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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그룹50년-10]11년 만에 되찾은 ‘현대오일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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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重그룹50년-10]11년 만에 되찾은 ‘현대오일뱅크’

현대오일뱅크의 귀환①
1964년 최초 민간 점유사로 출범 후 1993년 현대 인수
IMF 외환위기로 IPIC에 인수했다가 되찾기로 결정 후
IPIC의 견제로 법적공방까지 간 뒤 2010년 인수 성과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전경. 사진=현대중공업그룹이미지 확대보기
현대오일뱅크 대산공장 전경.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외환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던 1999년, 자금이 필요했던 현대중공업그룹은 외국 자본에 현대오일뱅크 지분 50%를 넘겼다. 1964년 국내 최초의 민간 정유사(당시 극동석유)로 출발한 현대오일뱅크는 1993년 현대의 경영권 인수 후 ‘현대정유’로 다시 태어나 국내 최초의 주유소 브랜드 ‘오일뱅크’를 도입하는 등 거침없는 성장을 이어 갔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의 파고를 견디지 못하고 현대중공업그룹의 품을 떠나갔다.

그리고 2010년, 1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1999년 지분 절반을 인수한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 IPIC(International Petroleum Investment Company)는 미래를 대비한 투자에 소극적이었다. 애초부터 오래 경영할 요량이 아니었다.
기업의 가치를 극대화해 투자 이상의 값을 받고 되팔아 이익을 챙기면 그뿐이었다. 결과는 ‘뒤처진 성장세’로 나타났다. 다른 정유사들의 매출이 200~350% 늘어난 1999부터 10년간 오일뱅크는 150% 성장에 그쳤다. 여전히 ‘후발주자’의 꼬리표를 단 채 국내 4개 정유사 가운데 하위권을 면치 못했다.

현대중공업그룹에 현대오일뱅크는 언젠가 되찾아 와야 할 ‘아픈 손가락’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잠시 이별했지만 선대(先代)에서 일군 회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여건만 조성되면 반드시 찾아와 원상 회복시키리라 절치부심했다.

외국 자본에 승리, 11년 만에 귀환하다


때가 오기를 기다리기 어느덧 7년, IPIC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2006년 미국의 코노코필립스에 지분 35% 매각을 시도했다. 결과는 실패였다. 2007년 공개입찰 방식으로 전환해 재차 매각에 나섰다. 매각 지분도 50% 이상으로 높였다. 국내 정유회사들과 코노코필립스가 입찰에 뛰어들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일련의 상황을 예의주시했다. 전제는 옛 계열사를 반드시 되찾아 창업자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이었다. 언론 등에서도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오일뱅크 인수 가능성을 보도하며 ‘범현대가의 복원’을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사업성을 무시하고 무작정 인수전에 뛰어드는 것은 기업경영의 기본 자세가 아니었다. 정주영 창업자도 일찍이 “다른 사람들은 현대를 모험을 하는 기업이라고들 한다. 그러나 현대는 모험을 하는 일은 없다. 밖에서 볼 때 현대가 속단하고 모험을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리는 치밀한 계획, 확고한 신념 위에 불굴의 정신을 가지고 밀고 나가기 때문에 실패를 모르는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었다.

현대중공업그룹의 현대오일뱅크 인수 검토는 철저하게 그룹의 미래 사업방향과 현대오일뱅크의 성장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뤄졌다.

느긋한 속사정도 있었다. 2006년 IPIC에 지분 20%를 추가 매각하면서 향후 IPIC가 지분을 매도할 때 현대에 우선매수권을 주기로 명시했기 때문이다. 2007년 말부터 우선매수권을 근거로 브레이크를 걸며 인수 의지를 나타냈다.

물론 쉽게 동의할 IPIC가 아니었다. 현대중공업은 결국 2008년 3월 이사회를 열고 IPIC가 보유한 주식 전량(70%)의 매수권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IPIC 측에 통보하기로 결의했다. 동시에 우선매수권 조항을 근거로 싱가포르 국제상업회의소(ICC) 산하 국제중재재판소에 법적 분쟁 중재를 신청했다.

“IPIC 측은 그동안 협상 과정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았다. 중재재판을 동시에 요청한 것은 IPIC가 끝까지 동의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한 포석이다.” (「매일경제」, 2008년 3월 26일자)

당시 IPIC는 국내 경쟁사와 현대오일뱅크 매각에 상당한 의견 접근을 이룬 상태였다. 현대중공업은 IPIC가 우선매수권을 무시하고 지분 매각을 추진한 자체로 현대중공업의 권리가 발효됐다고 주장한 반면, IPIC는 국내 정유회사에 지분을 매각하는 데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1~2년 이상 걸리는 장기전이 예상됨에도 국제중재를 신청한 것은 ‘반드시 현대오일뱅크를 되찾아 오겠다’라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었다. 조선업과 더불어 에너지 사업을 그룹의 양대 축으로 육성하겠다는 선언의 의미도 분명했다.

2009년 11월 ICC는 IPIC의 계약위반을 인정했다.

“IPIC 측이 주주 간 협약을 중대하게 위반한 사실이 인정되므로 보유한 현대오일뱅크 지분 70%(1억 7155만 7695주)를 주당 1만 5000원에 전량 현대 측에 양도하라.”

그러나 IPIC의 중재안은 강제력이 없다며 한국 법원의 판단을 받겠다고 버텼다. 할 수 없이 현대중공업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2009년 12월 IPIC를 상대로 ICC 중재판정의 강제집행 허가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법조계에서는 국내 소송에서 ICC의 판결이 뒤집힌 사례가 거의 없다는 점을 들어 현대중공업 측이 유리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을 이뤘다. IPIC 측이 시간 끌기를 위해 패소 가능성이 높음에도 법적 분쟁으로 몰아갔다는 뜻이었다.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으나 결국 법원은 2010년 7월 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줬다.

결국 IPIC는 항소를 포기하고 같은 해 8월 현대중공업에 지분을 매각했다.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분 91.13%를 확보하면서 정주영 창업자의 유산을 되찾아 왔다. IMF 외환위기로 잃었던 땅을 되찾으며 재도약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그룹 지원 속에 정유업계 판도를 바꾸다


무려 11년이나 걸렸지만, 현대오일뱅크는 마침내 현대중공업그룹의 품으로 돌아왔다. 대산공장 정문에는 새롭게 출발하는 현대오일뱅크의 꿈과 염원을 담아 현대를 상징하는 ‘H 정문’이 세워졌다.

정유업계에서는 현대오일뱅크가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원에 힘입어 정체된 정유 시장에 도전적으로 뛰어들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사기가 많이 떨어져 있었다.

‘옛 주인’을 만난 현대오일뱅크의 부활을 기대하는 대외적 반응과는 사뭇 달랐다. 주인이 계속 바뀌면서 소속감도, 조직력도 바닥이었다.

2010년 현대중공업그룹 편입 후 현대오일뱅크 초대 사장으로 임명된 권오갑 회장은 현장 경영, 스킨십 경영에 시동을 걸었다. ‘만년꼴찌’라는 패배의식, 잦은 경영권 교체로 느슨해진 조직 기강을 바로잡기 위해서였다.

매주 화요일 새벽 5시면 서울에서 충남 대산공장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판을 들고 줄을 서서 아침식사를 하며 현장의 목소리를 들었다.

직영 주유소에서 본인 스스로 일일 주유원으로 모범을 보이기도 했다. 사장 업무용 차량을 직원 결혼식, 장례식 등 경조사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해 권위주의적 기업문화를 깨뜨리는 데도 신경 썼다.

현재 현대중공업그룹 회장을 맡고 있는 권오갑 회장은 당시를 회고하며 “정주영 창업자는 늘 새벽 3시 30분 울산공장을 향해 출발했는데, 나는 오전 5시는 돼야 출발하니 이른 것도 아니다. 오전 6시 30분에 공장에 도착하면 옷 갈아입고 6시 50분부터 중역들과 아침을 함께하며 회의했다”고 말했다.

특히 현대오일뱅크 직원들에게 ‘우리는 모두 현대중공업 식구다’라고 강조했다. 서울과 대산공장에 정주영 창업자가 만든 사훈(社訓)을 걸었다. 현대중공업의 기업문화를 본격적으로 접목시키기 위해서였다.

한편으로는 원가 절감에 주력했다. 특히 원유 정제 과정에서 나오는 찌꺼기인 코크스를 원료로 고압의 스팀을 만드는 FBC(Fluidized Bed Combustion) 보일러 시설 효과를 톡톡이 봤다. 벙커C유를 원료로 하는 일반 보일러보다 저렴하게 스팀을 생산해 2012년 한 해 500억 원 이상의 비용을 아꼈다.

조진호 HD현대 상무는 “사실 FBC 보일러 증설은 쉽게 투자할 수 있는 부분이었는데도 전 외국계 주주는 승인을 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그룹 가족이 된 이후 최고경영진 차원에서 ‘전문가가 아니라 잘 모른다. 그러니 알아서 더 잘해야 한다. 단지 해줄게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만 얘기해 달라. 현장의 요구가 타당하다면 어떤 지원이라도 아끼지 않겠다’라며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했고, 대대적인 투자가 이뤄지며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자료: 현대중공업그룹>


채명석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oricms@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