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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인물' 배출 '큰 바위 얼굴' 닮은 金烏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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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인물' 배출 '큰 바위 얼굴' 닮은 金烏山

스페셜-'큰 사람 나온다'는 전설 간직한 경북 구미金烏山

자연과 신의 손길로 빚은 '오묘한 산세'


박정희·근혜 부녀 대통령에 신현확·이수성 등 총리 6명 배출


부릅뜬 두 눈은 북두칠성 향하고 볼록한 배는 풍요 상징


거인산·와불산·필봉으로 불리며 보는 곳에 따라 다른 모습


▲자연과신의손길로빚은'오묘한산세'의경북구미금오산.이미지 확대보기
▲자연과신의손길로빚은'오묘한산세'의경북구미금오산.
[글로벌이코노믹=노정용기자] 경북 구미의 대표적인 산인 금오산(金烏山). 경상북도 도립공원으로 칠곡군과 김천시의 경계에 걸쳐 자리한 이 산은 미국 소설가 너새니얼 호손(1804∼1864)의 단편소설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전설적인 금빛 태양새(삼족오)가 날아가는 것에서 유래했다는 금오산은 그 지명의 유래대로 우리 현대사에서 ‘태양’ 같은 큰 인물을 숱하게 배출해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박정희-근혜 부녀(父女) 대통령에서부터 신현확, 이수성, 장택상, 김덕, 김만제, 서석준 등 6명의 총리를 탄생시켰다.
아마추어 사진작가 김영조 씨가 자연이 빚은 ‘큰 사람’ 형상의 금오산 사진을 창간 3주년을 맞은 글로벌이코노믹에 보내왔고, 구미에서 이 큰 사람 형상을 보며 자란 와인&아날로그 이재술 대표가 금오산에 얽힌 전설을 들려줬다. 글로벌이코노믹는 부릅뜬 두 눈이 북두칠성을 향하고 볼록한 배는 풍요를 상징하는 금오산의 ‘큰 사람’ 형상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금오산의 이름은 이 산에 금빛 태양새(三足烏)가 날아가는 것에서 유래됐다. 금오산은 시대에 따라 이름을 달리해 왔는데, 고려 초기에는 남숭산(南崇山)이라고 불렸다가, 고려 후기부터 정식으로 금오산이라 불렸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인 금오산에 굳이 ‘숭(嵩)’자를 붙여 중국의 숭산에 비유한 것은 생김새가 비범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경북 칠곡과 인동 쪽에서 바라보면 금오산은 마치 거인이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거인산’이라고도 하고, 부처님이 누워 있는 모습과 같다고 하여 ‘와불산’이라고도 하며, 선산에서 금오산을 보면 끝이 뾰족하여 붓끝 같으므로 ‘필봉(筆峰)’이라고 불린다.

와인&아날로그 이재술 대표는 “어린시절 어른들께서 고향인 경북 칠곡군 약목면에서 보면 금오산이 큰 바위얼굴처럼 보인다고 했고, 시간이 흐를수록 전체 사람의 윤곽이 뚜렷해졌다”면서 “태양의 정기를 먹고 사는 태양새(삼족오)가 산다는 전설대로 큰 인물(박정희-박근혜 부녀 대통령)이 나왔다”고 자랑했다.

실제 구미 금오산 기운과 낙동강의 기운이 화합하는 절묘한 지역인 구미 상모동에 고 박정희 대통령의 생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까까머리 중학생 때 외갓집이 있는 경북 구미시 송정동에서 해발 976m의 금오산 정상에 자주 올랐다고 한다. 약목을 지나 북산면을 거쳐 금오산 정상에 오르면 산 전체가 바위산이어서인지 사춘기 때의 뒤숭숭한 마음도 안정을 되찾을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금오산은'큰인물'을배출한다는'큰바위얼굴'을닮았다.이미지 확대보기
▲금오산은'큰인물'을배출한다는'큰바위얼굴'을닮았다.
큰 바위산인데도 소나무 등의 울창한 나무들이 있고, 금오산 정상에는 1971년 당시 미군부대의 레이더기지가 턱 버티고 있었다. 중학교 1학년으로 어린 마음이지만 금오산의 ‘큰 사람 형상’ 머리 부분에 군 레이더기지가 있어 늘 가슴이 아팠는데, 지금은 다행히 레이더기지가 철수된 상태다.

이재술 대표는 “와인산지 투어 현장을 답사하면서 세계 각국을 돌아보았지만 금오산의 ‘큰 사람 형상’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자연이 빚은 최고의 작품”이라며 “금오산 주변에 걸쳐 진짜 많은 인물이 배출된 것을 볼 때 너무나 신기하다”고 말했다.

금오산의 정기를 받아 우리 현대사에서 총리에 오른 인물로는 우선 신현확 총리(1920~2007)가 손꼽힌다. 신 전 총리는 조선중기의 무장 신유 장군의 후손으로 어릴 때부터 1등을 놓친 적 없는 수재였다. 스무 살(1942년)에 고등시험에 합격하고 한국인 최초로 일본 중앙청의 관리관이 된 그는 이승만정부에 의해 관료가 된 후 뛰어난 업무능력으로 40세가 되기 전에 부흥부장관에 올랐다. 특히 5·16이 터지고 감옥에 간 그는 박정희대통령에게 보사부장관으로 발탁되어 국민의료보험을 지휘하고 그 능력을 인정받아 경제부총리를 할 무렵 10·26이 터졌다. 그는 12·12사태 때 최규하대통령 밑에서 총리가 되었으며, 역사는 그를 ‘TK의 대부’로 부르고 있다. 지금도 약목면 남계리에는 조선 중기의 무신 신유(1619∼1680)의 사당 및 묘소가 모셔져 있다.

또 구미에서 가까운 경북 칠곡군 북삼면 오태동에서는 장택상 총리(1893~1969)가 났으며, 신동면에서는 이수성 국무총리, 성주군에서는 서석준 부총리(1938∼1983), 선산에서는 김덕 통일원장관 겸 부총리와 김만제 전 부총리등이 태어났다. 금오산의 정기는 총리 이외에도 장차관과 문화예술인을 배출했다. 김대환 노동부장관, 김송자 노동부차관, 김대식 대구지방경찰청 청장, 부자가수 신웅-신유 등이 그들이다.

금오산은 ‘거인산’이나 ‘와불산’이란 이름 이외에 재미있게도 ‘노적봉(露積峰)’이나 ‘음봉(淫峰)’으로 불리기도 한다. 다시 말해 금오산을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이름이 달리 불리는데, 개령 방향에서 보면 금오산봉이 도적놈이 무엇을 노리며 피신하고 있는 모양 같다고 해서 적봉(賊峰)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 금산에서 보면 부잣집의 노적(露積) 같다고 해서 노적봉(露積峰)이라고 불려왔다.

하지만 인동에서 금오산을 보면 높은 사람이 관(冠)을 쓴 것 같아서 귀봉(貴峰)이라고 불렀고, 성주에서 보면 음탕한 여인의 모습 같다고 해서 음봉(淫峰)이라는 다소 명예롭지 못한 이름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특히 북쪽 선산에서 바라본 금오산은 필봉(筆峰)이라고 불린 만큼 숱한 인재(유림과 양반)가 태어났다. 이재술 대표는 “우리나라 인재의 반은 영남에서 나고, 영남의 인재는 선산에서 난다”는 말이 우연히 생긴 게 아니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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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풍수지리의 대가인 무학대사는 금오산을 지나다가 군왕(君王)이 날 산이라며 거인이 태어날 것을 예언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거인의 형상을 살펴보면 두 눈은 하늘을 상징하는 동시에 천체 기상을 관장한다는 북두칠성을 응시하고 있으며, 배는 볼록하게 솟아올라 금오산의 정기를 가지고 태어난 군왕이 나라를 풍요롭게 할 것으로 믿었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에는 금오산 일대에서 무장(武將)이 나오지 못하도록 쇠말뚝을 박아 맥을 잘랐다.

이재술 대표는 “산맥을 자르면 산이 피를 토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일본이 박아놓은 쇠말뚝을 빼기 전에는 실제로 나라를 지키는 장수가 덜 배출됐습니다. 애국 청년들이 금오산의 이마에 해당하는 곳에 박아놓은 직경 17㎝의 쇠말뚝 7개를 뽑아냈으니 다시 한민족의 국운이 융성하기를 바랍니다”고 말했다.

김영조 사진작가는 “해질 무렵 노을에 비치는 금오산은 평소보다 더 경이롭게 다가옵니다. 특히 눈이 왔을 때는 누워 있는 ‘큰 사람’의 형상이 더욱 돋보입니다”고 소개했다.

기차 타고 여행을 갈 때 금오산은 신동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나 경부선 대구를 지나 신동에서는 아주 작게 보이던 금오산이 왜관을 지나면서 뚜렷한 형상으로 나타난다. 금오산을 가장 잘 관찰할 수 있는 곳은 약목과 북삼으로 꼽힌다. 특히 기차에서 내려 약목의 교동이나 북삼면 인평동이나 배미 마을에서 볼 때 ‘큰 인물’ 형상의 얼굴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모습에 전율을 느낄 정도라고 이재술 대표는 소개했다. 또한 그는 앞으로도 금오산 주변으로 큰 인물들이 계속해서 날 것이라고 풍수지리의 힘을 빌어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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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산의 생김새가 비범한 데서 갖가지 얘기가 생겨났다고 한다. 백두산에서 뻗은 줄기가 태백산을 거쳐 소백산으로 이어졌고, 소백산은 죽령과 새재, 추풍령을 지나 무주의 덕유산을 솟구쳐 올렸다. 그로부터 남으로 세 갈래 산맥이 뻗치는데, 한 지맥이 김천 대덕의 수도산이다. 수도산의 지맥은 다시 동남으로 뻗어 가야산이 되고, 또 한 줄기는 서북으로 뻗어 삼도봉이 되며, 나머지 한 줄기가 북으로 치닫다가 땅 속으로 스미듯이 하면서 이내 불쑥 기의 맥을 열어젖혀 솟구쳐 올린 게 금오산이다.

금오산에서 가장 인기 있는 등산로는 채미정~케이블카~해운사~대혜폭포~흘송대~내성북문~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등산로는 바위산 특유의 장쾌한 기분을 고조시킨다. 곳곳에 볼거리도 있다. 마애보살입상(보물 제490호), 용이 승천하면서 자국을 남긴 용회암(용돌이바위)도 아주 볼 만하다. 특히 1977년 9월 박정희 대통령께서 대혜폭포 주변에 쓰레기를 주우면서 “이 공원이 품위있고 쾌적한 휴양지가 되도록 평소 환경정화에 힘써야 한다”라고 말하면서부터 자연보호운동이 처음으로 시작됐다. 또 그 이듬해인 1978년 10월 5일 자연보호헌장이 선포된 뜻깊은 곳이기도 하다. 또한 금오산 아래에는 야은 길재 선생의 뜻을 기리는 채미정과 선봉사 대각국사비가 있다.

금오산 정상은 현월봉(懸月峰)이다. 약사봉과 보봉이 그 아래 솟았다. 서쪽에는 서봉이 우뚝 솟았다. 정상 부근의 평탄면을 흘러내린 시냇물이, 북쪽 계곡을 타고 흘러 골짜기물이 시끄럽게 흐르다가 바위 아래로 떨어지는 게 대혜폭포다. 금오산을 울린다고 해서 ‘명금(鳴金)폭포’로 불리기도 했다. 북쪽 편의 골짜기 물은 아름다운 금오동천을 형성하며 기이한 암벽 위로 쏟아지는 폭포들이 산재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