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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경 설치미술 연작 '풍요(豐饒) Ⅲ', 사물의 폐허에서 피어나는 조형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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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경 설치미술 연작 '풍요(豐饒) Ⅲ', 사물의 폐허에서 피어나는 조형의 기억

제8회 조현경개인전 '풍요-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연작Ⅲ)'이미지 확대보기
제8회 조현경개인전 '풍요-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연작Ⅲ)'
조현경의 설치미술 '풍요(豐饒) Ⅲ'는 사라져가는 사물의 잔해와 산업적 물질을 조형의 언어로 전환하여, 한 시대의 기억과 예술의 존재 방식을 성찰하게 한다. 작가는 1988년 제1회 개인전 이후 의욕적으로 선보이는 전시에서 일상의 폐기물과 기계 부품, 전자·플라스틱 소재 등을 수집하고 재구성하여 ‘풍요’라는 개념의 이면을 드러낸다. 이는 물질의 축적이 낳은 문명의 풍경을 새롭게 응시하며, 소비와 폐기의 순환 속에 잠든 시간의 흔적을 조형적으로 환기한다.

여기서 풍요는 단순한 물질적 충만이 아니라 소비와 생산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현대문명이 남긴 부산물까지 포괄하는 복합적인 의미를 획득한다. 버려진 사물들은 작가의 손을 거치며 더 이상 쓸모없는 폐품이 아니라 시간의 흔적을 품은 조형적 존재로 변환되고, 그 과정에서 물질과 기억, 인간과 문명의 관계가 새로운 시각으로 부상한다. 나아가 폐기된 사물의 재생은 소멸한 가치의 복원인 동시에, 현대인의 삶을 지탱해온 물질문명에 대한 미학적 성찰로 이어진다.

작가의 작업은 회화적 평면에서 출발하여 입체와 설치로 확장된 조형적 사유의 궤적을 보여준다. 그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재료 자체의 물성이 아니라, 그것을 선택하고 배열하며 새로운 관계망을 구축하는 작가의 조형적 개입이다. 전통적인 조각의 재료 대신 전선·망치·너트·볼트·펜치·폐기된 산업사회의 잔여물을 활용함으로써 작가는 ‘조각’이라는 장르의 경계를 유연하게 확장한다. 익숙한 사물의 기능과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조형적 문법으로 재구성한다.

제8회 조현경개인전 '풍요-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연작Ⅲ)'이미지 확대보기
제8회 조현경개인전 '풍요-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연작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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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조현경개인전 '풍요-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연작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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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조현경개인전 '풍요-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연작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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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조현경개인전 '풍요-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연작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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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조현경개인전 '풍요-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연작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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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조현경개인전 '풍요-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연작Ⅲ)'
조현경 설치미술가이미지 확대보기
조현경 설치미술가

아상블라주(assemblage)의 방식으로 이질적 사물들을 결합하는 과정은 개별 사물에 축적된 기능과 시간을 해체하고, 하나의 새로운 의미체계 안에 위치시키는 행위가 된다. 따라서 그의 작품은 폐기와 재생, 소멸과 생성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현대적 조형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러한 조형적 전환은 버려진 사물에 새로운 생명과 서사를 부여하는 미학적 재구성으로 귀결된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물들의 결합은 과거와 현재를 잇는 새로운 조형적 질서를 형성하며, ‘기념비’라는 형식과 그것이 호출하는 기억의 문제가 주목된다.

작가는 거대한 영웅이나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전통적인 기념비 대신, 이름 없이 사라져간 디자이너와 노동의 흔적, 한 시대의 생활문화를 구성했던 사물들을 조형적으로 호명한다. 이는 기념비의 권위를 낮추는 동시에 그 의미의 범위를 확장한다. 평범한 사물과 익명의 존재를 기념의 대상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역사의 주변부에 머물던 삶의 가치와 존재의 흔적을 예술적 기억으로 환원한다.

유년의 기억과 고향 마산의 풍경,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경험한 생활의 변화가 작품의 밑바탕에 놓이면서 개인적 기억은 사회적 기억으로 전이된다. 작가에게 사물은 과거를 보존하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비추는 매개체이며, 폐기된 물질은 오히려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하는 역설적인 기억의 장치가 된다. 이처럼 사물에 깃든 개인의 추억은 시대의 풍경과 결합하며, 소멸해가는 기억을 현재의 감각으로 되살리는 조형적 서사로 확장된다.

조현경은 ‘현실의 제시’와 ‘있는 그대로의 날 것’을 조형의 출발점으로 삼으면서도, 수집된 사물에 새로운 질서와 미적 맥락을 부여한다. 이때 작품은 물질을 미화하거나 폐품의 조악함을 감추지 않는다. 오히려 낡고 닳고 부식된 표면, 기능을 잃은 부품의 불완전성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그 속에서 시간의 미학을 길어 올린다. 이러한 태도는 현대문명이 만들어낸 풍요의 구조를 되묻는 동시에, 인간이 사물을 소비하고 폐기하는 방식에 대한 조용한 성찰로 이어진다.

결국 '풍요–디자이너를 위한 기념비'는 버려진 것들의 재생을 넘어, 사물에 잠재된 기억과 존재의 가치를 복원하는 조형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조현경은 폐허가 된 물질의 자리에서 새로운 형식을 건축하고, 그 형식 속에 개인과 사회,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기억의 층위를 새겨 넣는다. 풍요의 시대가 남긴 것은 과잉의 물질이지만, 작가가 발견하는 것은 그 물질 속에서 다시 살아나는 인간의 시간이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전시사진=조현경 설치미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