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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美 법정서 ‘성장 과정 불법성’ 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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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웨이, 美 법정서 ‘성장 과정 불법성’ 가린다

8일 브루클린서 배심원 선정…RICO·영업비밀·제재위반 심리
유죄 땐 역대급 기업 벌금 가능…시진핑 방미 앞두고 미중 변수
지난 2021년 중국에 도착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 멍 부회장은 이번 미국 뉴욕 재판의 피고인은 아니지만 핵심 인물로 거론된다. 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지난 2021년 중국에 도착한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 멍 부회장은 이번 미국 뉴욕 재판의 피고인은 아니지만 핵심 인물로 거론된다. 사진=로이터

중국 최대 통신장비업체 화웨이가 미국에서 회사의 성장 과정 자체를 겨냥한 대형 형사재판의 심판대에 오른다.

미국 검찰은 화웨이가 20여년에 걸쳐 경쟁사의 영업비밀을 훔치고 이란·북한 제재를 우회했으며 금융기관을 속이는 등 일련의 범죄행위를 하나의 기업 차원에서 지속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화웨이는 이같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미국 정부가 중국과의 기술패권 경쟁에서 회사를 압박하기 위해 서로 무관한 사건을 하나로 묶어 형사사건으로 만들었다고 맞서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 뉴욕 동부연방법원에서 화웨이를 상대로 한 형사재판의 배심원 선정이 8일(이하 현지시각) 시작된다며 화웨이가 세계적 기술기업으로 성장한 과정에 불법행위가 있었는지를 배심원들이 판단하게 된다고 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화웨이는 지난해 매출이 1270억달러(약 171조4500억원)에 달하는 글로벌 IT기업이다.

미국 검찰은 화웨이가 20년 넘게 조직범죄처벌법(RICO)상 범죄조직과 같은 방식으로 운영됐다고 주장한다.

◇ “영업비밀 훔치면 보너스”…검찰이 제시한 내부 시스템


FT에 따르면 검찰 주장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화웨이 내부에 이른바 '경쟁관리그룹'이 존재했다는 내용이다.

공소장에 따르면 화웨이는 2013년 직원들이 경쟁사에서 확보한 기밀정보를 회사 내부 웹사이트나 암호화된 이메일 계정으로 제출하도록 하고 정보 가치에 따라 매달 보너스를 지급하는 제도를 운영했다.
가장 가치 있는 정보를 확보한 지역 조직에는 반기별 포상도 제공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검찰은 이를 개별 직원의 일탈이 아니라 경쟁사의 기술을 조직적으로 확보하려 한 회사 차원의 시스템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이동통신업체 T모바일의 휴대전화 시험용 로봇 '태피(Tappy)' 사건도 공소장에 포함됐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2013년 화웨이 직원이 T모바일 연구실에서 로봇팔 부품을 몰래 노트북 가방에 넣어 반출했다.

부품이 T모바일에 돌아가기 전 화웨이 엔지니어가 로봇팔의 사진과 치수를 중국의 동료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다.

화웨이는 이 같은 영업비밀 관련 사건들이 기술업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민사 분쟁을 형사 범죄로 확대해석한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일부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도 지났다고 주장한다.

◇ 멍완저우 진술, 이번엔 화웨이에 ‘부메랑’


이번 재판에서 또 하나의 핵심 증거는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의 딸인 멍완저우 부회장 겸 CFO가 2021년 미국 검찰과 기소유예 합의를 하면서 인정한 사실관계다.

멍 부회장 자신은 이번 재판의 피고가 아니다.

그러나 미국 법원은 멍 부회장이 당시 서명한 진술서를 화웨이에 불리한 증거로 배심원들에게 제시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멍 부회장은 당시 화웨이의 이란 사업과 관련해 홍콩 회사 스카이콤과 화웨이의 관계를 HSBC에 사실과 다르게 설명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그는 스카이콤을 화웨이가 이란에서 거래하는 제3자 회사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화웨이가 이 회사를 통제하고 있었다는 것이 미국 검찰의 판단이다.

미 검찰은 이 같은 설명 때문에 은행들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에 저촉될 수 있는 거래를 처리했다고 주장한다.

멍 부회장은 지난 2018년 미국의 요청으로 캐나다 밴쿠버에서 체포돼 약 3년간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가 2021년 미국 검찰과 합의한 뒤 중국으로 돌아갔다.

검찰은 화웨이가 제재 대상 국가를 내부적으로 암호명으로 불렀다는 내용도 제시했다.

이란은 'A2', 북한은 'A9'로 불렀으며 화웨이가 금융기관들에 북한에서 여러 사업을 수행한 사실을 부인했다는 것이 검찰 주장이다.

공소장에는 화웨이가 2009년 이란 정부에 시위 참가자들을 감시·식별·구금하는 데 사용된 감시장비 설치를 지원했다는 혐의도 담겨 있다.

화웨이는 미국 밖에서 영업하는 비미국 기업이 은행의 달러 결제 과정 때문에 미국 제재법상 형사책임을 질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예측할 수 없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 유죄 땐 초대형 벌금…은행 거래도 타격 가능


이번 재판의 파장은 단순한 유무죄 판단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화웨이가 RICO 혐의에서 유죄 판결을 받으면 범죄를 통해 얻은 금액의 최대 두 배까지 벌금이 부과될 수 있어 미국 기업 형사사건 가운데 최대급 벌금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FT는 분석했다.

미 법무부가 중국 내 화웨이 자산에 직접 손을 대기는 어렵더라도 미국에 있는 은행계좌 등 자산을 대상으로 벌금이나 배상 집행을 시도할 수 있다.

유죄 판결 자체가 국제 금융거래에 미치는 영향도 상당할 수 있다.

화웨이는 이미 2019년 미국 상무부의 엔티티리스트에 올라 미국산 기술을 확보하는 데 강한 제한을 받고 있다. 여기에 조직범죄 혐의 유죄 판결까지 내려지면 글로벌 은행들이 화웨이와의 거래 자체를 위험요인으로 판단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도 화웨이의 사업은 오히려 중국을 중심으로 다시 확대됐다.

회사는 미국 기술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공급망 국산화를 추진했고 기존 통신장비와 스마트폰을 넘어 인공지능(AI) 반도체, 전기차 관련 사업으로 영역을 넓혔다.

화웨이는 자사의 성공이 불법적인 기술탈취 때문이라는 미국 검찰의 주장을 부인하면서 장기간의 연구개발 투자와 지식재산권 존중이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화웨이에 따르면 회사는 9년 연속 세계에서 연구개발 투자가 가장 많은 6개 기업 안에 포함됐다.

◇ 시진핑 방미와 겹치는 재판…미중 관계 새 변수


재판은 수개월간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오는 24일 워싱턴을 방문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인 가운데 재판이 진행된다는 점에서 화웨이 사건이 다시 미중 외교 현안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첫 집권 당시에도 화웨이 사건을 중국과의 협상 과정에서 다룰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언급한 적이 있다.

화웨이는 법원 제출 문서에서 미국 정부가 애초부터 이번 형사사건을 미중 무역전쟁에서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하려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미국 측에서는 화웨이 문제가 단순한 기업 형사사건을 넘어 기술패권 경쟁, 이란 제재, 미중 외교가 교차하는 사건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의 제재 이후 화웨이는 사실상 미국 시장 복귀 가능성을 포기한 상태라는 분석도 있다.

그러나 세계 통신장비 시장의 핵심 기업이자 중국의 AI 자립 전략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화웨이에 미국 배심원단이 유죄 판결을 내릴 경우 파장은 미국 시장을 넘어설 수 있다.

미국 법정에서 시작되는 이번 재판은 결국 화웨이가 지난 수십년 동안 세계적 기술기업으로 성장한 과정이 자체 기술혁신의 결과였는지, 아니면 미국 검찰 주장처럼 조직적인 불법행위가 일부 뒷받침했는지를 놓고 벌어지는 장기 법정공방이 될 전망이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