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학력·전문직도 예외 없다…프로그래머·금융분석가·마케터 AI 정조준
취약 노동자 10명 중 9명꼴 여성…'적응 역량' 격차가 고용 운명 가른다
취약 노동자 10명 중 9명꼴 여성…'적응 역량' 격차가 고용 운명 가른다
이미지 확대보기기계가 공장을 대체하던 시대는 지났다. 지금은 사무실 한 층에서도 누군가는 AI 덕에 도약하고, 누군가는 AI 때문에 밀려나는 두 개의 노동시장이 동시에 펼쳐지고 있다.
이미지 확대보기AI 노출도의 역설…고학력·전문직이 더 위태롭다
AI 기술 정책 연구소 GovAI와 브루킹스연구소가 최근 공동 발표한 분석 보고서는 이 역설을 수치로 뒷받침한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가 지난 16일(현지시간) 상세히 보도한 해당 연구에 따르면, 생성형 AI의 영향권에 가장 깊이 들어온 직종은 공장 노동자가 아닌 프로그래머, 마케팅 전문가, 금융분석가, 고객 서비스 담당자 등 지식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화이트칼라 계층이다.
같은 위험, 다른 운명…'적응 역량'이 생사를 가른다
그러나 AI에 노출된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처지에 놓이는 것은 아니다. GovAI·브루킹스 연구진이 주목한 핵심 변수는 '적응 역량'이다. AI 노출도가 같더라도, 누가 그 변화를 흡수하고 전환할 수 있느냐에 따라 고용 결과는 완전히 갈린다.
웹 디자이너와 비서(행정 사무원)를 비교한 연구진의 분석이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웹 디자이너는 높은 교육 수준과 폭넓은 프로젝트 경험, 상대적으로 안정된 경제적 기반을 바탕으로 AI를 협업 도구로 전환해 새로운 직무로 이동할 역량이 크다. 반면 비서와 행정 사무원은 업무 대체 가능성은 동등하게 높지만, 다른 고임금 직종으로 건너갈 기술적 이전성도 부족하고, 재교육을 지속할 경제적 여유도 상대적으로 취약하다. 노출도는 같아도 결과는 정반대로 갈리는 구조다.
취약 노동자 86%가 여성…기술 혁신이 반복해온 불평등의 역사
역사는 이미 같은 교훈을 남긴 적이 있다. 앨리슨 엘리어스 버지니아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는 "과거 사무직 여성들은 새로운 기술이 들어오면 단순 잡무에서 벗어나 더 높은 수준의 일을 맡게 될 것이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더 적은 보수로 더 많은 업무를 떠안는 결과였다"고 짚었다.
20세기 초 전화 자동화가 진행되던 시절, 수만 명의 교환원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 대부분은 더 나은 직종으로 이동하지 못하고 더 낮은 임금의 자리로 밀려났다. 기술 혁신이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과 해당 직종 노동자 개개인의 삶을 보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사실을, 역사는 반복적으로 증명해왔다.
국내 상황도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노동계 전문가들은 한국의 경우 수도권 중소·중견기업을 중심으로 AI 기반 업무 자동화 도입 속도가 빠르게 높아지고 있으며, 반복적 인지 업무에 종사하는 여성 사무직군이 단기 충격에 가장 취약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국내 재취업 지원 시스템이 아직 이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가 크다.
"AI가 일자리를 빼앗는 게 아니다…AI 쓰는 사람이 못 쓰는 사람을 대체한다"
그렇다고 비관론이 정설인 것은 아니다. GovAI 선임연구원 샘 매닝은 "AI가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이 대규모 실직으로 직결될지는 아직 미지수"라고 선을 그었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 제드 콜코도 "AI의 노동시장 영향에 관한 핵심 질문들은 아직 답을 찾지 못한 상태"라며 성급한 예단을 경계했다.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등장했을 때의 사례는 기술 예측이 얼마나 자주 빗나가는지를 보여준다. 당시 은행원이 대규모로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실제로는 은행 지점 수와 금융 서비스 업무 범위가 오히려 확장됐다. 기술은 언제나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수요와 직종을 만들어냈다.
시장에서 지배적 해석은 결국 이것이다. AI가 인간의 자리를 빼앗는 것이 아니라, AI를 능숙하게 활용하는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의 자리를 가져간다는 것. 기술의 수혜가 누구에게 돌아가고, 피해가 누구에게 집중되느냐는 시장 논리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적응력이 곧 고용 안보…한국이 지금 해야 할 일
AI 시대 노동시장의 핵심 질문은 '어떤 직업이 사라지는가'에서 '누가 변화를 감당하지 못하는가'로 무게중심이 이동했다. 고학력일수록 AI에 노출될 확률이 높아지는 역설적 구조 속에서, 적응 역량을 보유한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사이의 간극은 새로운 형태의 계층 불평등을 만들어가고 있다.
정부와 기업이 기술 발전의 속도에 맞춰 취약 계층의 재교육 체계와 직무 전환 비용을 어떻게 뒷받침하느냐가 중요한 변수다. AI 시대의 고용 안보는 개인의 의지만으로 지켜지지 않는다. 정부가 재교육 속도를 기술 도입 속도에 맞추지 못한다면, 이 벌어지는 거리는 어떤 정책 수단으로도 좁히기 어려운 구조적 불평등으로 굳어질 것이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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