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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4년-①] IRA 위기에 다시 시작된 현대스피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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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4년-①] IRA 위기에 다시 시작된 현대스피드

2000년대 초반 중국서 고전하다 베이징택시사업 계기로 무서운 성장세
美 IRA 규제로 3Q 판매량 감소세, 현지 공장 착공 통해 현지화 속도낼 듯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이미지 확대보기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사진=현대차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14일 회장 취임 2주년을 맞는다. 정 회장은 지난 2018년 9월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한 후 그룹을 총괄하면서 신종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팬데믹 사태와 연쇄적인 공급망 부족 사태 등에서도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톱3'로 성장시켰다. 특히 자동차 중심이던 그룹의 주력사업을 단 4년 만에 모빌리티 전분야로 확장하면서 미래먹거리 발굴에도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앞길은 여전히 험난하다. 미국 정부가 지난 8월 인플레이션 감축법(이하 IRA) 시행에 나서면서 미래먹거리의 한축이던 전기차 사업에 급제동이 걸려서다. 무엇보다 현대차그룹이 생산 중인 전기차들이 대부분 국내 공장에서 생산 중인 상황이고, 해외 생산거점의 공장들이 빨라야 2025년에서야 운영될 예정이어서 현대차그룹의 위기감은 높아지고 있다.

재계 및 관련업계에서는 그러나 현대차그룹이 이번 위기도 무사히 잘 넘길 것이란 반응이다. 달라지는 경영환경 속에서도 무서운 기세로 선두주자를 따라잡으며 글로벌 톱3로 올라선 현대차그룹의 저력이 다시한번 IRA 위기에도 빛을 발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서다. 이른바 '현대속도(Hyundai Speed)'가 다시 등장할 것이란 관측이다.

1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와 기아는 IRA 규제 적용이 시작된 지난 3분기(7~9월) 미국 시장에서 1만2577대의 전기차를 판매했다. 상반기 미국 시장에서 테슬라에 이어 전기차 시장 점유율 2위에 올랐지만, IRA 규제가 본격화된 3분기에 들어서더니 판매량이 감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현대차그룹의 전기차가 미국 시장에서 판매량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IRA 규제로 인해 기존 1000만원 가까이 적용됏던 세액공제 혜택을 못 받게 되면서다. IRA 규제에 따르면 세액공제 혜택 차량은 북미에서 생산된 차량만 적용된다.

문제는 4분기 판매량이다. 자동차업계에서는 3분기 현대차그룹의 전기차 판매량이 IRA 규제 적용 이전에 계약된 물량이 대부분일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수급난과 공급망 부족 사태로 출고에 상당한 시일이 걸렸던 점을 감안하면 3분기 판매량은 IRA 규제 이전에 계약된 물량이 현재 통계에 집계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IRA 규제에 따른 현대차그룹의 진짜 피해는 4분기부터가 진짜라는 의미다.

장재훈(오른쪽) 현대자동차 사장는 지난 5월20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켐프(Brian Kemp) 주지사를 만나 현대차그룹-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 투자 협약식에서 서명했다. 사진=현대차그룹이미지 확대보기
장재훈(오른쪽) 현대자동차 사장는 지난 5월20일(현지시각) 미국 조지아주 브라이언 켐프(Brian Kemp) 주지사를 만나 현대차그룹-조지아주 전기차 전용 공장 투자 협약식에서 서명했다. 사진=현대차그룹

현대차그룹는 이에 해결책 찾기에 고심하고 있다. 미 정부 측에 IRA 규제에 따른 문제점을 제기하는 것을 비롯해 정부 차원의 대책마련을 요구하고 있다.

공영운 현대차 사장은 이와 관련 지난 4일 산업통상자원부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해 "IRA 규제 시행으로 판매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상황"이라며 "보조금 액수가 커 고객 입장에서 우리 차를 선택하기 어려운 장벽을 만났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 회사 자체적으로 법적 문제점을 고쳐 영향을 줄이는 활동을 하고 있다"면서도 "정부와 국회에서도 다방면의 지원을 통해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현대차그룹이 아직까지 IRA 규제와 관련 공식적인 입장과 해결책을 발표하지 않았지만, 관련업계에서는 현대차그룹이 과거 사례를 통해 발빠른 대응에 나설 것으로 내다봤다. 이른바 '현대속도'다.

'현대속도'는 2000년 초반 현대차가 중국 시장에서 보여줬던 무서운 성장속도를 함축한 단어다. 중국 자동차업계가 직접 명명한 단어로 2004년에는 중국어 사전에도 등록됐다.

1999년 중국에 진출한 현대차는 현지업체들의 텃세와 글로벌 완성차업체들의 난립으로 어려움에 겪었다. 이에 현대차는 베이징시 택시를 주목하고 베이징시와의 끈질긴 협의를 통해 엘란트라(국내명 아반떼)를 택시로 납품했다. 그 결과 현대차는 중국 현지에서 무서운 기세로 성장했는데, 현지업체들은 현대차의 이 같은 성장사례를 '현대속도'라고 명명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이 같은 과거 사례를 근거로 IRA 규제에 위기감이 높아진 현대차그룹이 이번에는 미국에서 '현대속도'를 보여줄 것으로 내다봤다. IRA 규제 유예 및 해결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한편으로는 IRA규제를 피해갈 근본적인 해결책인 '현지화'에 속도를 낼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미국 내 신규 공장들을 최대한 빠른 시간내에 착공하기로 했다. 조지아주의 신규 전기차 전용 공장과 배터리셀 조립공장은 당초 2025년이 완공예정이었지만, 조기착공을 통해 완공 시점을 1년 앞당기기로 했다.

또한 조지아주에서 운영 중인 기아 생산공장의 경우 일부 라인을 전동화라인으로 변경하고 빠른 시간 내에 전기차현지생산체제를 구축할 방침이다.

현대모비스 역시 13억달러(약 1조8500억원)을 투자해 미국 내 전동화 부품 공장을 신규 설립한다고 밝혔다. 현대모비스의 신규 전동화 부품공장의 완공시점은 2025년에서 2026년으로 예상되지만, 최대한 빨리 완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완성차업계 한 관계자는 "IRA 규제법안을 일부 개정하거나 유예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문제는 시기다"면서 "규제안 개정을 기다릴 수 없는 현대차그룹 입장에서는 발빠른 현지화 만이 유일하고 확실한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종열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eojy78@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