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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조 엔 붓는다"...다카이치 日 총리, 아베노믹스 넘어서는 전례 없는 국가 개조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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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0조 엔 붓는다"...다카이치 日 총리, 아베노믹스 넘어서는 전례 없는 국가 개조 승부수

다카이치, 14년간 370조 엔 규모 민관 투자 통해 국가 산업 기반 재구축하는 장기 경제 구상 추진
수요 진작에 초점 맞춘 '아베노믹스'와 달리, 17개 핵심 분야 공급망 강화와 대중국 안보 리스크 관리 집중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 부재와 국가 부채 급증 우려가 최대 과제로 지목됨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4일 오전(현지시각) 영국 런던 총리관저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에너지 안전보장 및 핵심 광물 공급망 강화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경제 안보 협력에 합의했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14일 오전(현지시각) 영국 런던 총리관저에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와 에너지 안전보장 및 핵심 광물 공급망 강화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경제 안보 협력에 합의했다. 사진-로이터


일본 최초의 여성 총리인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가 향후 수십 년에 걸쳐 자국의 산업 기반을 근본적으로 뒤바꿀 전례 없는 국가 개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중국의 희토류 등 이중용도 품목 수출 규제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연일 고조되는 가운데,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취약한 공급망을 방어하고 굳건한 국가 안보 체계를 다지겠다는 강력한 포석이다.

아베노믹스 뛰어넘는 370조 엔 '공급망' 투자


30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 보도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리의 새로운 경제 구상은 민관이 협력해 무려 370조 엔(약 3,330조 원)을 투자하는 초대형 장기 프로젝트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그 대상과 규모 면에서 역대 총리들의 구상과 궤를 달리하며, 정치적 스승인 고(故)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아베노믹스'에 필적할 만큼 야심 찬 계획으로 평가받는다.

가장 큰 차이점은 규모의 방대함과 14년이라는 장기적인 시계열, 그리고 지정학적 리스크 관리에 철저히 초점을 맞췄다는 점이다. 아베노믹스가 수요 진작을 위한 광범위한 구조 개혁에 집중했다면, 다카이치 총리는 인공지능(AI)과 반도체부터 방위산업, 조선업에 이르기까지 필수적인 17개 전략 분야에 거액을 투입해 '공급 측면'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노리고 있다. 글로벌 무대에서 중국과의 군사 및 경제력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상황 속에서 국가 경제와 안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는 의도다.

가미쿠보 마사토 리쓰메이칸대학 교수는 이번 계획에 대해 "세 개의 화살을 내세웠으면서도 실질적인 성장 전략이 부재했던 아베노믹스와는 완전히 다르다"며 "계획이 실현만 된다면, 세계 흐름에 뒤처진 노인 국가 일본을 근본적으로 탈바꿈시킬 잠재력이 있다"고 분석했다.

불투명한 재원 조달과 짓누르는 국가 부채


그러나 획기적인 성장 전략의 이면에는 불투명한 재원 조달이라는 거대한 맹점이 존재한다. 계획안은 전체 자금의 절반 이상을 민간 투자로 충당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지만, 구체적인 기업 투자 유도 방안은 아직 제시되지 않았다. 정부 예산의 출처 역시 명확하지 않다. 다만 1990년대 거품 경제 붕괴 이후 처음으로 찾아온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덕분에 최근 일본의 세수가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다카이치 총리는 아베 전 총리가 인사권을 통해 관료 조직을 장악했던 것처럼, 기존의 정치 관행과 예산 편성 방식에도 강력한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단년도 예산이나 추가경정예산에 의존하던 재무성 주도의 관행을 깨고, 다년간 이어지는 예산 프레임워크를 새롭게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오는 7월 다카이치 정권의 첫 '경제재정운영 및 개혁의 기본방침(일명 호네부토)'이 발표될 예정이며, 블룸버그는 이를 통해 정부 정책 방향에 부합하는 통화 정책을 일본은행(BOJ)에 강하게 요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척박한 거시경제 환경이다. 물가 상승이 가계의 구매력을 떨어뜨리는 가운데,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과 대규모 외환 개입에도 엔·달러 환율은 1980년대 이후 최저치(엔화 가치 하락)로 곤두박질쳤다. 자원 빈국인 일본 입장에서 지속적인 엔화 약세는 에너지, 식량, 원자재 수입 비용 폭등으로 직결된다.
더욱이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글로벌 투자자들은 다카이치 총리의 적극적인 재정 확대 노선이 국가 재정 건전성을 크게 훼손할 것을 우려하고 있으며, 최근 일본의 장기 금리는 1990년대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포퓰리즘 공약 산적… "결국 실현 가능성이 관건"


눈앞에 산적한 막대한 비용의 정책들도 걸림돌이다. 식료품 소비세 2년 실질 면제(약 5조 엔·약 45조 원), 방위비 GDP 2% 달성(연간 최소 2조 엔·약 18조 원 추가), 휘발유세 인하(약 7,600억 엔·약 6조 8,400억 원) 등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 사이클 진입으로 국채 이자 부담까지 커지면서, 과거처럼 낮은 비용으로 빚을 낼 수 있는 시대는 완전히 저물었다.

고다마 유이치 메이지야스다 종합연구소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물가 상승으로 정부가 세수 증가의 혜택을 보고는 있지만, 부채 상환 비용도 덩달아 늘어나고 있어 재정 상황이 일방적으로 개선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엄격한 재정 규율만을 고집할 수 없는 것이 안보 위기에 직면한 일본의 현실이다. 지난 10년간 독일의 사례에서 보듯, 맹목적인 균형 재정 고집은 철도 등 인프라부터 국방에 이르기까지 국가 전반의 기능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 반면 중국은 산업 및 기술 기반은 물론 군사력 증강에도 막대한 자금과 인재를 쏟아붓고 있다. 최근 중국이 일본 기업 20곳을 수출 통제 명단에 전격 추가한 것은 일본이 체감하는 뼈아픈 공급망 리스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프리 홀 간다외국어대학 강사는 "선정된 17개 분야는 모두 일본에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하며 대중국 경쟁과 직결된다"며 "이러한 거대 투자 전략은 외부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방어한다는 명분을 통해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정치적 효과도 다분하다"고 분석했다.

최근 아사히신문과 ANN의 여론조사에서 다카이치 내각의 지지율은 60%라는 이례적으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확고한 국민적 지지는 확보했지만, 수십 년에 걸친 이 거대한 국가 개조 계획이 재원 고갈 없이 끝까지 동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가미쿠보 교수는 "진짜 문제는 이 원대한 계획이 과연 '실현 가능한가'에 달려 있다"고 꼬집었다.


이용수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iscrait@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