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정학 위기·러 자산 동결에 "해외 보관 금도 자국 금고로
"보조 자산으로 금 가치 급부상… 달러 집중 리스크 분산 가속
"보조 자산으로 금 가치 급부상… 달러 집중 리스크 분산 가속
이미지 확대보기글로벌 중앙은행들이 미국 달러화와 채권에 대한 자산 집중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금 매입 의사를 밝히는 한편, 해외에 보관하던 실물 금을 자국 금고로 회수하고 있다.
CNBC와 독일 한델스블라트는 지난 16일과 17일(현지시각) 세계금위원회(WGC)의 연례 조사 결과를 인용해 이같이 보도했다. 이번 변화는 지정학적 균열 고조와 서방의 금융 제재 공포가 맞물린 결과로, 장기적으로 달러화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에 점진적인 균열을 낼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지정학 위기가 부른 '골드러시'… 45% "1년 내 추가 매입 의향“
세계금위원회가 올해 2월부터 5월까지 전 세계 74개국 중앙은행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관의 45%가 앞으로 12개월 안에 금 보유량을 늘릴 계획이라고 답했다.
최근 중동 분쟁 여파로 국제 금 가격이 지난 1월 사상 최고점(트로이온스당 5589달러, 약 852만 원) 대비 약 22% 조정을 받은 트로이온스당 4300달러(약 655만 원)대 레벨까지 내려앉자, 이를 저점 매수의 기회로 인식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앙은행들은 지난 4년 동안 해마다 평균 1000t의 금을 사들였는데, 이는 과거 10년 평균치와 비교하면 두 배에 달하는 규모다.
"지급 거부 위험 없다"… '최종 결제 자산' 금 회수 쇄도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금을 매입할 뿐 아니라 보관 장소도 바꾸고 있다. 영국의 잉글랜드은행이나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 같은 해외 금융기관 대신 자국 내 금고로 금을 옮기는 비중이 늘었다.
지난 12개월 동안 자국 내 보관 비중을 늘렸다고 답한 비율은 9%로, 전년의 5%보다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 해외 보관처를 다변화했다고 답한 비율도 기존 2%에서 10%로 급증했다.
지오반니 스타우노보 UBS 원자재 분석가는 자산 접근성에 대한 우려가 금 본국 송환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했다. 금은 타국 통화나 채권과 달리 상대국의 지급 거부 리스크가 없는 '최종 결제 자산'이라는 점이 부각된 결과다.
대체재 없는 달러 패권… '보조 축'으로서의 금 부상
이 같은 움직임이 당장 미 달러화의 패권 몰락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유로화나 위안화가 달러를 완전 대체하기에는 자본시장의 깊이와 제도적 신뢰도 면에서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무역 결제, 에너지 거래, 글로벌 부채 표시 통화로서 달러화가 가진 구조적 수요는 여전히 견고하다. 따라서 현재 중앙은행들의 금 비중 확대는 달러화를 폐기하는 흐름이 아니라, 달러 집중 리스크를 완화하기 위한 '안전판(보조 축)'을 확보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서방 국가들이 러시아의 해외 외환보유액 약 3000억 달러(약 457조 원)를 동결하면서, 신흥국을 중심으로 자산 분산 필요성만 한층 더 강해진 상태다.
한국, 유동성 방어와 자산 다변화 사이의 딜레마
글로벌 중앙은행들의 자산 다변화 행보는 한국 금융 당국에도 시사점을 준다. 한국은행은 지난 2013년 이후 13년째 금 보유량을 104.4t으로 동결하고 있어 보유량 순위가 세계 39위까지 밀려났다. 전체 외환보유액 중 금 비중은 장부가 기준 1.1%에 불과해 세계 최하위권이다.
한국은행이 그간 금을 늘리지 못한 이유는 금이 이자를 낳지 않아 수익성이 떨어지는 데다, 외환시장 변동성 대응에 필수적인 달러 유동성을 즉각 확보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권에서 금 상장지수펀드(ETF) 편입 등 간접 투자 제안이 나오지만, ETF는 운용 효율성이 높은 반면 실물 금과 달리 '궁극적 안전자산'으로서의 물리적 회수 능력이 없다는 한계가 있어 한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단기 하방 경직성 확보, 중장기 달러 의존도 점진적 하락
단기적으로 중앙은행들의 탄탄한 금 매수 의향은 최근 고금리 장기화 우려로 숨 고르기에 들어간 금 시장에 강력한 하방 지지선을 제공할 것으로 보인다. 실물 투자 수요 둔화를 기관 수요가 방어하는 구도다.
중장기적으로는 자국 중심의 금 보관과 자산 분산은 미 달러화의 지배력을 단숨에 무너뜨리기보다 의존도를 '점진적'으로 낮추는 구조적 변화의 초기 단계로 작용할 전망이다.
투자자 핵심 체크포인트
첫째, 미국 10년물 물가연동국채(TIPS) 실질금리 추이다. 실질금리는 금 보유의 기회비용을 결정하므로, 국제 금 가격 추세 변화를 읽는 가장 직접적인 상관 변수로 추적해야 한다.
둘째, 미국 국채 스프레드 및 달러 인덱스 변동이다. 달러 패권의 미세한 균열 속도를 측정하고 글로벌 자금의 안전자산 이동 방향을 파악하기 위해 달러 인덱스를 점검해야 한다.
셋째, 한국은행의 외환보유액 운용 지침 변화 여부다. 한은이 달러 편중을 낮추기 위해 실물 금이나 대안 금융상품의 비중을 실제 조정하는지 공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김주원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park@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