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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부품서 핵심 전략 자원으로"… AI 열풍에 '기판·PCB' 품귀 대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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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부품서 핵심 전략 자원으로"… AI 열풍에 '기판·PCB' 품귀 대란

엔비디아·AMD 등 빅테크 생산능력 독점… 삼성전기·이비덴·유니마이크론과 증설 동맹
PC·스마트폰용 레거시 기판 라인까지 잠식… 핵심 소재 CCL 가격 석 달 새 12배 폭등
제조 장비 납기 최대 30개월로 지연… 업계 "지금 주문해도 2028년 말에나 납품 가능"
AI 인프라 확장에 따라 회로 기판이 전략 물자로 격상되며 공급망 대란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로릭 홈페이지이미지 확대보기
AI 인프라 확장에 따라 회로 기판이 전략 물자로 격상되며 공급망 대란이 확산하고 있다. 사진=로릭 홈페이지
인공지능(AI) 반도체와 고성능 서버 구축 붐이 전 세계 전자제품의 기본 골격을 이루는 인쇄회로기판(PCB)과 차세대 반도체 패키지 기판 생산 라인을 블랙홀처럼 집어삼키고 있다.

과거 범용 하드웨어 부품 취급을 받던 기판류가 초고속 데이터 전송과 방열 효율을 좌우하는 필수 병목 기술로 떠오르면서, 엔비디아와 AMD 등 글로벌 AI 칩 선도기업들이 물량 선점에 사활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전통 가전과 스마트폰, PC 제조업체들은 핵심 기판을 제때 확보하지 못해 완제품 생산계획에 심각한 차질을 빚는 등 글로벌 테크 공급망 전반에 전례 없는 나비효과가 발생하고 있다.

10월 27일(현지시각) 일본 종합 경제 미디어 닛케이 아시아(Nikkei Asia)에 따르면, 휴렛팩커드(HP)와 델(Dell) 등 주요 글로벌 PC 제조업체들은 2027년도 제품 수급 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규격의 PCB 품귀 현상을 가장 치명적인 공급망 병목 요인으로 꼽고 있다.
한 글로벌 PC 제조사 고위 관계자는 "내년 PC 출하량이 둔화할 가능성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장 완제품에 탑재할 필수 기판 물량조차 배정받지 못해 발을 구르고 있다"며 심각한 부품 수급난을 토로했다.

엔비디아·AMD, 기판 확보 '총력전'… 삼성전기·이비덴과 증설 연합


기판 부족의 근본 원인은 글로벌 AI 프로세서 개발사들이 고부가가치 첨단 패키지 기판 라인을 싹쓸이하고 있다는 점이다.

엔비디아와 브로드컴, AMD 등은 AI 가속기의 대역폭과 연산 성능을 뒷받침하기 위해 칩 기판을 단순 조달 부품이 아닌 전략 물자로 재정의했다.

엔비디아는 최근 한국의 삼성전기를 비롯해 일본의 이비덴, 대만의 유니마이크론 등 글로벌 핵심 반도체 기판 제조사들과 손잡고 향후 3년간 생산능력을 기존 대비 2.5배로 끌어올리는 대규모 공급망 동맹을 구축했다.

브로드컴 역시 일본의 톱판(Toppan)과 싱가포르에 대규모 합작법인을 설립해 차세대 기판 전용 물량을 선점했으며,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도 올해 아시아 각국의 주요 기판 제조사를 직접 방문해 긴급 생산 물량 배정을 읍소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프로세서와 메모리 칩을 연결하는 기판은 모든 전자 신호가 오가는 핵심 신경망 역할을 한다.

과거에는 반도체 전공정과 패키징에 비해 단순한 기술로 여겨졌으나, 최근 초고속 AI 칩의 연산 처리와 신호 손실 억제, 극한의 발열 분산 능력이 요구되면서 기판의 층수가 급격히 두꺼워지고 미세 회로 밀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졌다.

'나비효과'에 갇힌 가전·PC… 원자재 CCL 가격은 12배 폭등


기판 제조업체들이 높은 마진을 보장하는 AI 서버용 초고다층 기판 생산으로 설비를 대대적으로 전환하면서, PC와 스마트폰 등 전통 소비자 가전용 표준 PCB 공급망은 붕괴 직전에 직면했다.

글로벌 기판 업계의 증설 드라이브에도 불구하고 상류 원자재 공급난이 발목을 잡고 있다.

PCB 제조의 핵심 소재인 동박적층판(CCL) 가격은 지난 7월 이후 무려 12배 이상 폭등했다.

기판의 뼈대를 이루는 유리섬유 직물(E-글라스) 제조사들마저 AI 서버에 필수적인 저유전율(Low-Dk·Low-Df) 고기능성 소재 생산으로 전환하면서 일반 전자제품용 표준 유리섬유 공급이 완전히 말라버렸다.

대만 유니마이크론의 S.C. 치엔 회장은 "기판 제조 장비의 20%는 납기(리드타임)가 과거의 두 배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일부 핵심 정밀 장비는 주문 후 수령까지 최대 30개월이 소요되는 실정"이라며 "납기 지연 문제를 풀기 위해 고객사, 심지어 최종 고객사까지 동행해 장비 제조사를 찾아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문 가시성 2030년까지 차 있어"… 지금 계약해도 2028년 납품


글로벌 기판 및 소재 기업들의 생산 일정은 이미 한계를 초과했다.

세계 최대 CCL 공급업체인 대만 엘리트 머티리얼(EMC)의 동딩위 회장은 "현재 확보된 주문 가시성이 이미 2030년까지 연장된 상태"라며 "대만과 중국, 말레이시아 공장을 대대적으로 증설 중이며, 2028년 대만 신규 라인이 가동되어야 생산능력이 세 배로 확충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칩 제조사들에 기판을 납품하는 킨웡 일렉트로닉의 영업 관계자는 "기존 핵심 고객들의 물량을 맞추기도 벅차다"며 "신규 고객이 오늘 신규 발주를 낸다고 가정할 때 가장 빠른 제품 인도 시점은 2028년 말이 될 정도로 시장이 과열 상태"라고 전했다.

전례 없는 기판 수퍼사이클은 인재 쟁탈전으로 번지며 업계 엔지니어들의 몸값을 20~30% 끌어올렸고, AI 기판 전문 경력직의 경우 기존 급여의 두 배를 웃도는 처우를 받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글로벌 반도체 장비 전문기업 그룹 업 인더스트리즈의 리정쿵 총괄매니저는 "AI 컴퓨팅 파워의 폭발적 수요가 수십 년간 단순 범용품 취급을 받던 PCB를 가장 전략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핵심 자산으로 단숨에 격상시켰다"며 "기판과 후공정 제조 장비가 AI 시대를 지탱하는 최전선 하드웨어로 확고히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신경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incm@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