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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엔캐리청산" 일본은행 폭탄의 방아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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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인물]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엔캐리청산" 일본은행 폭탄의 방아쇠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일본은행 종재/사진=로이터이미지 확대보기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일본은행 종재/사진=로이터
[김대호의 인물 오디세이] 엔캐리 청산 폭탄의 방아쇠를 쥔 자: 우에다 가즈오와 ‘스승’ 스탠리 피셔

글로벌 금융시장의 신경망이 도쿄 니혼바시의 한 석조 건물로 일제히 쏠리고 있다. 일본은행(BOJ) 본점 3층 회의실, 백발에 가까운 차분한 인상의 경제학자 출신 중앙은행 총재가 기자회견 석상에서 건네는 단어 하나와 침묵의 간격에 뉴욕 월가와 런던 시티, 여의도 증권가가 숨을 죽인다. 우에다 가즈오(植田和男). 그는 전후 최초의 순수 학자 출신 일본은행 총재라는 상징성을 넘어, 수십 년간 글로벌 자산 시장의 기저를 떠받쳐온 초저금리 유동성의 대동맥을 틀어쥐고 뒤흔드는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의 방아쇠'를 쥔 인물이다.

수조 달러에 달하는 글로벌 자본 이동의 방향타를 쥔 우에다 가즈오는 대체 누구인가. 그를 단순한 통화정책의 기술자로만 바라본다면 시장의 이면을 결코 읽어낼 수 없다. 그의 뼛속에 새겨진 정책 DNA를 추적하려면 1970년대 후반 미국 보스턴, 전 세계 중앙은행 총재들의 산실이었던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연구실과 그의 평생 스승 스탠리 피셔(Stanley Fischer)의 품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보스턴에서 맺은 숙명: ‘중앙은행가들의 대부’ 스탠리 피셔와의 사제 인연
1970년대 중반, 도쿄대 이학부 수학과를 거쳐 경제학부로 전과한 수재 우에다 가즈오의 비범함을 일찌감치 알아본 이는 당시 도쿄대 교수이자 훗날 예일대 교수를 지낸 국제금융론의 거두 하마다 고이치(浜田宏一)였다. 하마다 교수는 수리적 감각과 통찰력을 겸비한 제자에게 "더 넓은 바다로 가라"며 미국 MIT 유학을 강력히 추천했다. 1976년 보스턴으로 건너간 청년 우에다는 그곳에서 운명적인 스승을 만났다. 훗날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부의장, 국제통화기금(IMF) 수석부총재, 이스라엘 중앙은행 총재를 지내며 '글로벌 중앙은행가들의 대부'로 군림하게 될 스탠리 피셔 교수였다.

피셔의 연구실은 단순한 강의실이 아니었다. 훗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소방수 역할을 맡았던 벤 버냉키 전 연준 의장이 우에다와 거의 같은 시기에 피셔의 문하에서 박사과정을 밟았고, 유로존 위기 당시 "유로화를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다(Whatever it takes)"며 시장을 평정했던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로런스 서머스 전 미국 재무장관,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 등이 피셔라는 거대한 지적 우산 아래서 동문수학했다. 이들이 바로 세계 금융 질서를 막후에서 주물러온 전설적인 'MIT 마피아'다.우에다는 피셔의 지도 아래 1980년 박사 학위 논문을 완성했다. 당시 피셔가 제자 우에다에게 불어넣은 학문적 철학은 훗날 우에다의 통화정책관을 규정하는 세 가지 결정적 기둥이 되었다.

피셔는 케인스주의나 통화주의 같은 도그마에 얽매이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그는 제자들에게 "시장의 소음이나 정치적 구호가 아닌, 정교한 계량경제학적 데이터와 모델이 가리키는 진실에만 복종하라"고 가르쳤다. 수학을 전공했던 우에다에게 피셔의 엄밀한 실증주의는 날카로운 무기가 되었다.피셔는 위기 국면에서 중앙은행이 전통적인 금리 조절이라는 좁은 틀에 갇혀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필요하다면 시장이 상상하지 못한 비전통적 비상 조치를 대담하게 설계하고 집행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었다.

그는 중앙은행의 말 한마디가 자본시장의 기대 심리를 어떻게 조절하는지, 정책의 경로를 투명하게 열어두면서도 시장에 휘둘리지 않는 화법이 무엇인지를 전수했다. 스탠리 피셔는 훗날 제자 우에다가 일본은행 정책위원회 심의위원으로 활약하고, 2023년 일본은행 총재로 지명되었을 때 "그는 학문적 깊이와 실무 감각을 모두 갖춘 드문 인재이자, 위기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강철 같은 판단력을 지닌 인물"이라며 각별한 신뢰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우에다의 두뇌 속에는 스승 피셔로부터 물려받은 거시경제의 설계도와 위기관리 방정식이 고스란히 각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비둘기의 가면: 제로금리와 양적완화
귀국 후 도쿄대 교수로 재직하던 우에다는 1998년, 신(新)일본은행법 시행과 함께 출범한 정책위원회 초대 심의위원(1998~2005)으로 전격 발탁되었다. 학자가 일본의 통화정책 최고 의사결정 기구에 합류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사건이었다.그 당시 일본은 버블 붕괴 이후 장기 불황과 디플레이션이라는 유례없는 암흑기에 빠져 있었다. 우에다는 MIT 시절 스승 피셔에게 사사한 거시경제 이론을 실전에 투입하기 시작했다. 그는 세계 금융사상 최초로 시도된 '제로금리 정책(ZIRP)'과 시중에 돈을 직접 살포하는 '양적완화(QE)', 그리고 "디플레이션에서 벗어날 때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고 시장에 약속하는 '포워드 가이던스'의 제도적 틀을 사실상 설계했다. 버냉키가 미국 금융위기 당시 꺼내 든 비전통적 통화정책 카드의 원형이 이미 2000년대 초반 우에다의 손끝을 통해 도쿄에서 시험 가동되었던 셈이다.

2000년 8월, 하야미 마사루 총재 시절 일본은행이 IT 버블 국면에서 성급하게 제로금리를 해제하려 했을 때, 우에다는 반대표를 던졌다. 그는 "물가 상승 압력이 객관적 수치로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조기 금리 인상은 회복의 불씨를 끄는 치명적 실수가 될 것"이라며 다수의 찬성표에 홀로 맞섰다. 결과는 그의 예측대로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IT 버블이 터지며 일본 경제는 다시 깊은 침체에 빠졌고, 일본은행은 백기를 들고 완화로 회귀해야 했다. 이 사건으로 우에다는 시장으로부터 '신중하고 합리적인 비둘기파(통화 완화 선호론자)'라는 확고한 낙인을 얻었다.

2023년 봄, 기시다 후미오 정권이 아베노믹스의 상징이던 구로다 하루히코의 후임으로 우에다를 지명했을 때 월가와 글로벌 자본시장이 "완화 기조를 연착륙시킬 부드러운 학자 출신 비둘기가 왔다"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우에다의 본질을 완벽히 오판한 착각이었다.

우에다가 2023년 4월 총재실에 입성했을 때 마주한 일본 경제는 처참했다. 10년간 이어진 이른바 '구로다 완화'는 일본을 기형적인 환자로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정책금리는 -0.1%로 묶여 있었고, 10년물 국채를 일본은행이 무제한 사들여 금리를 강제로 찍어 누르는 수익률곡선통제(YCC)로 인해 국채 시장의 가격 발견 기능은 완전히 증발했다. 중앙은행이 주식시장 상장지수펀드(ETF)를 쓸어 담아 수많은 상장사의 최대 주주로 등극하는 자본주의의 왜곡이 일상화되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글로벌 금융시장에 똬리를 튼 '엔캐리 트레이드(Yen Carry Trade)'라는 시한폭탄이었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금리를 5% 이상으로 가파르게 올리는 동안, 일본 홀로 마이너스 금리를 고수하자 글로벌 투기 자본은 엔화를 공짜에 가깝게 빌려 미 기술주, 신흥국 채권, 고수익 자산으로 몰려들었다.

엔화 가치는 달러당 160엔 선까지 곤두박질치며 가계의 실질구매력을 파괴했고, 전 세계 금융자산 전반에 스며든 엔캐리 추정 잔액은 적게는 1조 달러에서 많게는 수조 달러에 이르렀다. 완화를 지속하자니 엔화 폭락으로 일본 경제가 질식하고, 금리를 올리자니 글로벌 엔캐리 자금이 일거에 청산되며 전 세계 자산 시장이 연쇄 붕괴할 수 있는 진퇴양난의 외통수였다.

마이너스 금리 해체와 '우에다 쇼크'

우에다 총재는 스승 스탠리 피셔가 가르쳐준 대로 행동했다. 그는 정치적 구호나 시장의 아우성에 휘둘리지 않았다. 취임 초기에는 "완화적 금융환경을 끈기 있게 유지하겠다"는 비둘기파적 발언으로 시장을 안심시키는 치밀한 성동격서(聲東擊西) 전술을 폈다. 물밑에서 움직이는 그의 수술칼은 서슬이 퍼랬다.YCC의 점진적 해체 방식으로 장기금리 변동 폭의 족쇄를 은밀하게 풀어나가며 채권 시장의 숨통을 틔웠다. 17년 만의 금리 인상도 우에다의 결단이었다. 2024년 봄, 대기업들의 임금 인상률이 5%를 넘어서며 '임금과 물가의 선순환'이라는 실증 데이터가 손에 잡히자, 주저 없이 마이너스 금리와 YCC, ETF 매입을 한꺼번에 폐기하며 아베노믹스의 장례식을 치렀다.

시장이 "당분간 추가 인상은 없을 것"이라며 다시 엔화 매도에 베팅하던 2024년 7월 말, 우에다는 정책금리를 0.25%로 기습 인상하고 향후 지속적인 인상 방침을 천명했다. 이 일격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뇌관을 정면으로 강타했다. 미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와 일본의 금리 인상이 교차하며 미-일 금리차가 좁혀지자, 엔캐리 트레이드 포지션이 비명을 지르며 연쇄 청산(Unwind)되기 시작했다. 2024년 8월 5일, 닛케이225 지수가 하루 만에 12.4% 폭락하며 1987년 블랙 먼데이를 뛰어넘는 사상 최대 낙폭을 기록했고, 코스피가 하루 8% 넘게 주저앉았으며, 뉴욕 증시와 가상자산 시장까지 마진콜 공포에 휩싸였다. 전 세계 금융시장이 '우에다 쇼크'라는 엔캐리 청산 폭탄의 가공할 위력을 목도한 순간이었다.

정치권과 월가가 "소통 실패", "세계 증시를 망친 주범"이라며 비난을 쏟아냈지만, 국회 청문회에 불려 나간 우에다는 피셔의 제자답게 흔들림 없는 무표정으로 답했다. "경제와 물가 지표가 예상대로 움직인다면 통화 완화의 정도를 지속적으로 조정해 나갈 것이다." 시장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고 금리 정상화라는 원칙의 칼날을 거두지 않겠다는 단호한 선언이었다. 우에다 가즈오 총재의 시선은 단기적인 주가 등락에 머물지 않는다. 그의 목표는 엔화를 '글로벌 유동성의 무료 자판기'라는 오명에서 건져내고, 일본 경제를 수십 년 만에 금리가 살아 숨 쉬는 '정상적인 시장경제'로 복원하는 것이다.

그가 쥔 방아쇠는 향후 글로벌 경제의 판도를 세 갈래로 근본부터 흔들어 놓을 것이다.

첫째, 엔캐리 청산의 상시화와 자산 거품의 축소다. 일본의 금리가 잠재성장률과 중립금리 수준(1.0~1.5%)을 향해 올라설수록, 공짜 엔화를 지렛대 삼아 미국 빅테크 주식과 신흥국 자산을 밀어 올리던 머니게임의 규칙은 영구적으로 폐기된다. 글로벌 위험자산의 밸류에이션은 이전보다 훨씬 무거운 중력을 받게 된다.

둘째, 일본 자본의 거대한 본토 회귀(Repatriation)다. 일본의 기관투자가와 '와타나베 부인'들이 해외에 묻어둔 수조 달러 규모의 자산이 엔화 가치 상승과 자국 금리 매력에 이끌려 귀환길에 오른다. 이는 미국 국채의 최대 해외 큰손이 사라짐을 의미하며, 미국의 장기 국채 금리 상승(국채 가격 폭락)을 촉발해 미국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는 거대한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셋째, 한·일 제조업 및 동아시아 금융 역학의 격변이다. 초엔저라는 인위적 보호막이 걷히고 엔고가 현실화되면, 글로벌 무대에서 일본 기업과 경합하는 한국의 자동차, 조선, 반도체 등 주력 수출기업들은 가격경쟁력 회복이라는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전 세계적인 유동성 긴축 발 금융시장 발작을 견뎌내야 하는 혹독한 시험대에 서게 된다.

우에다 가즈오는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정치인이 아니다. 시장의 달콤한 환호에 영혼을 파는 금융 포퓰리스트는 더더욱 아니다. 그는 반세기 전 스승 스탠리 피셔의 연구실에서 밤을 새우며 미분방정식을 풀던 차가운 청년 연구자의 본색을 잃지 않은 인물이다. 일본 경제라는 중환자에게 꽂혀 있던 '마이너스 금리'라는 마약성 진통제를 거두고, 수술칼을 든 채 엑스레이 필름(경제 데이터)만을 묵묵히 응시하는 냉철한 집도의. 미 연준의 피벗과 맞물려 일본은행의 금리 인상이 교차하는 거대한 통화 질서의 재편기 속에서, 우에다 가즈오가 쥔 엔캐리 청산의 방아쇠는 앞으로도 세계 자본시장의 향방을 가르는 가장 날카로운 변수로 작동할 것이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