샹그릴라 안보대화 앞두고 '지역정비허브' 경쟁 격화…한화오션·HD현대, 올해만 미 해군 MRO 각 2건씩 수주
아시아 군비지출 8.1% 급증·수주잔고 100조 돌파…KF-21 수출 성사 땐 '게임체인저'
아시아 군비지출 8.1% 급증·수주잔고 100조 돌파…KF-21 수출 성사 땐 '게임체인저'
이미지 확대보기오는 29일 싱가포르에서 개막하는 국제전략연구소(IISS) 샹그릴라 안보대화를 앞두고, 한국 방산업계가 이례적 속도로 판을 바꾸고 있다. 무기를 팔던 나라에서, 미군 장비를 현지에서 고치는 나라로, 단순한 수출 확대가 아니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떠받치는 '실물 인프라 국가'로 격상하고 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가 지난달 27일 발표한 2025년 전 세계 군비지출은 약 2조 9000억 달러(약 4198조 원)로 11년 연속 사상 최고치를 갱신했다.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은 8.1% 늘어난 6810억 달러(약 985조 원)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가장 가파른 증가 곡선을 그렸다. 세 가지 구조적 흐름이 한국 방산업계의 향후 10년 지형을 결정짓는다.
미 해군 정비 거점으로 낙점된 한국…"MRO는 30년짜리 계약"
최근 조선업계 동향에 따르면, 올해 들어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각각 2건씩, 총 4건의 미 해군 함정 MRO(유지·보수·정비) 계약을 수주했다. 지난해 두 회사 합산 3건에 그쳤던 것과 비교하면 수주 속도가 두 배 가까이 빨라졌다.
단순 계약이 아니다. 한화오션은 지난달 22일 미국 방산설계 명가 레이도스 깁스앤콕스와 미 해군 규격에 맞춘 차세대 함정 공동개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HD현대는 지난달 27일 국내 기업 최초로 미 해군연구청(ONR) 핵심 연구개발 과제 2건을 수주했다. 한화 방산 미국 법인과 삼성중공업은 올해 4월 초 미 해군 차세대 군수지원함(NGLS) 개념 설계 계약을 따냈다. 한국 기업이 미 해군 군함 신조 설계에 공식 참여한 첫 사례다.
함정 한 척의 수명 주기는 30~40년이다. 정비 거점 지위를 확보하면 별도 수주 없이도 수십 년간 안정적 매출이 보장된다. 모도 인텔리전스는 글로벌 해군 함정 MRO 시장이 올해 577억 달러(약 83조 원)에서 2029년 636억 달러(약 92조 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며, 미국 시장만 연간 20조 원 규모로 추정했다. 한미 동맹의 경제적 결속이 '무기 구매'에서 '동맹 인프라 운용'으로 무게 중심을 옮기고 있다.
다만 리스크도 명확하다. 지난해 10월 중국 상무부는 한화오션의 미국 내 자회사들에 거래 금지 제재를 발동했다. CSIS는 최근 보고서에서 "도크 과부하와 숙련 인력 부족이 해소되지 않으면 MRO는 부업에 머문다"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와 조선사들이 올해 중 미국 내 현지 숙련공 양성 아카데미 설립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다카이치 재무장·대만 위기…아시아 군비경쟁 '2009년 이후 최고'
샹그릴라 대화의 최대 화두는 일본 다카이치 산에 총리가 촉발한 재무장 가속화다. 미국 전략국제연구소(CSIS)는 올해 2월 보고서에서 "다카이치 총리가 GDP 2% 목표를 예정보다 2년 앞당겨 달성하겠다고 서약했고, 연말까지 새 국가안보전략·방위전략·방위력정비계획을 동시에 발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2025년 국방비는 622억 달러(약 90조 원)로 1958년 이래 최고 GDP 비중(1.4%)을 기록했다.
대만 역시 중국 인민해방군(PLA)의 '저스티스 미션 2025' 포위 훈련 이후 국방비를 14% 늘려 182억 달러(약 26조 원)를 투입했다. 1988년 이래 최대 증가 폭이다. 미국은 올봄부터 오키나와 가데나 기지에 F-15EX 전투기 36기를 영구 배치하기 시작했다. 브레이킹 디펜스는 "2026년 인도-태평양 방산 헤드라인은 중국이 다시 장악할 것"이라 단언했다.
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들의 군 현대화 수요는 FA-50 경전투기와 천궁-II 방공 시스템을 직접 겨냥하고 있다. 이재명 정부도 2026년 국방예산을 전년보다 8.2% 늘려 국내총생산(GDP) 대비 2.6%를 방위비로 배정했다.
K-방산 빅4 수주잔고 100조 돌파…"수출 60%, 국내 예산 사이클서 독립"
서방 탄약·재래식 전력 재고 고갈 문제는 K-방산의 구조적 성장 발판이다. UBS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미-이란 충돌, 베네수엘라 작전, 러-우 전쟁의 연속으로 서방 탄약 비축량이 임계점 이하로 떨어졌다"고 진단했다. NATO는 지난해 6월 GDP 대비 5% 목표를 2035년까지 달성하기로 선언했고, 독일·스페인·폴란드는 일제히 국방비를 두 자릿수로 늘렸다.
업계에 따르면, 한화에어로스페이스·KAI·LIG D&A·현대로템 등 4대 방산사의 2026년 합산 영업이익 컨센서스가 전년보다 41% 증가한 6조 5000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방산 수출액은 377억 달러(약 54조 원) 돌파가 예상된다.
폴란드 한 나라에서만 올해 K2 전차와 K9 자주포 추가 발주 물량 21조 1200억 원이 대기 중이다. 특히 지난 2월 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으로 법정 자본금이 15조 원에서 25조 원으로 확충됨에 따라, 폴란드 2차 실행계약(약 30조 원 규모)에 필요한 대규모 기본 여신 제공 여력이 확보되었다는 점이 시장의 신뢰를 뒷받침한다. 현재 정부와 시중은행이 협력하는 '신규 정책금융 패키지'의 세부 집행 가이드라인이 조율 중이며, 이는 단순한 한도 증액을 넘어 실제 집행 단계에서의 자금 경색 리스크를 완전히 해소하는 핵심 장치가 될 전망이다.
이러한 정책적 뒷받침 속에 빅4의 합산 수주잔고는 사상 처음으로 100조 원을 돌파하며 4~5년치의 안정적인 생산 물량을 확보했다. 특히 수출 비중이 전체 매출의 60%에 이르러, 국내 국방 예산 사이클에서 사실상 독립한 선순환 구조로 완전히 전환됐다는 평가다.
아시아태평양 방산리포터(APDR)는 올해 2월 인터뷰에서 한국방위산업진흥회(KDIA) 의장의 발언을 빌려 "한국은 미국에 이어 NATO 회원국 제2위 무기공급국"이라고 명기했다. KAI의 2026년 매출 전망은 전년 대비 60% 급증한 약 6조 원이다. KF-21 보라매의 UAE·인도네시아 수출 계약 성사 여부는 고부가 전투기 시장 진입의 분수령이 될 것이다.
지금 한국 방산 업황을 가늠하는 세 가지 지표가 있다. 첫째, RSF 계약 확대 속도(한화오션·HD현대의 미 해군 MRO 추가 수주 여부), 둘째, KF-21 1차 수출 계약 성사 시점(UAE·인도네시아), 셋째, 폴란드 21조 원 물량의 본계약 전환 일정이다. 이미 상당 부분 계약이 진행되었으나, 남아 있는 잔여 물량의 금융 지원(한국수출입은행법 개정 관련)과 최종 서명 일정이 국내 방산사의 2026년 하반기 및 중장기 실적 가시성을 결정짓는 가장 큰 단기 모멘텀이다. 29일 개막하는 샹그릴라 대화는 이 세 지표 모두에 방향 신호를 줄 것이다.
무기를 파는 나라는 전쟁이 끝나면 시장을 잃는다. 그러나 동맹의 전력을 유지하는 나라는 평시에도, 전시에도 수요가 끊기지 않는다. 한국 방산이 지금 넘어서려는 선은 바로 그 경계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