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고전산책-채근담(3)]-담박

공유
0

[고전산책-채근담(3)]-담박

고전산책-채근담(菜根譚)




담박



醲肥辛甘 非眞味 眞味 只是淡 농비신감 비진미 진미 지시담

神奇卓異 非至人 至人 只是常 신기탁이 비지인 지인 지시상



짙고 기름지며 맵고 단 것은 맛다운 진솔한 맛이 아니며, 참맛은 그저 담담하다.

신묘기이하며 걸출, 이채로운 것은 사람다운 사람에 이른 것이 아니며, 사람답다 함은 그저 항상하다.


<해설>



쌀의 처음 발음은 살이었다. 쌀은 벼의 살에서 와서 몸의 살로 화한다. 벼로써 그 살의 근원이 되는 씨앗이 생기는 때를 이삭이 팬다고 한다. 이 ‘패다’는 어린 아이가 비로소 어른이 된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곧 이삭이 패어 먹을 만한 양식이 되듯 보살핌을 필요로 하던 아이가 한 사람으로써 제 역량을 펼칠 때에 이르렀음을 뜻한다.

벼는 일반적인 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꽃이었던 그대로 씨앗인 채 영근다. 벼이삭은 곧게 뻗으며 속이 빈 대궁 위에 펼친다. 추수 후 이삭을 떨어낸 지푸라기를 보면 도무지 먹음직한 살을 맺을 법하지가 않다. 뿌리라도 넓게 뻗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리고 먹는 거라곤 얼마간의 양분이 든 질척한 물과 햇빛 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살이 주절어져 고개 숙인 모습은 차라리 경이롭다.

벼라는 초록과 물이라는 생명력에서 누군가를 배불릴 열매로 살고 산화해가는 모습은 마치 불꽃같다. 첨부터 스스로를 채울 요량이 없던 그저 빈 그릇이지 않은가. 그러면서 그 살의 맛은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짠 오미를 다 담은 듯 그중 하나도 안 닮은 담박이다. 쌀의 살은 그러므로 사람의 살이 여하해야 하느냐의 답을 애초에 담고 있다. 참맛은 담담하다. 그것은 먹었는지 아닌지의 구별조차 안 갈, 건강한 입 속의 원래 맛 같다.

살의 내용이 그러하듯 사람 속심 곧 사람다움의 맛 또한 내세울 요란이 없는 평상스러움에 있다. 약오르거나 노하거나 허풍스럽거나 슬프거나 부정을 앞세우지 않는, 쌀알같이 탱글한 살과 마음의 건강함 위에 지펴있는 투명. 그것은 물위에 새 나른 자취 같이 있어도 없어도 흔들리지 않는 무게중심이 벼의 대궁 같아 있는 것이다.

/장은조 번역․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