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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식품 물가 비상…호르무즈 봉쇄로 에너지·비료·물류 3중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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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식품 물가 비상…호르무즈 봉쇄로 에너지·비료·물류 3중 충격

네덜란드·독일·이탈리아 취약성 가장 높은 이유는?
FAO "올 상반기 비료 가격 최대 20% 상승 전망"…가을부터 마트 직격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최근 중동 사태에 따른 에너지 위기에 대응해 3억 유로규모의 연료비·비료값 지원책을 내놨다. 사진=연합뉴스이미지 확대보기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그리스 총리는 최근 중동 사태에 따른 에너지 위기에 대응해 3억 유로규모의 연료비·비료값 지원책을 내놨다. 사진=연합뉴스
마트 계산대 앞에서 지갑을 닫게 만드는 것은 언제나 전쟁이었다. 올해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습하고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며 맞보복에 나서면서 전 세계 에너지 시장에 불이 붙었다. 유럽은 지금 그 불길이 슈퍼마켓 선반까지 옮겨붙기를 기다리고 있다.

유로뉴스 비즈니스가 28일(현지시각) 보도한 내용과 유엔 식량농업기구(FAO), 라보방크(Rabobank) 등 복수의 기관 자료를 종합하면, 유럽 식품 물가는 에너지·비료·운송이라는 세 경로로 동시에 압박받고 있으며 네덜란드·독일·이탈리아가 가장 큰 충격에 노출된 나라로 꼽힌다.

"지금 타격이 아니라 예고된 타격"…세 경로로 진행되는 식품값 상승

브뤼겔(Bruegel) 싱크탱크의 졸트 다르바스(Zsolt Darvas) 선임 연구위원은 "세계 비료와 원유 공급의 상당 부분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데, 전쟁으로 이 항로가 사실상 막혔다"며 "유럽 식품 가격 상승은 피할 수 없는 수순"이라고 말했다.
FAO의 막시모 토레로(Maximo Torero) 수석 경제학자는 그 경로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첫 번째는 정제 연료 충격이다. FAO에 따르면 페르시아만 정유소는 지난해 기준 유럽 항공유의 약 60%, 경유의 약 20%를 공급했다. 공급이 막히면서 경유와 항공유 가격이 오르고, 농장 기계 가동에서 냉동 트럭 운송까지 식품 공급망 전 단계의 비용을 끌어올린다.

토레로 수석 경제학자는 "위기 초기 몇 주 만에 유럽 천연가스 가격이 50~75% 급등했다"며 "농장 운영, 관개, 저장, 식품 가공 비용이 모두 올라 소비자 가격으로 전이된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비료 가격이다. 유럽이 페르시아만 비료를 직접 대량 수입하는 것은 아니지만 비료 시장은 세계 단일 시장으로 연결돼 있다. 페르시아만의 요소 수출이 막히자 전 세계 비료 가격이 일제히 뛰었고, 유럽의 암모니아 선물 가격은 t당 725달러(약 109만 원)까지 치솟았다. 천연가스를 주원료로 쓰는 질소 비료 특성상 가스값 급등이 유럽 내 비료 생산 비용도 동시에 끌어올려 농가는 이중 압박을 받고 있다.

세 번째는 바이오연료 수요 급증이다. 유가가 오르면 에탄올·바이오디젤 생산 수익성이 높아지고, 각국 정부와 연료 혼합 업체들이 옥수수·대두유·팜유를 대거 원료로 끌어쓴다. 이 과정에서 식용 곡물이 연료 생산 쪽으로 빠지며 식품용 공급이 줄어드는 악순환이 만들어진다.

독일·이탈리아·네덜란드 가장 취약…충격은 가을부터 본격화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시각 중 주목할 만한 것은 2022년과의 비교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유럽연합(EU) 식품·비주류 음료 물가는 연간 19%를 웃돌았다. 당시에는 에너지 가격 상승이 먼저 오고 식품 가격은 수개월 뒤에 따라갔지만, 이번에는 에너지·비료·물류 충격이 거의 동시에 전 세계 식품 가격 지수를 자극하고 있다.

FAO가 발표한 올해 2월 세계식량가격지수는 125.3포인트로 전월 대비 0.9% 오르며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쟁 발발 이전에 이미 반등세가 나타나고 있었던 셈이다.

FAO는 이 추세에 중동 전쟁발(發) 충격이 더해지면 올 상반기 비료 가격이 평균 15~20% 더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농가가 비료 사용을 줄이기 시작하면 수확량이 줄어들고 올 하반기에는 곡물 공급 자체가 빠듯해지는 2차 충격이 온다는 경고도 덧붙였다.

이번 전쟁 발발 이후 국제유가(WTI)는 배럴당 66달러에서 113달러까지 치솟았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에너지 가격이 10% 오른 상태가 1년간 지속 되면 전 세계 물가가 0.4%포인트 오른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미 유가가 수십 퍼센트 뛴 상황에서 이 공식을 적용하면 유럽 식품 물가 파급력은 상당하다.

국가별 취약도는 에너지 의존 구조에 따라 갈린다. 네덜란드는 로테르담을 중심으로 유럽 최대 정유·석유화학 클러스터를 갖고 있어 페르시아만 공급 차질에 가장 먼저 직격탄을 맞는다.

독일은 유럽 최대 경유 소비국이자 에너지 집약 산업 구조 탓에 충격이 산업 전반으로 번질 수 있다. 에너지 소비가 많은 화학·제약·자동차 산업 규모가 큰 독일 같은 나라에 이번 에너지 압박이 직격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탈리아는 카타르산 액화천연가스(LNG)를 오랫동안 대량 수입해 온 탓에 가스값 충격에 특히 취약하고, 프랑스·스페인도 LNG 수입 인프라 규모가 커 노출도가 높다.

라보방크의 마리아 카스트로비에호(Maria Castroviejo) 선임 분석가는 "유럽 농가는 이미 이번 작기분(作期分) 비료를 확보해 둔 상태라 비료 가격 충격은 오는 가을부터 본격화할 것"이라며 "에너지 가격이 오른 뒤 슈퍼마켓 식품 가격이 뛰기까지는 2022년처럼 시간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옥스퍼드 이코노믹스(Oxford Economics)도 이번 갈등이 미국보다 유럽에 더 심한 타격을 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쟁이 장기화할수록 식품 물가 안정은 더 멀어진다. 과거 8년 넘게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두 배나 폭등했던 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하는 데 6년이 걸렸다.

에너지·비료·운송의 3중 파고가 유럽 밥상 물가로 완전히 전이되기까지 시간은 걸릴 수 있다. 그러나 그 시계는 이미 돌아가기 시작했고, 가을 수확철이 다가올수록 유럽 소비자들이 체감하는 장바구니 부담은 한층 무거워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진형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jinwoo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