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미국 정부, 반도체 보조금 대신 지분 요구…인텔 등 기술주 급락

글로벌이코노믹

미국 정부, 반도체 보조금 대신 지분 요구…인텔 등 기술주 급락

단순 보조금서 '정부 투자자' 모델로…'위기 구제'와 다른 이례적 접근
'반(半)국유화' 우려에 시장 충격파…삼성·TSMC엔 외교 갈등 불씨
이미지 확대보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반도체 기업에 보조금을 주는 대신 지분을 요구할 수 있다는 소식이 나오자 뉴욕 증시 기술주가 일제히 급락했다. 정부가 단순 지원을 넘어 직접 주주가 되려는 움직임이 전해지자, 특히 연방 보조금을 받는 인텔과 엔비디아 등 주요 반도체 기업을 중심으로 매도세가 거세지며 시장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21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포브스 등 외신에 따르면,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라 보조금을 받는 기업의 주식을 정부가 취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인텔이 직격탄을 맞았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19일 저녁 미국 정부가 인텔의 주식 취득을 고려하고 있다고 직접 말했다. 이에 앞서 캐럴라인 리비트 백악관 대변인은 정부가 약 104억 달러(약 14조 5496억 원)에 이르는 인텔 지분 10%를 취득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확인했다. 이 계획이 현실화된다면 미국 정부는 인텔의 최대 주주로 올라선다. 정부의 지분 요구는 인텔을 넘어 마이크론, TSMC, 삼성 등 미국에 반도체 제조 시설을 짓는 다른 기업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 시장, '정부 개입' 소식에 즉각 반응


이 소식에 시장은 즉각 반응했다. 20일 나스닥 지수는 정오 무렵까지 약 290포인트(1.3%) 급락했다. 인텔 주가는 7% 폭락했고, 팔란티어와 마이크론도 각각 5%씩 떨어졌다. 엔비디아와 AMD는 2%, 브로드컴도 함께 약세를 보였고, 그 파장이 아시아 증시로도 번져 대만 TSMC 주가 역시 2% 넘게 하락 마감했다.

미국 정부가 민간 기업의 주식을 직접 취득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역사적으로 제2차 세계대전 때 방위 산업체 지원, 1970년대 후반 크라이슬러 구제금융, 2008년 금융 위기 때 제너럴모터스(GM)와 AIG 등 모두 국가 차원의 '위기 구제' 상황일 때만 있었다. 그러나 이번 시도는 위기 대응이 아니라 산업 지원 정책을 정부의 주주 참여로 바꾸는 것이어서 중대한 정책 변화로 풀이된다.

◇ '위기 구제'와 다른 궤적…논란 확산


이러한 정책 변화는 트럼프 대통령의 기존 생각과 궤를 같이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을 "형편없는 제도"라며 "기업들이 지원금을 받아놓고 제대로 쓰지 않는다"고 비판해왔다. 나아가 "그럴 바엔 돈 대신 지분을 받겠다. 세금 낸 만큼 정부가 소유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기존 보조금 정책을 '투자자 모델'로 바꾸겠다는 생각을 드러냈다.

한편, 소프트뱅크는 지난 19일 인텔 주식을 주당 23달러에 모두 20억 달러(약 2조 7978억 원)어치 사들이는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이처럼 민간 대형 투자자도 인텔 주식을 사들이는 가운데 미 정부의 직접 개입설까지 더해져 주가 변동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번 정부의 지분 취득 추진은 여러 논란을 낳고 있다. 시장에서는 '정부 주주 위험'이 떠올라 민간 투자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온다. 또 인텔, 삼성, TSMC 같은 핵심 기업이 사실상 '반(半)국유화'돼 경영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고, 주가가 떨어지면 그 손실이 국민 세금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특히 삼성이나 TSMC 같은 외국계 기업에 지분을 요구하면 법과 외교 문제로 번질 소지도 있다.

물론 보조금을 납세자의 투자로 바꿔 기업 성과를 나누고, 미국 안의 반도체 생산 능력을 키우며 정부의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찬성 의견도 있다. 그러나 투자자들은 정부 개입 위험이 반도체주 전반에 현실이 되고, 규제와 정치 위험이 기업 가치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점을 더욱 걱정하고 있다. 반도체법 혜택을 보는 기업들은 단기적인 주가 조정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 나아가 장기적으로는 미국 반도체 산업 전체가 국가 관리 체계로 들어서는 흐름이 강해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