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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수도 울산, 탄소중립의 실험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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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수도 울산, 탄소중립의 실험실이 되다

환경의 날 맞아 살펴본 울산의 탄소중립 현주소
폐플라스틱 연료·수소경제·친환경 선박으로 산업 지형 바꿔
울산 조선·항만 산업지대 전경. 울산은 친환경 선박과 수소경제, 자원순환 산업 육성을 통해 녹색산업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울산 남구이미지 확대보기
울산 조선·항만 산업지대 전경. 울산은 친환경 선박과 수소경제, 자원순환 산업 육성을 통해 녹색산업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울산 남구
대한민국 최대 산업도시 울산이 탄소중립 시대 산업 구조 전환의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울산시는 지난 5일 제31회 환경의 날을 맞아 '기후 행동으로 실현하는 녹색환경도시 울산'을 주제로 기념식을 개최하고 시민 참여 확대와 탄소중립 실천 의지를 강조했다.

하지만 울산의 녹색전환은 환경 캠페인에 머물지 않는다. 폐플라스틱을 항공유 원료로 전환하는 순환경제 사업부터 수소경제 구축, 친환경 선박 공급망 확대까지 산업 구조 자체를 바꾸려는 움직임이 산업 현장 곳곳에서 이어지고 있다.

7일 시에 따르면 석유화학과 조선, 자동차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울산은 오랫동안 한국 산업화를 상징하는 도시였다. 그러나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이 세계 경제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으면서 산업도시의 경쟁력 역시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글로벌 공급망의 탄소 규제 강화, 지속가능항공유(SAF) 의무 사용 확대, 친환경 선박 수요 증가 등으로 세계 산업 질서는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과거에는 생산량과 수출 규모가 경쟁력을 결정했다면 이제는 얼마나 적은 탄소를 배출하며 제품을 생산하느냐가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울산이 추진하는 폐플라스틱 자원순환 사업과 수소경제 구축, 친환경 선박 공급망 확대는 모두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전략이다. 환경 정책을 넘어 산업도시 울산의 미래 성장 동력을 다시 설계하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산업도시 울산, 탄소중립의 최전선에 서다


울산은 국내 최대 석유화학단지와 세계적인 조선소, 자동차 생산시설이 밀집한 도시다.

산업 경쟁력의 상징이었던 공장과 산업단지는 이제 탄소중립이라는 새로운 과제와 마주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대규모 석유화학 설비 증설로 글로벌 공급과잉이 심화되면서 기존 범용 석유화학 중심 성장 모델의 한계도 드러나고 있다.

산업계에서는 탄소중립을 환경 규제가 아닌 생존 전략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세계 시장이 친환경 제품과 저탄소 생산체계를 요구하는 상황에서 산업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 과제가 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울산 산업계 곳곳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폐플라스틱에서 항공유로…석유화학 산업의 새로운 해법


대표적인 사례가 울산시가 추진 중인 재활용탄소연료(RCFs) 규제자유특구다.

이 사업은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해 생산한 재활용탄소연료를 항공유와 경유, 저탄소 화학원료로 활용하는 것이 핵심이다.

배경에는 석유화학 산업의 위기가 있다. 중국발 공급과잉과 글로벌 경기 둔화가 이어지면서 범용 제품 중심의 수익 구조는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반면 국제 항공업계에서는 지속가능항공유(SAF) 수요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유럽연합은 SAF 의무 혼합 제도를 시행하고 있으며 국제 항공업계 역시 탄소 감축 목표를 강화하고 있다.

울산시는 SK지오센트릭과 HD현대케미칼 등과 함께 폐플라스틱에서 재활용탄소연료를 생산하고 이를 다시 화학 원료로 활용하는 순환경제 체계 구축에 나서고 있다.

폐기물을 처리하는 도시에서 자원을 생산하는 도시로의 전환이 시도되고 있는 셈이다.

폐플라스틱을 자원으로 되돌리는 순환경제가 산업 전환의 한 축이라면 또 다른 축은 에너지 체계의 변화다.

대한항공 화물기에 지속가능항공유(SAF)를 급유하고 있다. 울산은 폐플라스틱을 항공유와 저탄소 화학원료로 전환하는 재활용탄소연료(RCFs) 사업을 통해 순환경제 기반 산업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대한항공이미지 확대보기
대한항공 화물기에 지속가능항공유(SAF)를 급유하고 있다. 울산은 폐플라스틱을 항공유와 저탄소 화학원료로 전환하는 재활용탄소연료(RCFs) 사업을 통해 순환경제 기반 산업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수소도시를 넘어 청정수소도시로


울산은 국내 수소경제를 대표하는 도시로 꼽힌다.

국내 수소 생산량의 약 절반 가까이가 울산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약 198㎞ 규모의 수소 배관망도 구축돼 있다. 생산과 저장, 운송, 활용까지 하나의 도시 안에서 연결되는 국내 최대 규모의 수소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울산항을 중심으로 액화수소 저장시설과 물류 체계 구축이 추진되고 있으며 수소충전소 확대와 수소차 보급, 수소도시 조성 사업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수소 산업의 관심은 사용 확대를 넘어 생산 방식으로 옮겨가고 있다.

현재 활용되는 수소 상당수는 정유·석유화학 공정에서 생산되는 부생수소 또는 화석연료 기반 수소다. 수소가 진정한 친환경 에너지로 평가받기 위해서는 생산 단계의 탄소 배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효성화학 울산 용연공장 전경. 울산은 석유화학 공정에서 생산되는 부생수소를 기반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수소 인프라를 구축해 왔으며, 최근에는 청정수소 생산 확대와 수소경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효성화학이미지 확대보기
효성화학 울산 용연공장 전경. 울산은 석유화학 공정에서 생산되는 부생수소를 기반으로 국내 최대 규모의 수소 인프라를 구축해 왔으며, 최근에는 청정수소 생산 확대와 수소경제 전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사진=효성화학


이에 따라 재생에너지 기반 그린수소와 폐기물 자원화 기술을 활용한 수소 생산 방식에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울산은 기존 산업 인프라와 항만 시설을 활용해 생산부터 활용까지 연결되는 수소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는 국내 최적지로 평가받는다.

수소경제 확대는 에너지 산업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친환경 연료를 사용하는 차세대 선박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산업 역시 새로운 전환기를 맞고 있다.

친환경 선박 시대, 조선산업도 변한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세계 조선업계는 친환경 선박 경쟁에 돌입했다.

LNG 추진선에 이어 암모니아와 수소 추진선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선박 기술의 패러다임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울산시는 HD현대중공업과 함께 친환경 선박 소부장 특화단지 조성을 추진하며 공급망 경쟁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그동안 해외 의존도가 높았던 액화가스 펌프 등 핵심 기자재를 국산화하고 기자재 생산부터 실증, 선박 건조까지 이어지는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목표다.

업계에서는 친환경 선박 시대 경쟁력이 단순한 건조 능력을 넘어 핵심 기술과 공급망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세계 최대 수준의 조선산업 기반을 보유한 울산은 친환경 선박 산업 전환의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세계 최초 암모니아 추진 중형 가스운반선이 시운전을 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규제 강화로 친환경 연료 추진선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울산은 암모니아·수소 등 차세대 친환경 선박 건조와 공급망 구축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HD현대중공업이미지 확대보기
HD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세계 최초 암모니아 추진 중형 가스운반선이 시운전을 하고 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탄소 규제 강화로 친환경 연료 추진선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울산은 암모니아·수소 등 차세대 친환경 선박 건조와 공급망 구축의 핵심 거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사진=HD현대중공업


녹색전환은 산업 현장에서도 시작된다


산업 전환은 대규모 프로젝트에만 머물지 않는다.

울산시는 전기굴착기와 전기지게차 등 무공해 건설기계 보급 사업을 확대하고 있으며 노후 산업단지 환경 개선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매곡일반산업단지에서는 보행환경과 녹지 공간, 기반시설 정비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생산 중심 공간이었던 산업단지를 보다 안전하고 친환경적인 공간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러한 변화 역시 산업도시의 녹색전환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

기후위기 시대, 산업도시의 새로운 선택


울산의 녹색전환은 환경 정책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기후변화는 이미 산업 현장과 도시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상청 장기 관측 자료에 따르면 울산의 연평균 기온은 1946년 이후 10년당 0.27℃ 상승했다. 동해 수온 상승과 산업 열섬 현상이 맞물리면서 폭염과 열대야, 집중호우 위험도 커지고 있다.

기후위기는 더 이상 미래의 문제가 아니다. 산업단지의 생산성, 항만 운영, 에너지 수급, 노동 환경까지 영향을 미치는 현실의 경제 문제다.

폐플라스틱을 항공유 원료로 바꾸고, 수소 공급망을 구축하며, 친환경 선박 시대를 준비하는 현재의 움직임은 결국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기후위기 시대 산업도시는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대한민국 산업화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 도시 울산은 지금 그 해답을 가장 먼저 실험하고 있다. 이는 단순한 환경 정책이 아니라 산업도시의 미래를 다시 설계하는 거대한 전환의 시작이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