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확대보기케빈 마크 워시(Kevin Mark Warsh)는 1970년 4월 13일 미국 뉴욕주 올버니(Albany)에서 태어났다. 서부의 명문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에 진학하여 공공정책학(Public Policy)을 전공하였고, 1992년 우수한 성적으로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부 과정에서 정치와 경제가 교차하는 지점에 대한 통찰력을 기른 그는, 이후 하버드 대학교 로스쿨(Harvard Law School)로 진학하여 1995년 법무박사(J.D., 쿰 라우데 급) 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스탠퍼드와 하버드로 이어지는 학업 여정은 그가 훗날 복잡한 금융 규제와 경제 법안, 그리고 거시 경제 정책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다루는 데 필수적인 지적 자산이 되었다.
하버드 로스쿨 졸업 후, 워시는 전통적인 변호사의 길을 걷는 대신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월스트리트로 향했다. 1995년 글로벌 투자은행인 모건스탠리(Morgan Stanley)에 입사한 그는 인수합병(M&A) 부서에서 기업 금융의 최일선을 경험하게 된다. 약 7년간의 재직 기간 동안 그는 부사장(Vice President)을 거쳐 전무이사(Executive Director)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이 시기 워시는 복잡다단한 기업 간의 거래를 성사시키고 자본 시장의 치열한 생리를 몸소 체득하였다. 학계에만 머물렀던 여타 경제학자들과 달리, 이때 형성된 금융 시장에 대한 깊은 이해와 월스트리트 주요 인사들과의 폭넓은 네트워크는 훗날 그가 정책 입안자로 활동할 때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되었다.
2002년, 워시는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에 합류하며 본격적인 공직 생활의 닻을 올렸다. 그는 백악관 국가경제회의(National Economic Council, NEC)의 부서기 겸 대통령 경제정책 특별보좌관(Special Assistant to the President for Economic Policy)으로 임명되었다. 백악관 재직 시절 그는 자본 시장, 증권, 거시경제 이슈를 총괄하며 테러 이후 불안정했던 미국 경제의 활력을 되찾기 위한 다양한 정책 조율에 참여했다. 특히 외국인 투자 유치, 금융 규제 완화, 그리고 세제 개편 논의 등에서 부시 행정부의 친시장적 경제 기조를 확립하는 데 기여하며 워싱턴 정가에서 점차 자신의 입지를 굳혀나갔다.
당시 벤 버냉키(Ben Bernanke) 연준 의장은 학자 출신으로서 실물 금융 시장의 긴박한 흐름을 즉각적으로 파악하는 데 한계를 느꼈고, 이때 워시의 진가가 여과 없이 발휘되었다. 워시는 월스트리트의 은행장 및 금융계 거물들과 직접 소통하며 시장의 공포와 유동성 위기 상황을 가감 없이 연준 수뇌부에 전달하는 '연락책(Liaison)'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베어스턴스(Bear Stearns)의 몰락, 리먼 브러더스(Lehman Brothers)의 파산, 그리고 AIG 구제 금융 등 숨 가쁘게 돌아가던 위기의 순간들 속에서, 그는 주말을 반납하고 뉴욕 연방준비은행과 월가를 오가며 긴급 구제금융 패키지 설계와 시장 안정화 조치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버냉키 의장조차 훗날 회고록을 통해 위기 극복 과정에서 워시가 보여준 뛰어난 통찰력과 협상력을 극찬한 바 있다.
금융위기의 급한 불을 끈 이후, 연준이 장기적인 경기 부양을 위해 이른바 2차 양적완화(QE2)를 추진하려 하자 워시는 이에 대해 강한 회의감과 우려를 표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 정책과 막대한 돈 풀기가 자산 가격의 거품을 조장하고, 훗날 걷잡을 수 없는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연준의 과도한 시장 개입이 정치권으로 하여금 재정 건전성 확보나 노동 시장의 구조적 개혁과 같은 본질적인 문제 해결을 회피하게 만드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낳는다고 비판했다. 그는 통화 정책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하며 점진적인 출구 전략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러한 내부적인 시각 차이와 자신의 신념에 따라, 워시는 임기를 다 채우지 않고 2011년 초 연준 이사직에서 자진 사임하며 중앙은행을 떠났다. 그는 세계적인 화장품 제국 에스티 로더(Estée Lauder) 가문의 상속녀이자 경영진인 제인 로더(Jane Lauder)와 결혼하여 경제계와 산업계를 아우르는 강력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