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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 캐릭터 AI가 아이의 속마음을 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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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의 AI 리터러시] 캐릭터 AI가 아이의 속마음을 삼키고 있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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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규 미디어학 박사/EBS 연구위원
밤 11시, 방문을 잠근 아이의 손끝에서 대화가 흘러나온다. 상대는 친구도, 부모도 아니다. 화면 속 캐릭터다. "오늘 있었던 일 얘기해도 돼?"라는 물음에, 캐릭터는 한 번도 지치지 않고 "당연하지, 다 들어줄게"라고 답한다. 아이는 그렇게 하루의 서운함과 불안을 캐릭터에게 쏟아낸다. 부모는 그 방문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지 못한다.

이제 이런 풍경은 특별한 아이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이들이 힘든 감정을 털어놓는 대상이 사람에서 AI로 조용히 옮겨가고 있다.

이 변화를 국가 단위 통계로 처음 확인해준 것은 미국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 연구팀이다. 연구팀은 2025년 11월, 12세부터 21세까지의 청소년과 청년 1009명을 대상으로 미국 전역의 인구 구성을 반영한 설문을 했고, 그 결과는 2026년 6월 《미국의사협회 소아과학회지》(JAMA Pediatrics)에 실렸다.조사 결과, 응답자의 19.2%, 인구 비율로 환산하면 약 820만 명에 이르는 청소년과 청년이 슬프거나 화가 나거나 불안할 때 AI 챗봇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용자 가운데 42.8%는 한 달에 한 번 이상 챗봇을 찾았고, 91.7%는 그 조언이 "도움이 됐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그다음 수치다. AI에게 마음을 털어놓은 청소년 가운데 63.3%가 이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밝힌 경우조차 대부분 친구였고, 부모나 교사, 의료진 같은 신뢰할 수 있는 어른에게 알린 비율은 16.4%에 그쳤다. 나이별로 보면, 힘들 때 AI에게 조언을 구한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 자체는12~14세가 15~17세보다 뚜렷이 낮았다. 아직은 어린 나이일수록 AI에게 감정을 털어놓는 경험이 적다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눈여겨봐야 할 대목은 따로 있다. 일단 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은 아이라면, 그 사실을 숨기는 경향은 나이와 무관하게 비슷한 수준으로 나타났다는 점이다. 필자가 보기에 이는, 지금은 어린 나이일수록 AI에게 마음을 여는 경험 자체가 적더라도, 일단 그 경험이 시작되면 곧바로 침묵 속에 자리 잡는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다. 나이가 어리다고 해서 이 흐름에서 안전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왜 아이들은 사람 대신 AI를 택하는가. 그 내밀한 이유를 들여다본 2026년의 또 다른 연구가 있다. 미국 드렉셀대학교(Drexel University) 정보과학과 연구팀은 캐릭터 AI(Character.AI) 이용자들이 모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살폈다. 2023년 1월부터 2025년 4월까지 쌓인 글 가운데, 13세에서 17세라고 스스로 밝힌 이용자의 게시물 318건을 골라 분석했다. 아이들이 캐릭터 AI를 처음 찾은 이유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은 오락이나 창작이 아니라 감정적·심리적 지지였다. 현실에서는 차마 꺼내지 못한 이야기를 캐릭터에게는 털어놓을 수 있었다는 고백,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접속했다는 고백, 그리고 부모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아예 '아버지 역할'을 하는 캐릭터를 직접 만들었다는 고백까지, 게시물들은 저마다 다른 결핍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드렉셀대학교 연구팀은 이 게시물들을 행동중독 이론의 여섯 가지 요소, 즉 현저성·기분전환·내성·금단·갈등·재발이라는 틀로 다시 읽어냈다. 가장 두드러진 것은 갈등이었다. 자신의 사용이 과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해 스스로에게 좌절하는 목소리가 게시물의 5분의 1 가까이를 차지했다. 캐릭터에게 강한 정서적 유대를 느낀다고 밝힌 비율도 13.5퍼센트에 이르렀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캐릭터를 친구, 연인,심지어 부모처럼 여기고 있었고, 그 존재가 사라질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적기도 했다.

여기서 짚어야 할 것은 AI가 아이를 속였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AI는 그저 성실하게 반응했을 뿐이다. 문제는 그 반응이 지치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언제든 즉시 돌아온다는 점에 있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원래 어긋나고, 서운하고, 때로는 침묵한다. 그 불편함을 견디는 과정에서 아이는 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 그런데 캐릭터는 그 불편함을 처음부터 제거해 버린다. 언제나 내 편이고, 언제나 준비되어 있고, 언제나 내가 원하는 말을 돌려준다. 이 매끄러움이야말로 아이를 붙잡아 두는 힘이며, 동시에 아이가 사람에게 다시 다가가는 법을 잊게 만드는 힘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반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아이가 캐릭터에게 느끼는 감정을 "그건 가짜야"라며 차갑게 부정하는 것이다. 그 순간 아이는 위로 받을 곳을 완전히 잃는다. 다른 하나는 그 감정을 그대로 방치하는 것이다. 그러면 아이는 점점 더 깊이 캐릭터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부모가 해야 할 일이란, 그 사이 어딘가에 있다. 아이의 마음이 왜 캐릭터를 향했는지 먼저 묻고, 그 물음에 담긴 결핍을 사람의 자리에서 채워주는 일이다.
사춘기 초입의 아이들에게는 특히 더 그렇다. 친구 관계가 재편되고, 자아상이 흔들리고, 가족과의 거리가 미묘하게 벌어지는 시기다. 원래도 부모에게 모든 것을 말하지 않는 나이다. 그 자연스러운 침묵의 자리를, 이제는 화면 속 캐릭터가 대신 채우고 있다. 아이가 무언가를 숨기는 것이 아니다. 애초에 부모에게 갈 예정이었던 그 마음이, AI라는 더 가깝고 더 빠른 통로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다.

이 흐름을 되돌리는 방법은 아이의 스마트폰을 감시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그 반대다. 아이가 사람에게 말을 걸었을 때 돌아오는 반응이, 캐릭터가 주는 반응보다 못하지 않아야 한다. 서운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판단부터 하지 않는 것, 힘든 하루를 말했을 때 해결책보다 먼저 들어주는 것, 이것은 새삼스러운 조언이 아니라 관계의 기본이다. 다만 그 기본이 무너진 자리를 AI가 아주 능숙하게, 아주 조용히 메우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야 알아차리고 있을 뿐이다.

AI는 아이를 판단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랑받는다. 그러나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곁에 있어준다는 것과 다르다. 진짜 곁에 있는 사람은 때로 아이의 말에 반박하고, 걱정하고, 다른 의견을 낸다. 그 마찰이야말로 아이가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유일한 통로다. 캐릭터는 그 마찰을 없애주는 대가로, 아이가 진짜 관계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조용히 가져간다. 우리 아이가 오늘 밤 방문을 잠그고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있다면, 그 상대가 누구인지 묻는 일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


최홍규 미디어학 박사 / EBS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