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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노벨상 수상자 폴 밀그롬, 'AI 연산력' 상품화…수조 달러 거래소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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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노벨상 수상자 폴 밀그롬, 'AI 연산력' 상품화…수조 달러 거래소 연다

현행 맞춤형 계약 한계…맥킨지 "앞으로 5년간 7조9천억 달러 투자"
'조합 경매'로 최적 가격 찾아…유동성 확보로 AI 혁신 가속화 전망
폭발하는 연산력 수요를 감당하고 AI 산업을 다음 단계로 도약시키기 위해 연산력을 석유처럼 사고파는 거대한 공개시장이 열린다. 사진=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이미지 확대보기
폭발하는 연산력 수요를 감당하고 AI 산업을 다음 단계로 도약시키기 위해 연산력을 석유처럼 사고파는 거대한 공개시장이 열린다. 사진=오픈AI 챗GPT-5가 생성한 이미지.
올해 9000억 원이 넘는 막대한 적자가 예상되는 기업(코어위브)의 가치는 70조 원을 웃돌고, 또 다른 기술 기업(오라클)은 하룻밤 새 시가총액이 352조 원 불어났다. 인공지능(AI) 시대의 '새로운 원유'로 떠오른 연산력(compute) 판매 시장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쏠리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이처럼 폭발하는 연산력 수요를 감당하고 AI 산업의 다음 단계로 도약하려면, 연산력을 석유처럼 사고파는 거대한 공개시장이 열려야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 26일(현지시각)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직접 설계한 '연산력 거래소'가 곧 출범을 앞두고 있다며, 전 세계의 이목이 수십조 원 규모의 신규 시장 탄생에 집중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코어위브와 오라클에 대한 천문학적인 가치 평가는 두 가지 상반된 전망을 낳는다. 하나는 앞으로 몇 년간 수요가 공급을 압도할 것이라는 '희소성 가설'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 기업이 수많은 승자 중 하나로 자리매김할 수조 달러 규모의 거대 시장이 열릴 것이라는 '풍요 가설'이다. 만약 AI의 잠재력이 완전히 실현된다면, 연산력 공급업체는 루이비통(LVMH) 같은 고마진 사업이 아닌 월마트처럼 '박리다매' 모델에 가까워질 것이다.

세계적인 컨설팅 기업 맥킨지 앤드 컴퍼니(McKinsey & Co.)는 앞으로 5년간 데이터센터 투자 규모가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 7조 9000억 달러(약 1경 1100조 원), 비관적인 시나리오에서도 3조 7000억 달러(약 5200조 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인류 역사상 전례 없는 규모의 자본 이동이 예상되는 만큼, 이 거대한 흐름을 뒷받침할 투명한 가격 책정 시스템 구축이 선결 과제로 떠올랐다.
현재 연산력 거래 방식은 AI 기업 담당자가 아마존 웹 서비스(AWS)나 코어위브 같은 공급사에 직접 전화해 가격을 문의하는 비효율적인 구조다. 특히 초대형 AI 모델 학습과 생성형 AI 서비스 구동에 필요한 GPU와 컴퓨팅 시간은 사양이 복잡해 현재는 맞춤형 계약으로 공급자가 가격을 정하는 공급자 중심의 시장 구조에 머물러 있다. 이 때문에 소비자는 다양한 선택지를 비교하기 어려운 병목 현상을 겪는다. 공급사 역시 전 세계 모든 계약에 손쉽게 참여하며 경쟁할 수 있는 공개 시장의 등장을 바라고 있다.

'깜깜이' 계약에 막힌 AI…투명한 공개시장 '필수'


연산력 시장의 상품화는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과거에도 비슷한 전환을 통해 산업 혁신을 이룬 성공 사례가 있다. 1980년대 원유 선물이 도입되면서 석유 산업의 고질적인 자본 제약을 풀었고, 1990년대 정부가 할당하던 주파수가 경매를 통해 거래되기 시작하면서 통신 산업의 폭발적인 성장을 이끌었다. 이들 선례는 복잡한 자산의 표준화된 거래가 어떻게 투자와 혁신을 촉발하는지 명확히 입증한다.

주파수 경매 설계를 주도해 2020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스탠퍼드대의 폴 밀그롬(Paul Milgrom) 교수가 이제 연산력 시장의 판을 짜기 위해 나섰다. 그의 회사 옥셔노믹스(Auctionomics)는 스마트 거래소 개발사 원크로노스 마켓(OneChronos Markets)과 손잡고 '연산력 거래소'를 구축하고 있다.

이 시스템의 핵심은 '조합 경매(Combinatorial Auctions)' 방식이다. AI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연어 주문을 자동으로 경매 입찰 데이터로 바꾸고 처리하는 스마트 거래 장터가 등장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수많은 구매자와 판매자는 각자의 조건을 최적으로 만족시키는 가격을 실시간으로 찾아낼 수 있다. 예를 들어, 구매자는 특정 시간대 연속 사용을 원하거나 몇몇 GPU 대체 가능 선택지를 묶음으로 제시해 최적의 가격과 자원 할당을 찾아낼 수 있다.

노벨상 수상자의 해법 '조합 경매'…최적가 찾아 자원배분 극대화


원크로노스의 켈리 리틀페이지(Kelly Littlepage) 최고경영자(CEO)는 "자산 가치를 훼손하는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재판매가 불가능한 유동성 위험"이라며, 현물 시장이 구축되면 모든 구매자가 잠재적 재판매자가 되어 공급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연산력 자원을 상품화하면 투자 회수 기간 단축과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 전통적인 상품 거래와 마찬가지로, 헤지펀드 등 금융기관의 참여는 위험을 분산하고 시장 안정성을 강화하는 역할을 할 전망이다.

연산력 시장은 데이터센터 운영 방식에도 혁신을 가져올 수 있다. 현재 데이터센터는 '99.999% 가동 시간'을 보장하기 위해 최대 전력 수요를 높이는 주범이지만, 시장이 형성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전력 수요가 몰리는 시간에 가동률을 탄력적으로 낮추는 대신, '99% 가동 시간' 상품을 더 저렴하게 판매하는 등 유연한 운영이 가능해진다.

원크로노스와 옥셔노믹스는 시장 출범 시기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고 있으나, 임박했음을 강력히 내비치고 있다. 이 시장이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다면 AI 혁명은 중요한 전환점을 맞게 된다. 수조 달러 규모의 투자를 유치하고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기반시설 확장을 이끄는 핵심 촉매제가 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오고 있다.


박정한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