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산림청 국립수목원이 도심 속 생물다양성을 높이고 정원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 선보여 온 보급형 모델정원의 하나다. 6월 경남 진주시 초전공원에서 열린 대한민국 정원산업 박람회에서는 여러 생명체가 흙과 돌, 썩은 나무 사이에서 공존하는 ‘서식처 정원(habitat garden)’을 선보인 바 있다. 기후 적응형 정원 조성과 관리는 앞으로 더욱 요구될 수밖에 없는 생존 과제다.
◇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정원 부상
올해 5월 영국에서 열린 영국왕립원예협회(RHS) 첼시플라워쇼에서 디자이너 매슈 버틀러(Matthew Butler)와 조시 파커(Josh Parker)는 ‘미래의 정원(Garden of the Future)’을 조성해 ‘작은 쇼 가든(Small Show Gardens)’ 부문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심각한 날씨 변화를 겪는 전 세계 농부들을 생각해 빗물 수확 시스템을 갖춘 정원에 기후 회복력이 강한 채소를 심고 다채로운 꽃을 더해 ‘키친 가든’이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톰 매시(Tom Massey)와 제 안(Je Ahn)이 디자인해 ‘쇼 가든’ 부문 금메달을 받은 ‘아바네이드 인텔리전트 가든(Avanade Intelligent Garden)’은 나무의 성장, 수액 흐름, 토양 상태, 공기 질과 날씨의 패턴을 추적할 수 있는 인공지능(AI) 센서를 설치했다.
폭염과 집중호우, 미세먼지, 생물다양성 감소 등 복합적 기후위기로 인해 정원은 단순 녹지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미기후(微氣候)를 조절하고 주민 건강을 회복시키는 동시에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 공간으로 주목받고 있다. 유럽연합(EU)은 자연 기반 해법으로 정원을 활용 중이다. 바람길을 조성해 도시 열섬을 완화하고, 정원에 가변형 그늘 구조물을 만들고, 주민이 참여해 빗물을 수집하는 한편 토착종과 야생동물의 서식지를 확대하고 있다.
◇ 생활권 도시숲, 국가 차원에서 네트워크해야
도시숲은 도심 열섬현상을 완화할 수 있는 확실한 녹색 해법이다. 도시화, 기후위기, 국민건강 증진 등 생활권 도시숲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국내에서는 2003년부터 양적 확대를 목표로 대규모 유휴 공간을 중심으로 도시숲 조성사업이 추진돼왔다. 1인당 생활권 도시숲 면적은 2007년 7㎡에서 2023년 14.07㎡로 확대됐다. 그러나 대규모 생활권 단위로 사업이 진행되다 보니 마을 특성을 반영한 소규모 주민 쉼터와 녹지공간 구성에 한계가 드러났다. 극한 이상기후에 취약한 계층·지역을 위한 사업도 추가로 발굴이 필요한 실정이다.
국내의 단절된 녹지를 연결해 생물다양성을 보존하고 기후 탄력성을 확보하려면 싱가포르의 파크 커넥터 네트워크(PCN·Park Connector Network)를 우리 실정에 맞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PCN은 싱가포르 도시 곳곳의 공원과 자연보호구역을 연결하는 보행자·자전거 친화형 녹지 네트워크다. 2025년 현재 300㎞가 조성된 가운데 싱가포르국립공원청(NParks)은 500㎞ 이상의 네트워크 구축을 최종 목표로 삼고 있다.
국내에서는 도시숲, 둘레길, 바람길숲이 전국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연결은 부족하다. 국토 차원에서 공원·하천·산림·도시숲을 연결하는 네트워크 전략이 필요한 이유다. 지역별로 조각난 숲길을 국가적 네트워크 브랜드로 묶고 기후위기와 돌봄, 관광 등 다층적 목표를 통합하는 총괄 거버넌스도 필요하다. 단순히 도시숲을 조성하는 데 그치지 말고 치유·돌봄 프로그램과 연계시키고 고령층과 아동, 장애인 등을 위한 맞춤형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 민간과 기업의 참여를 이끌어 지역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경제적 효과를 꾀해야 한다.
◇ 녹색치유 위한 체계적 정책 마련 시급
영국과 미국은 자연과 녹지의 치유 효과를 활용하는 이른바 ‘녹색처방(Green Prescription)’을 통해 국민 건강을 챙기고 있다. 특히 우울증 등 만성질환자가 녹지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면 의료비용 지출과 의약품 처방이 감소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영국과 미국은 기존 보건의료체계와 연동된 방식으로 녹색처방을 하고 있다. 전 국민 대상의 국민건강보험을 갖춘 한국은 보건의료 분야와 공원녹지 분야 관련 기관이 함께 체계적 정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내 도심권 숲은 산림휴양과 치유 등 산림복지서비스 면에서 더욱 확충될 전망이다. 국민 수요에 맞는 인프라를 갖추고 접근성과 형평성을 높이는 것이 관건이다. 숲해설가와 산림치유지도사 등 산림복지서비스 전문업 종사자들이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는 환경도 마련돼야 할 것이다.
◇ 정원 열풍, 정원박람회, 지역 브랜드 전략으로
국내 정원은 국가정원 2곳, 지방정원 14곳, 민간정원 164곳 등 180곳(2025년 6월 30일 기준)에 이른다. 2020년 이후 16개 지자체가 정원도시 계획을 수립했거나 추진 중이다. 서울시는 2024년 1월부터 2025년 6월까지 1년 반 만에 도로변에 2180곳의 정원(15만3298㎡)을 조성하고 2026년까지 30만㎡ 규모로 늘리겠다고 한다.
정원도시는 단순히 녹지를 늘리는 사업이 아니다. 자연과의 친밀, 포용과 평등, 참여와 공유라는 가치를 구현하는 생활문화다. 하지만 산림청 주도로 추진되는 현재 국내 정원도시 정책은 정원 기반 녹색 인프라와 도시 기능 간의 유기적 연계를 고려한 정책적 접근이 부족하다는 한계가 있다. 급증하는 정원박람회도 차별점을 가져야 한다. 각기 다른 경쟁력을 가진 정원박람회가 모여 정원문화를 산업·관광·복지와 엮는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때 정원은 지역 브랜드 전략이자 미래 문화전략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
도시와 마을 곳곳에서 시민이 공동체 정원을 가꾸면 그 돌봄의 경험은 미래세대로 이어진다. 극단적 기후, 생물다양성 상실, 식량 불안, 사회적 결속의 약화 같은 우리 사회의 과제들을 풀어낼 열쇠는 정원에 있다.
김선미 <산림청 자문위원>
동아일보 ‘김선미의 시크릿가든’ 연재 중. '정원의 위로' 저자. 2025서울국제정원박람회 조직위원, 산림청 자문위원, 국가유산청 명승·전통조경분과 전문위원. 서울대 조경학 박사과정
김선미 산림청 자문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