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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부터 효 실천-노인문제 위해 바친 외길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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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부터 효 실천-노인문제 위해 바친 외길인생

[Click 도전 Record(11)] 아버지날·노인의 날·세계어버이날 만든 이돈희 선생

노인문제연구소·노인학회 창립 복지사회 위한 초석 다져

라디오 TV 500회 출연-신문 등 인터뷰와 기고 300회

아버지의 날, 노인의 날, 세계 어버이날 제정에 앞장서온 청파 이돈희 선생
아버지의 날, 노인의 날, 세계 어버이날 제정에 앞장서온 청파 이돈희 선생
청파(靑波) 이돈희 선생은 16세 때인 고등학교에 다니며 ‘아버지날’을 만들었고, 21세 대학 시절에는 ‘노인의 날’을 만들었으며, 한국 최초로 ‘노인의 날 제정 취지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의 50여년 인생은 효(孝) 실천과 노인 문제를 위해 바친 외길인생이다. 사라져가는 효친경로사상의 부활을 위해 평생을 헌신해 온 이돈희 선생을 소개한다. <편집자주>

청파(靑波) 이돈희 선생(이돈희 대한노인신문 수석부사장 겸 수석논설위원)은 평생을 ‘노인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온 주인공이다. 그는 ‘노인의 날’을 제정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노인문제연구소와 한국노인학회를 창립, 우리나라 노인문제 해결과 노인복지사회를 위한 초석을 다져왔다. 특히 사회 각계각층과 청와대에 “어버이날과 노인의 날을 효를 실천하는 공휴일로 지정해야 한다”며 수십 차례 제언했다.

혈기왕성한 대학 시절 그는 ‘노인의 날’을 제정한 후 1971년 4월 8일 노인의 날 기념행사를 직접 주관했다. 서울 신촌의 한 예식장을 빌려 노인 450여분을 초대해 음식과 기념품을 제공하고 국악인의 노래와 춤을 곁들인 행사를 시범적으로 거행한 것이다. 정부가 훗날 공식적으로 ‘어버이날’과 ‘노인의 날’을 제정한 것도 그의 보이지 않는 숨은 노력 덕분이다.

아버지날과 노인의 날을 만든 이돈희 선생은 특별한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사람 같다. 갈수록 이혼 등 가정해체가 늘어나고 효친(아버지날) 경로(노인의 날) 사상이 날로 희박해져 가고 있는데, 이를 부활시키는 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으로 알고 50년 넘게 실천해오고 있어서다.

공교롭게도 어린이 사랑에 일생을 바친 소파(小波) 방정환 선생과 효친경로사상 부활에 인생을 건 이돈희 선생은 선린상고(현 선린인터넷고) 선후배로 49년 차이이다. 소파가 1922년 ‘어린이날’을 만들었다면, 청파는 ‘아버지날’과 ‘노인의 날’을 제정했으니 인연도 보통 인연이 아니다.

이돈희 선생은 “아버지와 노인을 공경하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야 우리나라가 바로 설 수 있습니다. 청소년 시절부터 관심을 가진 것도 이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청파 이돈희 선생
청파 이돈희 선생
그는 인기가수나 영화배우, 정치인 또는 연예인이 아니면서도 라디오 및 TV 방송출연 횟수 500회, 각종 신문과 잡지에 인터뷰 또는 기고한 횟수도 300회를 넘는다. 뿐만 아니라 제18대 국회의원 297명 전원에게 국민을 위한 의정활동을 잘해달라며 고 이태석 신부의 다큐멘터리 극장판 ‘울지마 톤즈’ DVD를 기증했다.

청년 시절부터 아버지와 노인 존경 운동을 펼쳐온 이돈희 선생도 어느덧 지하철 무임승차와 효친경로 대접을 받아야 할 68세 노인이 되었다. 어린 시절 외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머니날이 돌아올 때마다 가정의 중심에 선 아버지도 당당하게 카네이션을 받을 자격이 있다는 생각해서 이 같은 일에 나서게 됐다고 회고한다.

선린상고에 재학 중이던 그는 아버지날을 만들고 이를 알리기 위해 언론사를 찾아 다녔다. “어머니날이 있으니 당연히 아버지날을 만들어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자”고 각계각층에 편지를 쓰고 가정교사와 신문가판 등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일간지에 광고도 내면서 노력했지만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별 호응을 얻지 못했다.

“초등학생 때 하루는 아버지께서 제가 병약해서 외갓집에 가 계신 어머니 대신 지어드린 식사를 하던 중에 ‘딱’하고 돌 씹는 소리가 났는데 어린 제가 미안해 할까봐 그냥 삼키시더군요.”

도전한국인상을 받은 청파 이돈희 선생
도전한국인상을 받은 청파 이돈희 선생
그렇게 부자가 어머니 없이 함께 보낸 시간들은 외롭게 자란 외아들로 하여금 모정(母情) 못하지 않은 부정(父情)을 느끼게 해줬다. 좀 더 크면 아버지날을 만들어 그런 아버지의 가슴에 꼭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싶었다.

그는 아들보다는 딸이 아버지를 더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이화여대 신문인 ‘이대학보’에 1968년 5월 20일 ‘아버지날을 제정하자’는 광고를 실었다. 그것이 먹혀들었다. 이대학보에 광고가 나간 지 3년 만에 이화여대 기독교학과에서 ‘이화의 아버지날’ 행사를 개최하게 됐다. 이대학보에 실린 아버지날 광고를 본 1학년 학생들이 4학년이 되었을 때 그 기억을 되살려 ‘이화의 아버지날’을 만들고 다시 2년이 지난 1973년 국가에서 아버지날과 합쳐진 어버이날을 제정하게 된 것이다. 1956년부터 해마다 5월 8일을 국가에서 어머니날로 지정하여 1972년 17회까지 기념행사를 해오다가 1973년 어머니날과 아버지날이 합쳐진 어버이날로 변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가 아버지날을 만들어 국가기념일로 제정하자고 주장한지 꼭 10년 만에 맺은 결실이다.

그뿐 아니다. 노인 문제에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대학 4학년 때 노인의 날을 그가 혼자 만들었다. 유엔에서 세계 노인의 날을 1991년에 만들었으니 대한민국 청년인 그가 유엔보다도 무려 23년이나 앞서 만든 것이 노인의 날이다.

1968년 그가 노인의 날을 만들고 직접 노인의 날 행사까지 하면서, 여론 조성에 앞장서온 노력에 힘입어 29년 만인 지난 1997년 정부에서 드디어 노인의 날(10월 2일)을 법정기념일로 공식제정하기에 이르렀다.

2014년 4월 25일에는 어린이날을 앞두고 선린중학교(교장 정관영) 3학년 후배들 300명에게도 선생의 저서 300권을 기증했다. 또한 5월 5일 어린이날을 즈음하여 같은 4월 25일에는 어린 나이에도 추위와 눈비를 무릅쓰고 한창 자야 할 새벽 일찍부터 신문배달을 하면서 꿋꿋이 학교를 다니는 최연소 배달 청소년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자 11대(大) 일간신문에 공문을 보내어 최연소 배달 청소년을 추천 받았으며, 11대 신문 중에서 가장 최연소 배달 청소년으로 선정된 김예지 여학생(13세· 아현중 1학년)과 김양의 어머니를 대한노인신문사로 초대하여 신문배달장학금을 전달했다. 아버지날을 만든 지 만 50주년인 2013년에는 세게 최초로 세계어버이날을 만들고 유엔에서 이 세계어버이날을 제정하도록 하기 위해 대한노인신문 창간기념 제500호가 되는 지난해 12월5일자 대한노인신문에 “세계어버이날을 제정하기를 제언합니다!”라는 특집 제언을 시작으로, 지난 1월 16일에는 미국에서 미국의 재미한국노인회(korean American Association of Senior Citizens)와 유엔에서 세계어버이날 제정을 위해 서로 협조하는 업무협약서(MOU)를 체결하고 돌아왔다.

박근혜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도 임기 중에 관심을 가지고 230여개 나라 중에서 한국인이 최초로 제언하는 이 세계어버이날을 유엔에서 제정하여 글로벌 속에서 대한민국의 국격과 위상을 한 단계 높여주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아버지날과 노인의 날과 세계어버이날을 만든 이돈희 선생은 효친경로 부활 사명을 안고 태어난 사람이다. 그의 도전은 고등학교 시절부터 백발이 성성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그 도전은 곧 현실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진정한 도전한국인이다.
조영관 Global Record Committee 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