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협상'과 나토의 '경고'...우크라 종전 모델은 한반도의 미래
美 개입 약화될 때 스스로 지킬 힘 있나...'3중 억지 구조' 구축 시급
美 개입 약화될 때 스스로 지킬 힘 있나...'3중 억지 구조' 구축 시급
이미지 확대보기전쟁의 언어가 바뀌는 순간
나토 사무총장 마르크 루터가 베를린 연설에서 밝힌 메시지는 짧지만 국제 질서의 구조적 변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과 유럽이 하나의 평화 구상을 합의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이 진정으로 평화를 원하는지 시험하게 될 것이라는 언급은, 사실상 전쟁의 군사적 국면과 외교적 국면이 분기점을 넘었다는 의미다. 유럽의 전쟁이지만 미중 전략 경쟁이 관여하고 있으며, 미국 국내 정치와 중국의 역할까지 결합된 새로운 국제 정치의 규칙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이 규칙은 한반도와 한국의 안보에도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푸틴을 시험한다는 말의 진짜 뜻
루터는 푸틴이 평화 중재자의 모습을 취할 때는 전쟁 준비를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함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과 유럽이 하나의 평화안을 만들고 푸틴에게 선택을 요구한다면 그의 진정성을 검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푸틴 개인의 선택을 떠나 유럽과 미국 내부의 결속, 전쟁 이후의 질서 재편, 러시아의 전략적 의도까지 동시에 시험하는 구조다.
실제로 시험대에 오르는 것은 러시아만이 아니다. 미국과 유럽이 전략적 언어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는지, 중국이 러시아의 장기전을 어떻게 뒷받침할지, 전쟁이 종전 국면에 들어갔을 때 새로운 세력 균형이 어떻게 형성될지 모두 검증되는 것이다.
트럼프식 조건부 평화 모델의 등장
루터는 트럼프가 우크라이나에서의 유혈 사태를 지금 끝내려 한다고 말하며 그만이 푸틴에게 실질적 협상 압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의 평화 구상은 기존 자유주의 국제주의가 강조하던 원칙과 규범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명분보다 비용을 계산하고, 절대적 승리보다 봉합 가능한 타협을 중시하는 현실주의적 협상 모델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제시한 초기 평화안은 러시아가 점령하지도 못한 영토를 우크라이나가 양보하는 내용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이를 유럽과 우크라이나가 정치적으로 수용할 수 없다고 반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동시에 그 안이 향후 협상의 틀로 작동할 가능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 구조가 확립되면 한반도 역시 미국의 조건부 개입과 비용 중심의 위기 관리 모델의 적용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자유주의 패권 전략의 후퇴와 현실주의 세력균형론의 부상
우크라이나 전쟁은 자유주의 국제 질서가 강조하던 영토 보전과 규범, 국제법 존중이라는 가치가 전쟁의 고통, 재정 압박, 동맹 내부의 피로 앞에서 후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유럽은 재무장을 위해 사회 복지와 재정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있으며, 미국은 무제한 개입 대신 전략적 선택과 자원 배분을 강조하고 있다. 한국은 자유주의 패권 전략이 약화될 때 어떤 국제 정치적 진공이 발생하는지, 그리고 그 진공을 어느 세력이 채울지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도달했다.
중국을 러시아의 생명선으로 규정한 메시지
루터 총장은 중국을 러시아 전쟁 수행의 생명선이라고 규정했다. 중국은 중립을 자처하지만 제재 회피, 기술 이전, 교역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러시아의 장기전을 뒷받침하고 있다. 나토가 이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은 유럽이 중국을 단순한 경제 파트너가 아니라 구조적 위협 요인으로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다.
한국은 이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다.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 정밀 소재는 미국과 유럽이 중국을 압박할 때 전략적 자산이 되며, 동시에 중국은 한국 경제의 핵심 파트너이기도 하다. 중국이 러시아를 뒷받침하는 방식은 한국에 대한 경제적 압박과 기술 종속 방식을 통해서도 반복될 수 있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안보 정책은 더 이상 산업 정책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의 핵심 요소로 전환돼야 한다.
우크라이나 점령 시나리오와 신(新)유럽안보 구조의 형성
루터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를 점령한 상태에서 전쟁이 봉합되면 나토의 안보 비용과 방어 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럽은 결국 전시 경제에 가까운 재무장 체제를 구축해야 하고, 미국은 그 부담의 상당 부분을 유럽에 전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이 유럽의 방위를 유럽에 맡기기 시작하는 순간, 미국의 군사적 의지는 인도·태평양으로 이동하게 되며, 이때 한국과 일본의 부담은 더욱 커진다. 이 구조에서는 한반도의 초기 분쟁 대응은 한국 자체의 역량이 좌우하게 된다. 미국은 핵 억제의 상층을 담당하되, 재래식 전력과 병참, 동원 체계는 한국이 직접 책임지는 구조가 굳어질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직면한 세 가지 구조적 위험
한국 안보의 현실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투영하여 세 가지 구조적 위험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조건부 개입 시대의 도래가 될 것이다. 미국은 전 세계 모든 분쟁에 무제한 개입할 수 없다. 미국 국내 정치, 군사력 배분, 재정 압박 속에서 개입 여부는 점점 더 조건부가 된다. 이는 동맹국이 전쟁의 초기 국면을 스스로 버텨야 한다는 의미다.
두 번째는 장기전의 완충지대가 될 위험성이다. 한국은 지정학적으로 장기전의 전장이 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중국과의 전면 충돌을 피하면서도 견제를 지속하는 구조에서는, 한반도 위기가 부분적 충돌과 휴전이 반복되는 회색지대 전쟁 형태로 지속될 위험이 있다.
세 번째는 억제 실패 시의 치명적 비용일 것이다. 한국의 억지력 부족은 곧바로 국민 생명, 경제 자산, 도시 기반 시설 전체가 파괴될 위험으로 이어진다. 이는 유럽 국가보다 훨씬 높은 비용을 의미한다.
한국이 구축해야 할 3중 억지 구조
첫 번째는 확장억지의 실질적 강화다. 단순한 선언이 아니라 핵·미사일 운용계획을 공동 기획하고, 전략자산 전개를 정례화하며, 위기 시 실행 가능한 핵 대응 메커니즘을 명문화해야 한다.
두 번째는 전술핵 재배치나 핵 공유 구조다. 이 단계는 미국의 최종 통제권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이 억지력 설계의 일부가 되는 과도기적 모델이다. 일본과의 공동 기획을 포함한 핵 공유 논의는 미중 경쟁의 현실 속에서 전략적 실리를 제공한다.
세 번째는 조건부 독자 핵무장 옵션 확보하는 것이다. 이는 단번의 탈퇴가 아니라 기술적·정책적 준비를 통해 전략적 선택지를 확보하는 과정이다. 핵연료 주기 완성, 재처리와 농축 역량의 강화, 민수 기술 기반 확대는 핵무장 자체까지는 달성하지는 못하더라도 핵무장 능력의 존재를 높임으로써 이에 따른 억지력을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우크라이나 종전 모델이 한반도에 주는 경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 방식은 향후 한반도 위기 관리의 선례가 된다. 한국은 다음의 세 가지 외교 전략을 병행해야 한다.
첫 번째는 유럽과의 전략 대화를 강화해 나쁜 선례를 차단하는 것이다. 영토 양보와 분단 고착이 하나의 옵션으로 정당화되면, 북한과 중국은 이를 한반도에 적용하려 할 것이다. 한국은 유럽과의 전략 대화를 통해 두 전장에서의 위험을 공유하는 외교적 방화벽을 구축해야 한다.
두 번째는 한국의 기술·산업 자산을 협상 지렛대로 전환하는 것이다. 미국과 유럽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한국의 반도체와 배터리를 필요로 한다. 한국은 그 대가로 더 강력한 확장억제 보장과 핵 기획 참여를 요구해야 한다.
세 번째는 하이브리드 전쟁 대비를 국가 전략으로 격상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사이버 공격과 정보전은 이미 한반도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유럽의 대응 체계를 한국의 국가 안보 체계에 통합해야 한다.
우크라이나 평화안은 한국의 억지 구조의 미래다
루터의 언급은 단순한 제안이 아니라 새로운 국제 질서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다. 트럼프식 조건부 개입, 유럽의 재무장, 중국의 생명선 역할, 러시아의 장기전 전략이라는 요소는 모두 한반도와 직결된다. 한국은 더 이상 남이 설계한 평화 구조 속에서 수동적 존재로 남을 수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한국은 스스로 평화를 설계할 힘을 갖추고 있는가. 그리고 더 이상 다른 나라의 시험장이 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이 곧 한국의 생존 전략이 될 것이다.
이교관 글로벌이코노믹 대기자 yijion@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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