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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한 안무·연출의 '춤, 화찬(畵讚)', 혜원 신윤복의 회화를 찬(讚)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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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한 안무·연출의 '춤, 화찬(畵讚)', 혜원 신윤복의 회화를 찬(讚)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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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한 안무·연출의 '춤, 화찬(畵讚)'
2026 국립국악원 무용단 기획공연, 김충한 안무·연출의 '춤, 화찬(畵讚)'이 7월 16일(목) 일곱 시 반~7월 17일(금) 다섯 시, 국악원 풍류사랑방에서 두 차례 공연되었다. ‘너이려니 나이련 듯’ 분위기의 여덟 폭의 그림들로 만들어진 '춤, 화찬(畵讚)'은 애절한 사랑의 서사를 그림으로 남기고 사라진다. 화폭은 화공 혜원과 미인도의 미인이 겪게 되는 ‘기억’, ‘처음 만남’, ‘만유(漫遊)', '재회(再會)', '밀약(密約)', '비정(非情)', '너이려니 나이련 듯'의 흐름을 갖는다.

노상탁발(路上托鉢), 청금상련(聽琴賞蓮), 무무도(巫舞圖), 월하정인(月下情人), 유곽쟁웅(遊廓爭雄), 쌍검대무(雙劍對舞), 사시장춘(四時長春), 미인도(美人圖)는 그림 속에서 튀어나와 사연을 풀어놓는다. 김충한 안무가는 춤의 기교를 쓰고 부림에 있어 천부적 재능을 보이고 있고, 상상력 가득한 연출은 그림의 순서와 차별화된 동선을 깔끔하게 보여준다. 예인의 길은 슬프고 아름다우며, 그 위에 소리와 그림을 얹고 사연을 심으면. 이보다 더한 아픔은 없다.

'춤, 화찬(畵讚)'은 ’미인도‘에서 상상의 돛을 띄우고 대단원도 미인도의 미인을 기리며 마무리된다. ‘미인도’를 바라보며 등을 보이며 느리게 일어서는 동작은 연모한 이를 잡지 못하고 관찰자로만 남았던 자신을 책(責)하는 마음을 상징한다. 여린 징이 울고 붓으로 그려낸 미인을 현실로 불러들이고 싶은 마음이 핀다. 민속악단의 반주가 확장되고, 먹과 붓의 검정과 두루마기와 버선의 하양이 호기심의 대비를 극대화하면서 혜원의 그림 서사는 펼쳐진다.

소중한 인연은 한 폭의 그림에 남겨진 여백으로 귀결된다. 텅 빈 화폭 앞에 선 화공 혜원(김진우)이 붓을 드는 순간, 오랫동안 마음 깊숙이 침잠해 있던 기녀 보배(박경순)에 대한 그리움이 서서히 형상을 얻는다. 비어 있던 화면 위로 젊은 화공이 미칠 듯이 연모했던 여인에 대한 기억의 조각이 차례로 스며들고, 시간은 자연스럽게 조선의 한 장터로 회귀한다. 이때 화폭의 여백은 기억과 감정이 다시 숨을 얻는 미학적 시간의 장(場)으로 기능한다.
활기 띠는 장터에서 혜원은 보배는 운명처럼 조우한다. 순간의 스침으로 끝날 수도 있었던 만남은 서로를 향한 미묘한 호기심과 정서적 끌림으로 확장되고, 풍류를 매개로 함께한 시간은 두 사람의 감정을 깊고 단단하게 엮어낸다. 계절의 흐름 끝에 달빛 아래 다시 마주한 두 사람은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찬란한 순간을 맞이하지만, 그 아름다움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두 인물의 사랑이 피어나는 움직임과 시선은 언어를 대신하는 감정의 몸짓으로 축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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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한 안무·연출의 '춤, 화찬(畵讚)'

권력과 욕망이 지배하는 현실은 사랑을 가로막는 거대한 질서로 작동하고, 보배는 거스를 수 없는 운명 앞에 선다. 강대감(김태훈)의 잔치가 절정으로 치닫는 가운데, 보배는 마지막 마음을 꽃신에 남긴 채 방 안으로 들어선다. 남겨진 꽃신을 품에 안은 혜원은 끝내 닿을 수 없는 사랑과 돌이킬 수 없는 상실을 마주하며, 부재가 남긴 깊은 정서를 온몸으로 감내한다. 이 장면은 사랑의 비극을 침묵과 부재가 빚어내는 정서의 밀도를 환기하는 미학적 절정이다.

긴 시간이 흐른 뒤, 혜원은 다시 빈 화폭 앞에 선다. 끝내 잊히지 않은 보배는 기억 속에서 시간을 초월한 존재로 남고, 꽃신에 깃든 사랑과 그리움은 더 이상 개인의 사연에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상실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미적 표상이자, 부재의 기억을 영원으로 환원하는 한 폭의 그림으로 완성된다. 예술은 사라진 존재를 붙잡는 재현의 기술을 넘어, 상실마저 아름다움으로 전환하는 기억의 미학을 완성하며 여덟 장(場)의 긴 여운을 남긴다.

노상탁발(路上托鉢): 길 위에서 승려 무리와 기녀 무리가 마주친다. 서로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이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익살스럽고 생동감 있게 담아낸다. 혜원 시절, 서민들의 풍속과 일상이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무대는 이 조우를 신체의 교차와 동선의 대비로 풀어내며, 성속의 경계에서 피어나는 인간 군상의 생동감을 역동적인 군무로 확장한다. 겨울을 털어내고 꽃피는 시절의 감흥이 일상의 모든 사람에게 번진다. 춤은 진취적 멋을 고양한다.

청금상련(聽琴賞蓮): 연꽃이 만발한 연못가에서 가야금 연주를 감상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이다. 자연과 음악이 어우러진 풍류의 정취 속에 조선 후기 상류층의 우아한 여가 문화를 섬세하게 담아냈다. 상상의 세습과 고착으로 와닿는 풍광과 놀이가 다양한 직군의 시서화의 인물들을 불러온다. 회화 속 고요한 선율은 무용수의 유려한 호흡과 절제된 움직임으로 이어지며,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으로 풍류의 시간을 무대 위에 새롭게 그려낸다.

무무도(巫舞圖): 굿판에서 무녀가 춤추는 장면을 독무로 형상화한다. 온통 붉은색 배경의 영상이 강렬하다.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과 이를 지켜보는 다양한 인물들의 모습을 상상하게 하며, 조선 후기 서민들의 신앙과 삶의 풍경을 생생하게 드러낸다. 도망과 추적의 인간사를 간파한 무녀의 몸짓은 방울과 부채의 운용과 몸짓으로 빚어내는 삶과 죽음, 인간과 신성을 잇는 의례적 신체로 확장되며, 강렬한 에너지와 원초적 생명력을 무대 전반에 환기한다.

월하정인(月下情人): 조선 시대 사랑 이야기. 등을 든 사내와 여인, 초승달 아래 담 모퉁이에서 은밀히 만난다. 서로의 기쁜 마음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이 섬세하게 묘사된다. 담벼락에는 "달은 기울어 밤 깊은 삼경인데,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 안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절제된 시선과 머뭇거리는 몸짓은 언어보다 깊은 감정을 전하며, 여백 속에 머무는 사랑의 시간을 시적 이인무로 승화시킨다. 조명은 활짝 피었다가 빗방ᄋᆕᆯ 소리로 빛을 닫는다.

유곽쟁웅(遊廓爭雄): 해금이 운다. 그림은 정자, 버드나무, 풍류객들, 악사를 배치한다. 기방 앞에는 늘상 다툼이 인다. 헤원은 이러한 장면을 놓치지 않는다. 기방을 찾은 사내들이 술에 취해 서로 다투는 모습은 인간의 욕망과 당대의 이면을 해학적이면서도 풍자적으로 보여준다. 과장된 움직임과 빠른 군무의 호흡은 욕망의 충돌을 극적 긴장으로 치환하며, 해학과 풍자가 공존하는 신윤복 회화의 시선을 무대 언어로 재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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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한 안무·연출의 '춤, 화찬(畵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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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한 안무·연출의 '춤, 화찬(畵讚)'

쌍검대무(雙劍對舞): 세력 있는 양반가의 연회에서 무희들이 두 자루의 검을 들고 춤춘다. 화려한 의상과 악사들의 연주가 어우러진 가운데, 팽팽하게 맞선 검무는 긴장감과 역동성을 더하며 조선 후기 풍류 문화의 화려한 면모를 보여준다. 교차하는 검의 궤적과 절도 있는 춤사위는 힘과 균형의 조형미를 완성하며, 정교한 신체 언어를 통해 회화의 정적인 구도를 역동적인 공간미로 변환한다. 열 명 군무의 배치와 어울림의 춤은 쌍검대무를 돋보이게 한다.

사시장춘(四時長春): 산기슭의 한적한 정자와 마루에 놓인 두 켤레의 신발을 통해 방 안 남녀의 사랑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 기둥에 적힌 ‘사시장춘’은 '사계절 내내 봄'의 사랑의 정취와 풍류를 해학적으로 담아낸다. 직접 드러나지 않는 존재의 흔적은 무대에서 여백과 침묵의 미학으로 이어지며, 보이지 않는 사랑을 더욱 깊은 정서로 환기한다. 이룬 자와 이루지 못한 자의 기쁨과 슬픔이 구별되며, 장고는 활짝 밝은 삶을 찬(讚)한다.

미인도(美人圖): 머리에 가체를 얹고 화려한 복식을 갖춘 여인, 자연스러운 표정과 생생한 묘사는 혜원과 가까운 인물이며, 19세기 미인도의 전형을 제시한다. 기쁨인지 슬픔인지 가늠할 수 없는 표정은 시대를 넘어 매혹적인 아름다움을 전한다. 무대는 인물의 정적인 아름다움을 섬세한 호흡과 시선, 절제된 움직임으로 풀어내며, 내면의 정서를 응축한 한국적 여성 미학을 구현한다. 떨리는 손으로 해바라기 같은 여인을 가리키며 눈물을 보이는 장면은 압권이다.

혜원 신윤복은 인간 삶의 다층적 풍경을 예리한 관찰력과 미학적 시선으로 포착하며, 시대의 욕망과 감정을 회화적 서사로 직조한다. 운명의 여인 보배와의 재회는 혜원에게 사랑과 상실, 존재의 허무를 응시하게 만든다. 조선 최고의 기녀 보배는 천상의 아름다움과 절제된 기품을 지녔으나, 시대의 질서와 신분의 굴레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지 못한다. 그 순결함은 시대적 폭력의 잔혹성을 선명히 드러낸다. 강대감은 효를 절대적 가치로 신봉하며 부친을 위해 윤리적 경계를 넘어서지만, 그의 신념은 비극의 기원을 이루며 시대적 이념과 인간 욕망의 충돌을 드러낸다.

혜원의 그림은 말해지지 않은 여백과 침묵의 정동이 깊은 울림을 남긴다. ‘비스듬히 기울어진 고개, 미세하게 들린 버선코, 손끝에 응축된 움직임’은 회화를 생동하는 신체 시간으로 환원하며, 움직임의 잠재적 에너지를 품는다. 미세한 몸의 기호들은 호흡과 리듬을 내포하며 끊임없이 감각을 자극한다. 화면을 비켜선 시선과 절제된 여백은 인물 사이의 보이지 않는 관계와 감정을 생성하고, 서사 밖의 시간을 확장한다. 혜원의 시선은 몸과 시선, 침묵이 교차하는 감각의 공간을 열어 보이며, 화폭 너머의 삶과 움직임을 능동적으로 상상하게 한다.

'춤, 화찬(畵讚)'은 신윤복의 정지된 회화 이미지를 살아 있는 신체의 시간으로 치환하며 회화와 춤이 교차하는 미학적 지평을 구축한다. 김충한의 안무는 여백과 침묵, 응축된 호흡과 시선의 흐름을 한국춤 특유의 신체 언어로 정교하게 직조함으로써, 사랑과 상실, 기억의 정동을 서사보다 몸의 감각으로 체현한다. 미세한 몸짓과 절제된 공간 구성은 신윤복 회화에 내재한 잠재적 움직임과 관계의 긴장을 감각적으로 가시화한다. 이 작품은 회화적 부재를 존재로 환원하는 움직임의 미학을 통해 한국 창작춤이 지닌 서정성과 조형성을 설득력 있게 확장한 수작이 되었다.

출연(혜원: 김진우, 보배: 박경순, 강대감: 김태훈, 무당 봉화: 서희정, 칠성이: 전수현, 태대감: 변창준, 창작팀(국립국악원 무용단: 김혜자(예술감독 직무대행), 박성호(대본·안무자), 안무자: 백진희(안무자),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김정림(예술감독 직무대행, 음악구성), 이주은(성악악장))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사진=황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