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유일한 생존자
이미지 확대보기지옥의 아침, 소년의 손을 잡았던 사내
2001년 9월 11일 화요일 아침 8시 46분. 뉴욕 맨해튼의 상공을 가르는 굉음과 함께 아메리칸항공 11편이 세계무역센터 북쪽 타워 93층에서 99층 사이를 꿰뚫었다. 금융 자본주의의 심장부이자 지상 400미터 허공에 자리 잡고 있던 금융투자사 캔터 피츠제럴드(Cantor Fitzgerald)의 본사는 그 폭발 지점 바로 위인 101층부터 105층에 걸쳐 있었다. 계단실은 순식간에 녹아내렸고, 통신은 두절되었으며, 엘리베이터는 거대한 화염의 굴뚝으로 변했다.
그 시각, 서른아홉 살의 최고경영자(CEO) 하워드 러트닉(Howard Lutnick)은 그 저주받은 빌딩에 없었다. 워커홀릭이자 촌음을 다투며 트레이딩 플로어를 호령하던 그가 월스트리트의 마천루 대신 머물고 있던 곳은 유치원이었다. 다섯 살 난 장남 카일(Kyle)의 유치원 입학 첫날, 아이를 직접 교실 문앞까지 데려다주기로 아내와 약속했던 것이다. 아이의 작은 손을 쥐고 발걸음을 떼던 그 몇 분의 지체, 부모로서의 소박한 의무가 그를 죽음의 화선(火線) 밖으로 밀어냈다.
전 세계 주요 금융기관 중 단일 기업으로는 최대의 인명 손실이었다. 생존자는 단 한 명, 그날 아들의 유치원 등원 길에 올랐던 하워드 러트닉뿐이었다. 언론은 그를 ‘기적의 생존자’라 불렀으나, 그것은 기적이 아니라 신이 내린 가장 잔혹한 형벌에 가까웠다. 살아남았다는 죄책감, 이른바 ‘서바이버스 길트(Survivor's Guilt)’가 잿빛 먼지처럼 그의 영혼을 덮쳤다.
눈물에서 빚어낸 맹독(猛毒)의 생존 본능
참사 사흘 뒤, TV 카메라 앞에 선 러트닉은 오열했다. 흘러내리는 눈물로 얼굴이 일그러진 젊은 CEO를 보며 대중은 연민을 보냈다. 그러나 금융 시장은 눈물을 믿지 않는다. 당좌 계좌는 묶였고, 거래 시스템은 파괴되었으며, 경쟁자들은 캔터 피츠제럴드가 들고 있던 채권 브로커리지 물량을 하이에나처럼 뜯어먹기 위해 달려들었다. 시장에서는 “캔터 피츠제럴드는 48시간 내에 청산될 것”이라는 사망선고가 공공연히 나돌았다.
그 순간, 러트닉의 내면에서 무언가가 변이를 일으켰다. 절망의 바닥을 친 인간에게 찾아오는 기이한 냉혹함, 이른바 ‘제2의 인생’을 지배할 원초적 생존 본능이었다. 그는 참사 직후 유족들에게 지급되던 급여 지급을 전격 중단했다. 대중과 언론은 “동료의 피가 마르기도 전에 유족의 밥줄을 끊은 비정한 악마”라며 그에게 돌을 던졌다. 그러나 러트닉의 계산은 달랐다. 회사가 망하면 유족들에게 돌아갈 보상금도, 재건의 희망도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이었다.
그는 매년 9월 11일을 ‘자선의 날(Charity Day)’로 지정해 하루 수익 전체를 기부하는 전통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 숭고한 추모의 이면에서, 하워드 러트닉이라는 인물은 이미 보통의 인간이 아니었다. 죽음의 문턱을 넘어온 자 특유의 서늘함, 목표를 위해서라면 어떤 도덕적 비난이나 감정적 동요도 차갑게 얼려버리는 강철 같은 트레이더의 페르소나가 완성된 것이다.
트럼프의 ‘자본 돌격대장’
세월이 흘러 2020년대, 하워드 러트닉은 단순한 월가의 투자은행가를 넘어 정치와 자본이 결탁하는 거대한 소용돌이의 중심에 다시 섰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오랜 친분을 바탕으로 정권 인수위원회의 핵심 실세이자 ‘트럼프 2기’ 경제 내각의 중추, 미 상무부 장관 지명자로 화려하게 부상한 것이다.트럼프가 상무장관 자리에 러트닉을 낙점한 이유는 명확했다. 러트닉은 관료적 온정주의나 외교적 수사를 모른다. 그는 수치와 거래, 레버리지와 압박만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전형적인 월가의 ‘하드보일드 네고시에이터’다.
트럼프 2기 경제 정책의 두 축은 명료하다. 첫째는 미국 내 공급망의 강제적 재건이며, 둘째는 이를 실현하기 위한 ‘무차별 관세 폭탄’과 ‘해외 자본의 강제 유치’다. 과거 상무부가 통상 규범과 자유무역협정을 관리하는 행정부서였다면, 러트닉 체제의 상무부는 칼을 차고 빚을 받으러 다니는 ‘징세관이자 추심업자’의 사령부로 탈바꿈했다.
러트닉은 글로벌 동맹국들과 다국적 기업들을 향해 칼끝을 겨눴다. 그가 내세운 명분은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였으나, 실제 구사하는 방식은 상대의 목줄을 죄어 원하는 것을 뜯어내는 월가식 적대적 M&A 기법에 가까웠다. 한국과 일본, 대만, 유럽의 핵심 제조업 기업들에게 그는 공포의 대상, 이른바 ‘투자 압력의 저승사자’로 군림하기 시작했다.
3,500억 달러의 청구서와 텍사스 가스발전소의 불길
러트닉이 책상 위에 올려놓은 숫자는 엄청났다. 글로벌 반도체, 배터리, 인공지능(AI) 인프라 기업들을 향해 쏟아부은 대미 투자 압박 액수는 무려 3,500억 달러(한화 약 470조~500조 원)에 육박했다. 그가 들이미는 논리는 단순하고도 폭력적이다.
“미국 시장에서 물건을 팔고 싶다면 관세를 낼 것인가, 아니면 미국의 심장부에 공장과 자본을 바칠 것인가.” 그 상징적인 무대가 바로 텍사스의 가스발전소와 AI 에너지 인프라다. 실리콘밸리가 촉발한 생성형 AI 혁명은 천문학적인 전력을 요구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하나를 돌리기 위해 소도시 하나 분량의 전기가 필요해진 시대, 러트닉은 에너지 패권과 첨단 테크놀로지가 결합하는 교차로를 정확히 포착했다.
텍사스의 셰일가스와 가스복합화력발전소 프로젝트는 단순한 전력 수급 문제가 아니다. 러트닉은 글로벌 빅테크와 동맹국의 반도체 파운드리 기업들을 텍사스의 거친 황무지로 몰아넣고 있다. 에너지 공급망의 원천을 미국이 장악한 상태에서, 해외 자본의 피를 수혈받아 가스발전 인프라를 증설하고 그 전력으로 미국의 AI 제국을 완성하겠다는 복안이다. 한국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대만의 TSMC 등은 진퇴양난의 기로에 섰다. 러트닉의 상무부는 반도체 보조금의 지급 조건을 갈수록 까다롭게 바꾸는 한편, 텍사스 등지의 현지 발전 및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지분 투자와 추가 생산시설 확충을 집요하게 요구했다. 말을 듣지 않으면 고율의 상호관세와 반덤핑 규제라는 철퇴가 기다린다. 월가에서 수많은 부실 채권을 헐값에 매입해 채무자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우던 브로커리지의 수법이 국가 대 국가의 산업 통상 정책에 고스란히 이식된 것이다.
하워드 러트닉의 생애는 극단적 명암(明暗)의 콜라주다. 한 인간으로서 그는 9·11이라는 인류사적 비극의 한복판에서 동생과 동료 658명을 한순간에 잃어버린 깊은 상흔의 소유자다. 어린 아들의 손을 잡았던 덕에 기적처럼 목숨을 건진 그는, 매년 눈물로 전몰자를 기리고 거액을 사회에 환원하는 따뜻한 가장이자 후원자의 얼굴을 지녔다.
권력과 비즈니스의 장막 뒤에 선 러트닉은 전혀 다른 인물이다. 죽음의 문을 통과한 자는 세상에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다. 윤리적 주저함이나 감상적 타협은 100층 높이의 불타는 타워와 함께 사라졌다. 오직 잔혹한 숫자와 결과만이 자신과 조직을 지켜준다는 냉소적 확신이 그를 지배한다. 그가 트럼프 행정부의 선봉에 서서 휘두르는 3,500억 달러의 투자 압박과 관세의 채찍은, 그 냉혹한 생존 철학의 국가적 발현이다. 한국 경제와 기업들에게 하워드 러트닉은 피할 수 없는 시험대다. 그를 상대하기 위해선 어설픈 외교적 명분이나 과거의 동맹 논리에 기대어선 안 된다. 그는 철저한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의 투사이며, 상대의 패가 바닥날 때까지 블러핑을 멈추지 않는 월가의 승냥이다.
아들의 손을 잡고 지옥의 문턱에서 돌아온 사내가 이제 거대한 제국의 칼날이 되어 세계 경제의 질서를 재편하고 있다. 텍사스의 불타는 가스발전소 굴뚝 위로 아른거리는 신기루는 묻고 있다. “너희는 살아남기 위해 무엇을 내놓을 것인가.” 자본주의의 가장 참혹한 심연을 들여다본 자가 내리는 이 질문 앞에서, 글로벌 경제 전쟁의 잔혹한 맨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김대호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tiger8280@g-e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