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동안 밀어붙인 고강도 관세정책으로 인한 실제 부담이 외국이 아닌 미국 내 기업과 소비자에게 집중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로이터통신은 “이는 외국이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과 상반된 결과”라면서 “연방준비제도의 물가 안정 정책에도 부담이 되고 있다”고 13일(현지시각) 보도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알베르토 카발로 하버드대 교수를 비롯한 연구진은 미국 주요 오프라인 및 온라인 유통망에서 판매되는 35만9000여개 품목의 가격 흐름을 추적한 결과 트럼프 행정부가 지난 3월부터 단계적으로 부과한 관세 이후 수입품 가격이 평균 4%, 국내산 제품 가격은 2% 상승했다고 밝혔다.
카발로 교수는 “미국 기업들이 대부분의 관세 비용을 떠안고 있으며 그 부담이 점차 소비자 가격에 전가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백악관은 “미국이 관세로 인한 과도기를 겪고 있지만 결국 비용은 해외 수출업자들이 부담하게 될 것”이라며 “공급망 재편과 리쇼어링(생산기지의 국내 회귀)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예일대 예산연구소는 “해외 생산자들이 달러 약세를 반영해 자국 통화 기준 수출가격을 올리고 있다”며 “이는 미국 수입업체들이 관세와 환율 부담을 함께 떠안고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중국, 독일, 멕시코, 터키, 인도 등의 대미 수출품 가격은 모두 상승세를 보였고 일본만 예외로 나타났다.
트럼프 행정부는 평균 2% 수준이던 미국의 수입세율을 약 17%까지 높였으며 매달 약 300억 달러(약 40조5000억 원)에 달하는 관세가 부과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조치의 완전한 영향이 시장에 반영되기까지 수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유럽 자동차업체들은 가격 인상 대신 수익률을 낮춰 관세 부담을 흡수하는 방식을 택했으나 프록터앤드갬블(P&G), 에실로룩소티카, 스와치 등 소비재 기업들은 이미 가격 인상에 나섰다. 로이터의 조사 결과 유럽·중동·아프리카 지역의 72% 기업이 관세 이후 가격 인상을 단행했고 이익 경고를 낸 기업은 18곳에 불과했다.
로이터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정책은 단기적으로 미국 내 인플레이션 압력을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미 연준은 최근 경기 둔화 우려로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일부 위원들은 관세로 인한 물가 상승세가 지속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보스턴 연준은 관세가 핵심물가를 약 0.75%포인트 끌어올릴 것이라고 추정했고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최근 2.9%의 핵심물가 중 30~40bp는 관세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국제통상 측면에서도 여파가 확대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의 대미 수출은 7월 기준 전년 대비 4.4% 감소했으며 독일은 8월에만 20.1% 급감했다.
세계무역기구(WTO)는 내년 글로벌 상품 교역량 증가율 전망치를 0.5%로 하향 조정하며 “미국발 관세 충격의 지연효과가 본격화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