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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AUKUS가 바꿔놓은 세계 전략지형의 새로운 중력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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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교관의 글로벌 워치] AUKUS가 바꿔놓은 세계 전략지형의 새로운 중력 중심

미중 패권 경쟁의 판도와 한국의 안보·국익이 마주한 전략적 분기점
존 힐리 英 국방장관의 기고문으로 드러난 자유주의 동맹들의 미래와 한국이 선택해야 할 다음 단계
호주·미국·영국 3국이 30년 동안 총 3680억 호주달러(약 340조 원)를 투입해 핵추진 잠수함 동맹 'AUKUS(오커스)'를 추진한다. 이미지=GPT4o이미지 확대보기
호주·미국·영국 3국이 30년 동안 총 3680억 호주달러(약 340조 원)를 투입해 핵추진 잠수함 동맹 'AUKUS(오커스)'를 추진한다. 이미지=GPT4o

AUKUS, 잠수함 협력이 아닌 세계 권력 구조 재편 출발점


미국의 정치 매체인 더힐지에 12월11일 게재된 존 힐리 영국 국방장관의 기고문은 미국, 영국, 호주 3국 간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정을 위해 2021년 창설된 삼각 안보 파트너십인 AUKUS가 이들 세 나라가 새로운 방위 동맹을 확장하겠다는 선언을 넘어, 국제질서가 어떤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으며 미국과 영국이 어떤 전략적 선택을 이미 끝내 놓았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임을 보여준다. 미국과 영국은 대 중국 견제를 최우선 전략 목표로 추구한다는 데 합의했고 호주는 그 중심축으로 편입됐다. 이 조합은 단순한 기술 협력이 아니라 인도-태평양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전략 질서를 규정하는 출발점이다.

AUKUS의 의미는 미국이 혼자 세계를 떠받치는 시대가 끝나가고 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확인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미국은 기술과 핵심 전력의 통제권을 유지하면서도 필요 부분에서는 동맹국에게 기능을 분담시키는 방식을 선택했다. 힐리 장관이 말한 “모두가 전력 질주하고 있다”는 표현은 바로 이 전략 분업 체계의 본격 가동 선언이다. 그러나 이 선언은 한국에게도 중대한 함의를 가진다. 미국의 자원 배분과 전략 우선순위가 미세하게 변화하는 순간 한국의 안보 구조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미중 경쟁의 본질 해양 지배 경쟁, AUKUS 중국 전략적 숨통 직접 겨냥


중국이 가장 취약한 지점은 핵추진 공격잠수함에 대한 대응 능력이다. 중국 해군은 아직 대잠전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 AUKUS가 제공하는 잠수함 전력 결합은 중국의 약점을 정확히 겨냥한다. 호주는 인도양과 남태평양을 연결하는 넓은 바다를 미국과 함께 통제하게 되고 영국은 북대서양과 북극해에서 미국의 부담을 상당 부분 나눠 가진다. 이 조합은 중국이 해군력의 확장과 해상 교통로 보호 전략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결정적 압박이 된다.
기술 협력 범위는 잠수함을 훨씬 뛰어넘는다. 양자기술, 자율무기, 고에너지 무기, 극초음속 전력, 지휘통제 통합 체계 등 모두가 중국의 반접근 전략을 무력화시키는 요소들이다. 이는 중국에게 기존 전략적 심장부가 더 이상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위기 인식을 주고, 중국의 군사 행동을 더 조기적이고 더 공격적으로 만들 가능성을 높인다.

이 구조적 압박은 결국 한국의 안보 환경에도 깊숙이 들어온다. 한반도 주변에서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간격이 좁혀질수록 위기 조정의 시간이 줄어들고 오판의 위험은 배가된다.

미국 동맹 구조 재편 속 한국 전략적 위치 재정의돼


AUKUS는 미국이 특정 기능을 특정 동맹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동맹 구조를 재설계하겠다는 신호다. 이는 미국이 더 이상 모든 지역, 모든 전력을 스스로 부담하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흐름은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미국은 한국에게 기존의 단순 수동 방위 역할이 아니라 동북아 안보에서 특정 기능을 분담시키는 방향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대잠전 능력, 미사일 방어, 핵심 통신망, 극초음속 요격 기술 같은 영역이 요구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이 구조 속에서 전략적 주도권을 확보하려면 단순한 수용자가 아니라 구조 설계에 부분적으로 참여하는 국가가 되어야 한다. 이는 확장억제를 실질 체계로 끌어올리는 문제와 직결된다. 단순한 선언적 핵우산으로는 부족하다. 핵작전 기획, 목표 선정, 전략자산의 상시 운용, 핵 사용 시 연합작전 개념 등을 한국이 직접 제도권 안에서 다루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일본과의 협력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될 가능성이 높다. 동북아의 안전판을 구축하려면 한미일의 기술과 정보, 작전 체계를 긴밀히 연동해야 한다. 이는 감정이나 역사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중국의 반작용과 북한의 전략적 대담성이 한국에 구조적 압박 가해


AUKUS는 중국에게 해양에서의 전략적 공간을 잃는다는 신호이고 중국은 필연적으로 이 지역에서 더 강한 반응을 보일 것이다. 경제 보복은 물론 군사적 압박도 강화될 수 있다. 중국은 한국을 미중 경쟁의 완충지대가 아니라 시험대로 활용하려 할 가능성도 높다.

북한의 행동 역시 변한다. 중국이 압박받을수록 북한은 더 큰 전략적 가치를 갖게 되고, 이는 북한의 대남 공세적 행동을 자극할 수 있다. 북한이 전략적 대담성을 높이면 한국은 남북 경계선부터 서해와 동해까지 전방위 압박을 동시에 받게 된다. 이 상황에서 기존의 안보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위험하다.

한국 확장억제의 재설계, 기능 기반 동맹 참여, 장기 핵억지력 검토해야

한국은 먼저 확장억제를 선언적 장치에서 실질적 억제 체계로 바꿔야 한다. 구체적인 핵 기획 참여와 핵 작전 협력 절차를 제도화해야 한다. 또한 한미일 협력 구조를 AUKUS와 기능별로 연결하여 동북아판 AUKUS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는 한국이 단순히 미국의 전략을 소비하는 나라가 아니라 전략 구조의 일부를 구성하는 나라가 되는 과정이다.

장기적으로는 한국의 독자 핵억지력 구축 문제를 전략 차원에서 검토할 필요가 있다. AUKUS가 보여준 현실은 동맹국 간 핵 공유와 기술 이전이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이 더 이상 모든 지역을 지켜줄 수 없다는 점이 분명해진 이상, 한국은 국가 생존을 위해 독자 억지력 옵션을 배제할 수 없다.

AUKUS는 동맹 시대 확대 동시에 국가 자율 억지 시대 열어


힐리 장관은 AUKUS를 동맹이 강화되는 시대라고 표현했지만 실제로 그 문장 속에는 동맹의 성격이 변하고 있다는 냉혹한 현실이 숨어 있다. 동맹이 강화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각국은 스스로의 안보와 억지력을 이전보다 훨씬 더 책임지는 구조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한국이 이 같은 변화에서 선택해야 할 길은 명확하다. AUKUS가 호주의 대 중국 핵 억지력 강화를 지원하고 있다는 점에서 중국과 북한, 러시아의 핵 위협이 점증하고 있고 미국의 확장 억지가 불안정해지고 있는 만큼 한국도 미국의 안보 제공에 안주하는 '수동적인 안보 소비국'에서 벗어나 자체 핵무장을 목표로 한 '능동적인 억지력 구성국'으로 이동해야 한다.

AUKUS가 제시한 질문은 결국 한국에게 이렇게 귀결된다. 한국은 동북아 전략 질서를 설계하는 국가가 될 것인가, 아니면 변화한 질서에 의해 끌려가는 국가가 될 것인가. 그 선택의 시간이 더는 멀리 남아 있지 않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