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보다 무서운 '전력 병목'… 8인치 성숙공정, AI 시대의 '새로운 전략 자산' 부상
미 규제 역설의 현장: 첨단 공정 막힌 중국, 2028년 레거시 칩 점유율 42% 석권 예고
미 규제 역설의 현장: 첨단 공정 막힌 중국, 2028년 레거시 칩 점유율 42% 석권 예고
이미지 확대보기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31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과 업계 자료를 종합하면, 노보센스(Novosense)와 에스지마이크로(SG Micro) 등 중국 주요 아날로그 반도체 설계사들은 최근 제품 가격을 최대 85% 인상하며 글로벌 단가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원가 상승을 넘어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 전력 수요가 22~40nm(나노미터)급 성숙공정의 만성적 공급 부족과 맞물리며 발생한 구조적 '가격 쇼크'로 풀이된다.
이미지 확대보기"왜 하필 아날로그인가"… AI 서버의 '숨은 지배자' PMIC와 ADC
시장 참여자들 사이에서는 이번 가격 폭등의 근원지로 AI 데이터센터의 고전력 밀도 환경을 지목하고 있다. 엔비디아의 블랙웰(Blackwell) 등 차세대 AI 칩은 이전 세대보다 압도적인 전력을 소모하며, 이를 안정적으로 관리할 전력관리반도체(PMIC)와 전압조절모듈(VRM)의 중요성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이 커졌기 때문이다.
AI 서버는 단순 연산뿐만 아니라 고전압을 저전압으로 미세하게 변환하고 절연하는 과정이 필수다. 현실의 물리적 신호를 디지털로 바꾸는 데이터 컨버터(ADC/DAC) 수요도 드론과 자율주행차 확산에 따라 동반 상승했다.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와 아날로그 디바이스(ADI) 등 글로벌 거대 기업들이 이미 가격 인상을 단행한 가운데, 중국 기업들이 이에 동조하며 "낮은 마진"의 굴레를 벗어나 "고수익 구조"로 체질 개선에 성공했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늘릴 수 없는 공급'… 8인치 웨이퍼의 물리적 한계
이번 가격 상승이 단기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의 배경에는 성숙공정(Legacy Node)의 고질적인 캐파(생산 능력) 부족이 자리 잡고 있다. TSMC와 삼성전자가 3nm 등 초미세 공정에 자본 지출(CAPEX)을 집중하면서, 아날로그 반도체의 주력 생산 기지인 8인치(200mm)와 12인치(300mm) 성숙공정 투자는 뒷순위로 밀려났다.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8인치 장비는 이미 단종된 경우가 많아 중고 시장에 의존해야 하는 처지"라며 "늘어나는 수요를 공급이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물리적 병목' 상태"라고 지적했다. 특히 TSMC 등이 자본 효율성을 이유로 첨단 공정에만 매달리는 사이, 성숙공정은 공급자 우위 시장으로 완전히 재편됐다.
미국의 규제가 키운 괴물?… 중국, 2028년 성숙공정 42% 점령
미국의 강력한 수출 규제는 역설적으로 중국을 성숙공정의 '절대 강자'로 만들고 있다. 첨단 장비 반입이 막힌 중국 파운드리 업체 SMIC와 화홍반도체 등은 규제 영향이 적은 22~40nm 공정에 대규모 투자를 쏟아붓고 있다.
중국 제조사들은 이제 저가 공세가 아닌 '안정적 공급망 제공'을 무기로 글로벌 시장에서의 입지를 넓히고 있다. 리우 펑 업계 분석가는 "AI 시대의 가장 큰 위험은 연산력이 아니라 전력을 공급할 칩이 없어 서버가 멈추는 것"이라며 "중국은 바로 그 지점을 공략하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투자자가 주목해야 할 3대 체크포인트
이번 사태는 AI 산업의 화두가 '지능'에서 '인프라 생존'으로 옮겨갔음을 보여준다. 한국 반도체 생태계 역시 메모리 편중에서 벗어나 아날로그 및 전력 반도체 공급망 안정화를 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향후 시장의 향방을 결정지을 핵심 지표는 첫째, AI 서버 CAPEX 내 부품 비중이다. 전체 서버 비용 중 전력 및 아날로그 부품 단가 비중이 얼마나 상승하는지 주시해야 한다.
둘째, 화합물 반도체(SiC/GaN) 전환 속도다. 기존 아날로그 칩의 한계를 넘는 차세대 소재 채택 속도가 가격 폭등의 완충 작용을 할 수 있다.
셋째, 중국산 레거시 칩의 점유율이다. 2028년 이전까지 중국의 공급망 지배력이 임계점을 넘을 경우, 글로벌 정보기술(IT) 업계의 대중국 의존도는 심화될 전망이다.
"AI 시대의 진정한 승자는 연산하는 자가 아니라, 그 연산에 필요한 에너지를 통제하는 자가 될 것이다." 증권가 안팎에서 나오는 이 말은 지금 아날로그 반도체 시장이 처한 처지를 가장 명확하게 관통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제 초미세 기술 경쟁 이면에 숨은 '성숙공정의 반격'과 그에 따른 공급망 재편을 냉정하게 읽어내야 한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