 깊이 기대는 현실을 피하지 못한다. 이 한복판에서 한국은 유일한 비핵 당사자로 남아 서방 군산복합체의 핵심 고객이자 최전방 실험장이 될 위험을 짊어지고 있다.

이 상황에서 한국이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대전략은 무엇인가.

이 글이 서 있는 관점에서, 그리고 그동안 제기되어 온 문제의식을 고려하면 답은 분명하다. 한국은 첫째로 글로벌이코노믹이 2023년부터 국가적 의제로 주도해온 독자 핵무장 능력 확보를 중장기 국가전략 목표로 분명히 설정해야 한다. 둘째로 이를 뒷받침할 전시 수준의 방산과 탄약, 미사일, 핵연료 주기 산업 기반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셋째로 그 위에서 미국과 일본, 유럽과의 동맹과 기술, 산업 협력을 핵보유를 전제로 다시 설계해야 한다.

핵억지력의 주도권을 다른 나라에 온전히 맡기는 구조를 유지한 채로는 한국이 북한과 중국, 러시아, 미국, 일본이 얽힌 동북아 핵질서에서 대칭적인 행위자로 서기 어렵다. 한국이 비핵 상태에 머무는 한, 재래식 전력을 아무리 업그레이드하고 동맹을 강화하더라도 전략적 종속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근본적으로 바꾸기는 힘들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표 한 장이 던지는 마지막 질문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표와 그래프는 얼핏 방산기업 매출 순위를 보여주는 숫자에 불과해 보인다. 그러나 그 뒤에는 누가 전쟁으로부터 이익을 얻는지, 어떤 나라가 전쟁경제를 선택했는지, 비핵국은 어떤 구조적 한계에 갇히는지라는 질문이 숨어 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에서 계속되는 파괴가 세계 군산복합체의 호황으로 이어지는 지금, 한국이 할 일은 우리도 방산 수출을 늘리고 포탄 공장을 지어 성장 기회를 잡자는 수준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이 아니다.

핵무기 대량생산 시스템과 재래식 전쟁경제를 동시에 구축해 가는 북한을 바라보면서 동맹과 재래식 삼축 보완만으로 충분하다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이미 전략 현실과 어긋난 자기 위안일 수 있다는 점을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의 통계표는 결국 한국에게 조용하지만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전쟁경제와 핵질서가 재편되는 이 시대에 한국은 여전히 비핵과 재래식 보완책에만 의지하는 마지막 비핵 국가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스스로의 억지 구조와 국가전략을 새로 설계할 것인가.

이 질문에 답을 미루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한국이 손에 쥘 수 있는 선택지는 더 좁아지고, 주변의 군산복합체와 핵보유국들이 대신 대답해 버릴 여지는 더 넓어질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