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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 美 vs ‘전기국가’ 中… 세기의 미·중 전쟁, 이제 ‘에너지 주도권’이 갈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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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석연료’ 美 vs ‘전기국가’ 中… 세기의 미·중 전쟁, 이제 ‘에너지 주도권’이 갈랐다

美, 셰일 혁명 앞세운 화석연료 순수출국… 전체 에너지의 80% 의존
中, 태양광·풍력 용량 첫 화석연료 추월… 배터리·그리드 쥔 첨단 전력 신흥 강자
이란 분쟁 속 호르무즈 해협 폐쇄 리스크 직격탄… 유가 폭등에 글로벌 인프라 ‘요동’
5월 31일 이란 반다르 아바스 해변에 사람들이 모여 호르무즈 해협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5월 31일 이란 반다르 아바스 해변에 사람들이 모여 호르무즈 해협을 내려다보고 있다. 사진=로이터
글로벌 초강대국의 지위를 유지하고 강화하는 핵심 뼈대인 ‘에너지 통제권’을 둘러싸고 세계 양대 경제 대국인 미국과 중국이 전례 없는 전면전에 돌입했다.

세기의 대결로 불리는 미·중 패권 경쟁이 이제 전통적인 탄화수소 패권국인 미국과 재생에너지 및 전력망을 장악하며 떠오르는 ‘전기국가(Electro-state)’ 중국 간의 치열한 에너지 안보 전쟁으로 변모하고 있다.

6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글로벌 전력 공급망과 기후 회복력, 그리고 국가 자원 안보를 선점하려는 양국의 에너지 셈법이 향후 수십 년간 미·중 경쟁의 최종 승패를 가를 근본적인 분수령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로 체질 개선한 중국… 재생에너지 용량, 화석연료 최초 추월


중국은 일찌감치 전력과 전기가 자국 경제의 미래를 움직이는 핵심 원동력임을 간파했다. 중국은 석탄, 원유, 천연가스의 주요 생산국이면서도 엄청난 소비량 탓에 여전히 막대한 탄화수소를 해외에서 사 오는 순수입국이다.

그러나 중국은 전략적 인내심을 바탕으로 국가 5개년 계획을 통해 태양광, 풍력, 수력, 원자력 등 대체 에너지로의 다각화를 집요하게 추진해 왔다.

그 결과 지난해 중국의 비화석연료 전력 생산 용량이 역사상 처음으로 화석연료 용량을 넘어섰다. 전력망에 연결된 풍력과 태양광 발전량만으로도 전통적인 석탄 발전을 능가하는 대기록을 세운 것이다. 더욱이 기술 혁신을 통해 재생에너지를 이용한 전력 생산 단가가 화석연료를 태워 만드는 전력보다 저렴해지는 구조적 전환점(Grid Parity)을 맞이했다.

에너지 안보를 최우선 순위로 삼고 탈탄소화와 오염 감축에 속도를 낸 결과, 중국은 현재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배터리, 전기차(EV), 전력 그리드 기술 분야에서 세계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독점적 선두주자로 우뚝 섰다.

‘셰일 혁명’ 앞세운 미국의 탄화수소 패권… 상호 의존성의 딜레마


반면 미국은 19세기 펜실베이니아주에서 최초의 유정이 시추된 이래 세계 에너지 시장을 지배해 온 전통의 석유 강국이다. 오늘날 미국은 하루 1,360만 배럴의 석유와 연간 30조 입방피트 이상의 천연가스를 뿜어내고 있다. 특히 21세기 들어 셰일 오일 생산이 본격화된 이후에는 에너지 자급자족을 넘어 순수출국으로 지위를 굳혔다.
이 때문에 미국 시스템은 전체 에너지의 무려 80%를 여전히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강력한 탄화수소 패권 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미국은 압도적인 해군력을 바탕으로 전 세계 해양 항로의 안보를 독점 제공하며 글로벌 탄화수소 무역의 맹주 역할을 해왔다.

양국의 에너지 정책과 체질은 극명하게 엇갈리지만, 역설적이게도 두 나라는 깊은 '상호 의존성'의 늪에 빠져 있다. 미국이 아무리 독자적인 청정에너지 역량을 구축하려 해도, 리튬·코발트 등 핵심 광물의 가공과 전 세계 청정 에너지 공급망의 대부분을 중국이 통제하고 있어 중국과 완벽한 디커플링(분리)을 이뤄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대로 중국은 천연가스 공급의 40% 이상, 원유 소비량의 약 4분의 3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미국 해군이 전 세계 바다에 주둔하며 유지하고 있는 ‘해상의 자유’와 국제 항로 안전망에 자국의 생명선을 의존해야 하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폐쇄가 부른 고유가 쇼크… 미국과 중국의 ‘동상이몽’


최근 발생한 중동발 리스크와 호르무즈 해협의 사실상 폐쇄 조치는 전 세계 탄화수소 공급망에 치명적인 ‘병목 지점(Bottleneck)’ 위험을 실시간으로 각인시켰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석유 무역의 약 25%가 통과하는 길목이며, 이란은 자국 석유 수출량의 무려 90%를 중국에 몰아주고 있었다.

해협 봉쇄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자 글로벌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다. 에너지 가격 폭등은 비료 원료 공급망을 마비시켜 전 세계 식량 생산과 상품 가격을 끌어올리는 도미노 인플레이션을 촉발했다.

호르무즈 위기를 해결해 유가를 안정시키는 것은 미국의 핵심 이익과 직결된다. 유가 상승은 미국 소비자들에게 인플레이션 타격을 주는 반면, 석유와 가스 수출로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는 러시아 등 적대적 에너지 생산국들에게는 거대한 불로소득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이러한 에너지 공급망 혼란 속에서 미국과 중국 가운데 누가 ‘넷제로(탄소중립)’ 경쟁의 최종 승자가 될지는 미궁에 빠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연방 규제를 대거 폐기하며 화석연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중국 역시 이란산 석유 수입 감소와 고유가 압박에 대응해 국내 단기 수요를 충족하고자 석탄 화력 발전소 의존도를 다시 높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중국은 동시에 풍력과 태양광 발전량을 두 배로 늘리고 소형 원자력 발전소(SMR) 도입을 다각화해 완벽한 '에너지 독립'을 달성하겠다는 계산이다.

AI 데이터센터가 촉발한 2차 전력 전쟁… "상생의 생존 모델 찾아야"


미·중 경쟁의 차세대 전선은 인공지능(AI), 로봇공학, 드론, 첨단 군사 장비 분야로 확장되고 있으며, 이 모든 첨단 기술의 핵심 연료는 다름 아닌 '전력'이다. 특히 천문학적인 전력을 소모하는 AI 데이터센터 폭증은 양국에 거대한 전력 공급 확충 부담을 지우고 있다.

미국이 전력 생산 능력과 데이터센터 인프라를 충분히 구축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 조달 마찰이 미래 패권의 향방을 가를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올해 전 세계적인 기록적 폭염과 지구 온난화, 물 부족, 산불 등 기후 위기가 실물 경제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더하고 있다. 주요 공급망 중단 리스크를 마주한 세계 각국 정부가 국방 예산은 물론 식량, 물, 에너지 안보를 지키기 위해 지출을 늘리면서 글로벌 재정 적자는 걷잡을 수 없이 증가할 가능성이 크다.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높이고 글로벌 경제 안정을 달성하기 위한 유일한 열쇠는 각 국가와 지역사회가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다자간 협력 체제에 동참하는 것이다. 지속 가능성은 우리가 번영하기 전에 인류의 '생존'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향후 10년은 세계 두 상위 경제국의 운명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안보 지형을 결정지을 운명의 시간이 될 것이다. 낙관론적 시각에서 보면 이 치열한 패권 경쟁이 역설적으로 양국을 자극해 함께 공존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 에너지 플랫폼을 만들어내는 긍정적인 자극제가 될 수도 있다.

미·중이 공멸의 전쟁이 아닌, 인류의 지속 가능한 생존을 위한 기술 경쟁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