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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울산공단 대해부 ① 공장은 돌아가는데 이익이 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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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울산공단 대해부 ① 공장은 돌아가는데 이익이 줄었다

자동차·석유제품·석유화학 수출 동반 감소…선박 50% 증가에도 울산 수출 2.1% 줄어
중국·중동 증설에 범용제품 가격 하락…남구 제조업 생산 40% 넘는 석유화학부터 흔들렸다
대기업의 감산과 사업재편, 정비·배관·운송 협력업체와 지역 고용으로 번지는 충격
울산 국가산업단지에 정유·석유화학 설비와 저장탱크, 배관망이 밀집해 있다. 공장은 계속 가동되고 있지만 중국·중동의 공급 확대와 제품 가격 하락으로 울산 석유화학산업의 수익성이 약화하고 있다. 사진=울산시이미지 확대보기
울산 국가산업단지에 정유·석유화학 설비와 저장탱크, 배관망이 밀집해 있다. 공장은 계속 가동되고 있지만 중국·중동의 공급 확대와 제품 가격 하락으로 울산 석유화학산업의 수익성이 약화하고 있다. 사진=울산시
2026년 7월, 울산 남구 석유화학단지에서는 공장의 가동음과 기업의 체감경기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원료를 실은 배가 부두에 들어오고 탱크와 배관은 쉬지 않고 움직인다. 제품도 공장 밖으로 출하된다.

그러나 같은 양을 팔고도 손에 남는 돈은 줄었다. 2025년 울산의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 수출은 물량이 늘었지만 금액은 각각 9.5%, 8.3% 감소했다.

국제유가와 제품 가격이 내려가면서 수출단가가 생산량보다 빠르게 떨어졌다. 공장의 위기는 굴뚝보다 장부에서 먼저 시작됐다.
올해 들어 산업별 격차는 더 벌어졌다. 2026년 3월 울산의 광공업 생산은 전년 같은 달보다 3.6% 증가했다. 자동차가 8.2%, 기계장비가 65.0% 늘며 전체 지수를 끌어올렸다. 같은 기간 화학제품 생산은 9.9% 줄었다.

도시 전체의 생산지표는 상승했지만 석유화학 공장이 밀집한 남구의 체감경기까지 함께 회복된 것은 아니다.

정부도 이를 지역 주력산업의 구조적 위기로 판단했다.

산업통상부는 2026년 6월 15일부터 2년간 울산 남구를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했다. 고용노동부도 남구의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 지정기간을 2027년 1월 11일까지 연장했다.

석유화학산업이 남구 제조업 생산의 40% 이상을 차지해 기업의 감산과 사업재편이 지역경제 전반으로 번질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울산공단은 여전히 한국 제조업의 가장 거대한 생산기지다. 동시에 한 업종의 가격이 무너졌을 때 도시 전체가 얼마나 깊이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산업구조의 압축판이 됐다.

74.4㎢에 집적된 한국 중화학공업


‘울산공단’은 행정적으로 하나의 산업단지를 가리키지 않는다.

남구·동구·북구에 걸친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와 울주군 온산국가산업단지를 함께 부르는 산업적 개념에 가깝다.

두 국가산업단지의 지정면적은 7,440만7,000㎡다. 울산·미포산단이 4,846만8,000㎡, 온산산단이 2,593만9,000㎡를 차지한다. 산업시설용지만 5,103만㎡에 이른다.

2024년 9월 한국산업단지공단 통계 기준으로 입주업체는 1,470곳, 가동업체는 907곳, 고용인원은 11만4,641명이다. 화학업체만 318곳이 들어서 있다.

산업의 밀도는 토지 배치에서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두 산단의 산업시설용지 가운데 석유정제용지는 약 1,019만㎡, 화학제품용지는 약 1,477만㎡다. 합치면 2,496만㎡로 전체 산업시설용지의 48.9%에 이른다. 울산공단 산업용지 두 평 가운데 한 평 가까이가 정유와 화학제품 생산에 배정된 셈이다.

자동차·조선·비철금속이 함께 버티고 있어도 정유·석유화학의 충격을 도시 밖 문제로 떼어놓기 어려운 이유다. 이는 울산시 토지이용계획 수치를 합산한 결과다.

지역경제의 구조도 공장과 맞물려 있다. 울산의 지역내총생산에서 광업·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56.0%다. 서비스업은 23.0%다. 제조업 생산과 수출이 늘면 임금과 소비, 세수와 물류가 함께 움직이지만 공장 수익성이 떨어지면 그 충격도 도시 안에 오래 머문다.

이 구조는 울산 성장의 동력이었다.

원유를 정제해 휘발유·경유·나프타를 만들고, 나프타에서 에틸렌과 프로필렌 같은 기초유분을 뽑아 합성수지·합성고무·화학섬유 원료로 연결했다. 여기에 자동차와 선박, 비철금속 생산이 붙었다. 원료의 반입부터 가공과 조립, 선적까지 한 도시 안에서 이어졌다.

대한유화 나프타분해시설(NCC). 이곳에서 생산한 에틸렌과 프로필렌은 합성수지·합성고무·화학섬유 등 울산 석유화학산업의 후속 공정으로 이어진다. 사진=대한유화이미지 확대보기
대한유화 나프타분해시설(NCC). 이곳에서 생산한 에틸렌과 프로필렌은 합성수지·합성고무·화학섬유 등 울산 석유화학산업의 후속 공정으로 이어진다. 사진=대한유화

촘촘한 집적은 호황기에 강한 힘을 냈다. 배관과 부두, 공업용수, 전력, 정비인력과 물류망을 함께 쓸 수 있었다.

불황에는 충격을 전달하는 통로가 된다. 한 공장의 생산량 감소는 원료 공급업체와 제품 구매업체, 배관·정비·운송·포장업체의 주문 감소로 이어진다.

산업 생태계가 가까이 연결된 만큼 손실도 짧은 시간 안에 이동한다.

855억7,000만달러 속에 감춰진 산업별 온도차


울산세관이 집계한 2025년 울산 수출액은 855억7,000만달러다. 전년보다 2.1% 줄었다. 금액만 보면 소폭 감소에 가깝지만 품목별 성적표를 펼치면 울산공단 내부의 온도차가 드러난다.

자동차 수출은 241억8,000만달러로 11.0% 감소했다. 석유제품은 233억7,000만달러로 9.5%, 석유화학제품은 142억6,000만달러로 8.3% 줄었다. 반면 선박 수출은 고부가가치 액화천연가스 운반선 인도에 힘입어 50.0% 증가한 96억7,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자동차와 석유제품, 석유화학, 선박 네 품목이 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3.5%다. 울산 수출의 방향이 소수 주력산업에 의해 결정되는 구조다. 선박이 큰 폭으로 늘어도 자동차와 정유·석유화학의 동반 감소를 모두 메우지 못했다.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대형 LNG운반선이 건조되고 있다. 2025년 울산 선박 수출은 전년보다 50.0% 증가했다. 사진=HD현대이미지 확대보기
HD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대형 LNG운반선이 건조되고 있다. 2025년 울산 선박 수출은 전년보다 50.0% 증가했다. 사진=HD현대

조선업의 수출 증가는 2~3년 전에 수주한 선박이 완성돼 인도된 결과다.

대형 선박 한 척의 인도 시점에 따라 월별·연간 수출액이 크게 움직인다.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은 공장을 계속 돌려 대규모 물량을 반복 생산하고 판매한다. 조선소의 수주잔량이 울산 경제를 떠받치는 동안 석유화학단지에서는 매달 제품 가격과 가동률, 원료비가 수익성을 압박하고 있다.

자동차도 생산과 수출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2025년 자동차 수출 감소에는 미국 등 주요 시장 판매 부진과 현지 생산 확대가 영향을 줬다. 울산공장이 차량을 생산해도 해외공장 생산 비중이 커지면 울산항을 통해 나가는 완성차 물량은 줄 수 있다.

울산항 자동차전용 수출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완성차가 줄지어 서 있다. 2025년 울산 자동차 수출은 전년보다 11.0% 감소했다. 사진=울산항만공사이미지 확대보기
울산항 자동차전용 수출부두에 선적을 기다리는 완성차가 줄지어 서 있다. 2025년 울산 자동차 수출은 전년보다 11.0% 감소했다. 사진=울산항만공사

한국무역협회는 미국의 품목관세와 현지 생산 확대를 울산 자동차 수출 감소의 주요 배경으로 분석했다.

수출액 하나만으로 울산 경기를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조선소는 인도 물량이 늘고 자동차공장은 생산을 유지하는 데 석유화학 공장은 가격 하락과 공급과잉에 부딪쳤다.

같은 산업도시 안에서 호황과 불황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많이 만들고 더 많이 팔았지만 매출은 줄었다


2025년 울산의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 수출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수출 물량이다.

두 품목 모두 해외로 나간 물량은 전년보다 늘었다. 수출금액은 감소했다. 제품을 덜 만들어 생긴 매출 감소보다 국제시장에서 제품 한 단위가 받는 가격이 낮아진 영향이 컸다는 뜻이다.

제조업은 생산량이 늘면 고정비를 더 많은 제품에 나눠 담을 수 있다. 그러나 판매가격이 원료비와 에너지비, 물류비보다 빠르게 떨어지면 가동률을 높여도 이익은 회복되지 않는다.

설비를 멈추면 고정비 부담이 커지고 계속 돌리면 낮은 가격에 제품이 쌓인다. 생산을 늘리기도, 줄이기도 어려운 구간이다.

석유화학 공장은 여러 공정이 배관으로 이어져 있다. 한 설비에서 생산한 기초유분이 옆 공장의 원료가 된다. 특정 공정을 줄이면 앞뒤 설비의 운영까지 다시 맞춰야 한다. 대형 장치산업에서 가동률 조정이 일반 제조공장보다 복잡한 이유다.

가격 하락은 매출에서 끝나지 않는다. 기업은 수익성이 나빠지면 신규 설비투자와 정기보수 범위, 외주 발주, 연구개발, 신규채용을 조정한다. 대기업의 생산라인이 계속 가동돼도 협력업체의 작업일수와 계약금액은 먼저 줄어들 수 있다.

2025년 12월 울산의 광공업 생산은 선박을 포함한 기타 운송장비와 기계장비 증가로 전년 같은 달보다 6.5% 늘었다. 같은 달 자동차 생산은 2.2%, 화학제품은 3.4% 줄었다. 올해 3월에도 화학제품 생산은 9.9% 감소했다.

일시적인 월별 흔들림을 넘어 화학제품 생산의 약세가 여러 시점에서 반복되고 있다.

중국의 공장이 커지자 울산의 가격이 낮아졌다


한국 석유화학산업의 성장방식은 오랫동안 대규모 생산과 수출에 맞춰져 있었다.

국내 시장에서 소비하고 남은 물량을 중국과 동남아시아 등에 판매했다. 중국의 제조업이 빠르게 성장하던 시기에는 기초유분과 합성수지 수요도 함께 늘었다.

울산을 비롯한 국내 석유화학단지는 대형 설비를 돌려 생산단가를 낮추고 가까운 중국시장에 제품을 공급했다.

중국은 수입국에서 생산국으로 이동했다. 자국 내 정유·석유화학 설비를 대규모로 늘리며 기초유분과 범용 합성수지의 자급률을 높였다.

산둥성 옌타이 앞바다의 위룽섬에도 정유와 기초화학제품, 합성수지를 한 곳에서 생산하는 초대형 일체화단지가 들어섰다.

중국 산둥성 옌타이 앞바다에 조성된 위룽섬 정유·석유화학 일체화단지. 연간 원유 정제 2,000만t과 에틸렌 300만t 생산능력을 갖춘 1단계 설비가 2024년 9월부터 순차 가동에 들어갔다. 중국의 초대형 설비 증설은 범용 석유화학제품 공급을 늘려 울산 기업의 가격 경쟁을 압박하고 있다. 사진=난산그룹이미지 확대보기
중국 산둥성 옌타이 앞바다에 조성된 위룽섬 정유·석유화학 일체화단지. 연간 원유 정제 2,000만t과 에틸렌 300만t 생산능력을 갖춘 1단계 설비가 2024년 9월부터 순차 가동에 들어갔다. 중국의 초대형 설비 증설은 범용 석유화학제품 공급을 늘려 울산 기업의 가격 경쟁을 압박하고 있다. 사진=난산그룹


중동에서도 값싼 원료를 앞세운 대형 설비가 가동됐다. 공급은 빠르게 늘었지만 세계 수요는 같은 속도로 따라가지 못했다.

산업연구원은 중국과 중동의 대규모 증설, 저가 공세, 수요 증가세 둔화와 한국 기업의 원가 경쟁력 약화를 구조적 위기의 핵심 원인으로 진단했다.

범용제품을 대량 생산해 수출하는 기존 성장방식이 한계에 이르면서 감산과 설비 폐쇄, 투자 축소가 현실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범용제품은 품질 차이를 크게 벌리기 어렵다. 제품 규격이 비슷하면 구매자는 가격과 운송비, 공급 안정성을 우선한다.

중국이 필요한 제품을 자국 공장에서 만들고 남는 물량까지 해외에 판매하면 울산산 제품은 중국시장과 제3국 시장에서 동시에 가격 경쟁을 벌여야 한다.

울산 기업들이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을 추진해 온 배경도 여기에 있다.

전기차·반도체·의료·친환경 소재처럼 기술장벽이 높고 고객 맞춤형 생산이 필요한 제품의 비중을 늘려 범용제품 가격 경쟁에서 벗어나려는 전략이다.

문제는 전환 속도다. 새로운 제품은 연구개발과 고객사 인증, 생산설비 변경, 장기 공급계약까지 시간이 걸린다. 기존 범용제품 설비는 이미 거대한 자산으로 장부에 남아 있다.

새 사업의 매출이 충분히 커지기 전에 기존 사업의 수익성이 빠르게 떨어지면 전환에 필요한 투자 여력부터 줄어든다.

석유화학 위기는 대기업 담장에서 멈추지 않는다


울산 석유화학산업의 고용은 대기업 정규직만으로 구성되지 않는다.

공장 안팎에는 설비정비와 배관, 전기·계장, 비계, 도장, 청소, 경비, 운송, 하역, 포장, 폐기물 처리를 맡는 협력업체가 연결돼 있다. 정기보수 기간에는 대규모 인력이 투입되고 공장 가동률이 내려가면 원료와 제품을 나르는 차량의 회전도 줄어든다.

S-OIL 사업장에서 협력업체 ㈜대공 근로자들이 정기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울산 석유화학산업은 설비정비·배관·전기·계장·운송 등 다층 협력업체의 일자리와 맞물려 있다. 공장 가동률과 정비 투자가 줄면 발주와 작업일수도 함께 감소한다. 사진=S-OIL이미지 확대보기
S-OIL 사업장에서 협력업체 ㈜대공 근로자들이 정기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울산 석유화학산업은 설비정비·배관·전기·계장·운송 등 다층 협력업체의 일자리와 맞물려 있다. 공장 가동률과 정비 투자가 줄면 발주와 작업일수도 함께 감소한다. 사진=S-OIL

대기업은 여러 사업장과 제품군을 조정하며 손실을 분산할 수 있다.

한두 곳의 거래처에 매출을 의존하는 협력업체는 발주량과 계약단가 변화가 곧바로 경영에 반영된다. 설비투자가 연기되면 제작업체의 일감이 줄고 정비 범위가 축소되면 현장 투입인원도 감소한다.

고용노동부가 울산 남구를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하면서 중소·중견 협력업체를 별도로 언급한 이유다.

정부는 석유화학산업의 사업재편과 설비 합리화 과정에서 고용불안이 협력업체와 지역 전체로 확산될 가능성을 주요 위험으로 보고 있다. 고용유지지원금과 직업훈련, 생활안정자금 지원요건을 완화해 충격을 줄이겠다는 대책도 내놨다.

울산시는 2026년 석유화학 및 관련 업종 재직자에게 1인당 50만원의 울산페이를 지급하는 ‘석유화학업 근로자 안심페이’ 사업을 시작했다.

대상 업종에는 코크스·연탄 및 석유정제품, 화학물질·화학제품, 고무·플라스틱, 비금속광물제품 제조업이 포함됐다. 위기의 범위를 석유화학 대기업에서 인접 제조업과 근로자의 소비생활까지 넓혀 잡은 것이다.

공장 소득은 지역 상권으로 흐른다. 교대근무자가 줄거나 성과급과 초과근무수당이 감소하면 공단 주변 음식점과 숙박업소, 대리운전, 소매업 매출도 영향을 받는다.

산업위기는 생산지수에서 시작해 임금과 소비를 거쳐 도시의 생활경기로 이동한다.

조선·자동차가 울산 전체를 지탱할 수 있나


조선업은 울산 경제의 완충장치 역할을 하고 있다.

친환경·고부가가치 선박의 수주가 수출로 이어지며 2025년 울산 선박 수출은 전년보다 50.0% 늘었다. 자동차 생산도 올해 3월 전년 같은 달보다 8.2% 증가했다. 석유화학의 약세가 곧바로 울산 제조업 전체의 침체로 번지는 것을 두 산업이 막고 있다.

그러나 조선·자동차의 호조가 석유화학 협력업체의 손실을 그대로 흡수하기는 어렵다.

필요한 기술과 작업방식, 공급망이 다르다. 석유화학 배관·공정정비 업체가 곧바로 선박 블록이나 자동차 부품 생산으로 옮겨가기 힘들다. 고용의 업종 간 이동에는 재교육과 설비전환, 신규 거래처 확보가 뒤따라야 한다.

조선 수출은 선박 인도 일정에 따라 변동폭이 크다. 자동차산업도 해외 현지생산 확대와 통상정책 변화의 영향을 받는다. 울산이 한 업종의 호황으로 다른 업종의 구조적 부진을 견디는 방식은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산업의 다변화는 업종 이름을 늘리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기존 석유화학 기업과 협력업체가 보유한 공정기술, 소재 생산능력, 정비 경험을 새로운 제품과 시장으로 옮길 통로가 필요하다.

대기업의 고부가 제품 투자와 함께 중소 협력업체의 설비전환과 기술개발, 인력 재교육이 같은 속도로 진행돼야 한다.

울산과학대학교 화학·바이오공정훈련센터에서 교육생들이 공정설비 실습을 하고 있다. 석유화학 구조개편의 성패는 기존 숙련인력과 협력업체 인력이 새로운 공정과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재교육과 현장 훈련이 뒷받침되느냐에 달려 있다. 사진=울산과학대학교이미지 확대보기
울산과학대학교 화학·바이오공정훈련센터에서 교육생들이 공정설비 실습을 하고 있다. 석유화학 구조개편의 성패는 기존 숙련인력과 협력업체 인력이 새로운 공정과 산업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재교육과 현장 훈련이 뒷받침되느냐에 달려 있다. 사진=울산과학대학교

정부가 확인한 위기, 지원금보다 구조개편이 먼저다


울산 남구가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과 고용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동시에 관리된다는 사실은 이번 부진의 성격을 보여준다.

일시적인 가격 하락이라면 기업의 재고 조정과 경기 회복으로 버틸 수 있다. 지금은 공급과잉과 수요 둔화, 원가 경쟁력 약화, 사업재편이 겹쳤다. 기업의 경영 문제와 노동자의 고용 문제, 지역경제의 소비 문제가 한꺼번에 움직이고 있다.

산업위기선제대응지역 기업에는 이차보전과 긴급경영안정자금, 정책금융 만기 연장, 협력업체 우대보증, 지방투자촉진보조금 우대가 제공된다. 중소·중견기업의 운전·시설자금 대출에 대한 이차보전 한도는 기업당 최대 15억원이다.

금융지원은 급한 자금 흐름을 막아준다. 수요가 줄고 제품 가격이 낮아진 구조까지 바꾸지는 못한다. 낮은 수익성을 빚으로 버티는 기간만 길어질 가능성도 있다.

지원의 성과는 대출액보다 생산구조의 변화로 측정해야 한다.

범용제품 설비가 얼마나 합리화됐는지, 고부가제품 매출 비중이 얼마나 늘었는지, 협력업체의 일감과 고용이 유지됐는지, 새로운 사업으로 옮겨간 근로자가 몇 명인지가 기준이 돼야 한다.

정부는 석유화학 특별법과 사업재편 승인제도를 통해 과잉설비 조정과 기업 간 통합운영, 고부가제품 전환을 지원하고 있다. 2026년 2월 대산단지에서는 110만t 규모 나프타분해시설의 가동중단을 포함한 첫 사업재편계획이 승인됐다.

울산에서도 사업재편이 고용과 협력업체 생태계를 어느 수준까지 보호하며 진행될지가 핵심이다.

생산량보다 남는 가치가 중요해졌다


울산공단이 흔들리는 원인은 생산능력 부족보다 수익성 저하에 있다.

거대한 부두와 저장시설, 공업용수와 전력망, 숙련인력, 정유·화학·자동차·조선을 잇는 공급망을 갖췄다. 지난 60여 년 동안 쌓은 산업 기반은 다른 도시가 짧은 시간 안에 복제하기 어렵다.

지금 약해진 부분은 제품을 많이 만드는 능력보다 시장에서 제값을 받는 힘이다. 수출 물량이 늘어도 매출이 감소하고 생산지수가 올라가도 특정 업종의 고용불안이 커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울산공단의 다음 경쟁력은 공장 규모나 굴뚝 수로 측정하기 어렵다. 같은 원료에서 더 높은 부가가치를 만들고 에너지와 탄소비용을 줄이며 숙련인력과 협력업체의 기술을 새로운 공정으로 옮기는 능력이 중요해졌다.

석유화학 설비를 얼마나 줄이느냐만으로 구조개편의 성공을 판단할 수도 없다. 어떤 설비를 남기고 어떤 제품으로 전환할지, 감산 과정에서 줄어든 일감을 어디에서 되살릴지, 대기업의 투자 효과를 협력업체까지 어떻게 연결할지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

울산이 선택해야 할 길은 생산량 확대보다 수익성과 기술, 고용을 함께 회복하는 산업구조다. 공장은 계속 돌아갈 수 있다. 그 공장에서 만들어진 가치와 일자리가 울산에 남아야 한다.

공장 밖으로 번지는 손익계산서


울산공단의 불황은 거대한 설비가 일제히 멈추는 모습으로 찾아오지 않았다.

제품은 만들어지고 배는 출항한다. 수출액도 여전히 전국 최상위권이다. 그 안에서 가격이 떨어지고 이익이 줄며 투자와 외주 발주가 늦어진다. 충격은 협력업체의 작업일수와 노동자의 임금, 공단 주변 상점의 매출을 따라 조용히 번진다.

2025년 울산의 선박 수출은 50% 늘었다. 석유제품과 석유화학제품은 물량을 늘리고도 수출금액이 줄었다.

울산공단의 현재를 가장 정확하게 보여주는 두 장면이다. 한쪽에서는 수년 전 수주한 고부가 선박이 바다로 나가고, 다른 쪽에서는 오늘 생산한 화학제품의 가격이 내려가고 있다.

울산공단은 아직 거대하다. 그러나 크기만으로 다음 50년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2부에서는 이 거대한 생산기지를 떠받치는 노후설비와 지하배관, 산업재해와 환경비용, 탄소중립 투자비를 추적한다.

울산공단이 제품을 만드는 데 쓰는 비용과 그동안 장부 밖으로 밀어낸 비용을 함께 계산할 차례다.


박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otkay89@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