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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뿌리를 찾아서⑧] 작은 불씨에서 지역의 등불로, 경남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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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의 뿌리를 찾아서⑧] 작은 불씨에서 지역의 등불로, 경남은행

공업화에 자금난 겪던 경남, 지역사회에 금융 온기 불어넣다
위환 위기 시련 속에서도 지역경제의 버팀목으로
지역의 등불로 우뚝선 경남은행…새로운 50년을 꿈꾸다

1970년 개업 당시의 경남은행(오동동 임시행사) [사진=BNK경남은행]이미지 확대보기
1970년 개업 당시의 경남은행(오동동 임시행사) [사진=BNK경남은행]
“은행장 취임에 대한 감회보다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지역 경제의 활력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크다. 지역민이 체감하고 지역 경제가 반응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지난해 4월 최홍영 BNK경남은행장이 취임사에서 했던 말은 경남은행의 지난 반백년을 투영한다. 경남은행은 변변한 금융기관이 없어 산업 성장을 제한 당한 경남 지역의 부름에 응답해 탄생했다.
이후 50여년간 경남은행은 외환위기 등 숱한 어려움에도 지역민의 곁을 지켜왔으며, 얼어붙은 지역 경제에 온기를 전달해왔다. 그리고 새로운 50년을 준비하는 지금, 경남은행은 불확실한 미래를 밝힐 등불이 되어 지역민들의 앞을 밝히고 있다.

◆공업화에 자금난 겪던 경남, 지역사회에 금융 온기 불어넣다


1960년대 울산 공업단지 [사진=BNK경남은행]
1960년대 울산 공업단지 [사진=BNK경남은행]
경남은행의 토양은 경남 마산이다. 마산은 동해안과 서해안을 잇는 상권의 중심지였지만, 1953년 휴전 이후 제조업 위주의 공업 도시로 변모한다.

문제는 산업화를 뒷받침해 줄 금융기관의 부재였다. 전쟁 이후 실질적인 국내 자본은 서울에 집중됐고 이는 지역간 경제 격차를 벌렸다. 마산은 아시아 최대 단일 공장인 ‘한일합섬’과 ‘경남모직’ 등 유수의 기업을 보유한 산업도시였다. 반면 마산의 금융기관들이 보유한 예금액은 약 60억 원에 불과해 기업들의 경영자금 수요를 감당하지 못했다.

1970.04.15. 창립총회 개최 [사진=BNK경남은행]
1970.04.15. 창립총회 개최 [사진=BNK경남은행]

이에 1967년 1월 정부는 지방은행 설치를 검토한다고 밝혔다. 그해 말 마산상공회의소를 중심으로 경남지역은행의 설립이 추진되며, 1970년 5월 경남은행이 설립된다. 최초의 고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으며, 영업 첫날 예금액만 2억6800만 원에 달할 만큼 지역민의 성원은 대단했다.

1970년 신마산지점 개점식(왼쪽)와 창동본점 신축 이전식 [사진=BNK경남은행]
1970년 신마산지점 개점식(왼쪽)와 창동본점 신축 이전식 [사진=BNK경남은행]
이후 경남은행은 1970년대 자유무역지역으로 지정된 마산과 국가 산업 단지가 조성된 창원을 중심으로 급격한 성장세를 보인다. 경남은행은 신마산·부산·진해지점을 연달아 개설했으며, 1972년을 기점으로 영업 구역을 경상남도 일대로 확장한다. 특히 연고 은행이 없는 울산과 서울에 진출하는 등 세를 넓혀간다.

70년대 후반은 경남은행에게 변화의 시기였다. 당시는 국내 기업들의 수출이 급증하며 경상수지가 개선된 시점으로, 경남은행은 국제부를 운용해 외국환 업무를 담당했다. 또한 마산 시금고를 이관 받았으며, 창원과 울산, 진주 시금고를 유치하며 지역 금융의 중추로 성장했다. 그 결과 경남은행은 후발주자임에도 1979년 총수신 1000억 원을 돌파하는 성장세를 보인다.

◆제2의 창업…석전동 시대 열며 종합금융사로 거듭나다


1980.05.22. 창립 10주년 기념 [사진=BNK경남은행]
1980.05.22. 창립 10주년 기념 [사진=BNK경남은행]

1980년대 촉발된 자유화의 바람은 금융권에도 미쳤다. 겸업주의에 기초한 완전 경쟁 시대로 진입한 것. 경남은행도 신탁업무를 개시했으며, 비씨카드와의 제휴를 통해 신용카드사업을 실시했다. 1981년부터는 전산 설비를 도입하며 본격적인 전산화에 나섰다.

1985년 경남은행의 1대 주주인 국제 그룹의 부도는 경남은행을 단련시키는 계기가 됐다. 그 해 경남은행의 당기순이익이 38% 가량 감소했다 하지만, 이를 통해 기업여신관리를 재점검하고 내실경영을 강화했다.

정부의 ‘중소기업 창업지원법’ 공포에 맞춰 1987년 ‘경남창업투자’를, 1989년에는 ‘경남리스금융’을 설립하며 종합금융센터로의 위상을 갖춰갔다. 그 결과 1987년 청와대에서 열린 ‘전국유망 중소기업 발굴 지원사례 보고회’에서 대통령 표창을 수상하는 등 지역중소기업 육성에 이바지한다.

1992.05.22. 석전동 본점 신축 이전 [사진=BNK경남은행]이미지 확대보기
1992.05.22. 석전동 본점 신축 이전 [사진=BNK경남은행]

1992년은 경남은행에 있어 ‘제2의 창업’의 해였다. 창립 22주년에 맞춰 석전동으로 본점을 이전했다. 경남은행은 이를 전후로 5년간 울산에 22개, 부산 등 동부권에 13개의 점포를 신설했다. 서울지역에도 10개의 점포를 설치하는 등 적극적인 점포 확장 전략을 구사한다. 그 결과 1996년 경남은행의 영업점은 161개로 늘어난다.

경남은행은 근로자장기저축, ‘내고장사랑통장’ 등을 판매하며 수신 유치에도 적극적이었다. 그 결과 경남은행의 총수신은 1993년 3조 원을, 1996년에는 5조 원을 달성하는 기적적인 성장세를 보인다. 울산의 광역시 승격과 맞물려 경남지역의 대표 은행으로의 입지를 다졌으며, 경남금융경제연구소와 경남파이낸스를 설립하며 업무영역을 확장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는 경남은행을 무력화시킨다.

◆외환위기에 무너진 경남은행…경남지역과 함께 ‘부활’


1997년 외환위기는 은행산업에 악몽이었다. 특히 IMF는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 비율이 8% 미만인 부실 은행의 조속한 정리를 요구했다. 이때 경남은행 임직원 중 1/3(851명)이 은행을 떠난다.

1998.08.08. 유상증자 결의대회 [사진=BNK경남은행]
1998.08.08. 유상증자 결의대회 [사진=BNK경남은행]
또한 경남은행은 기업도산 등으로 자산 건전성 부문에서 4등급을 받아 1998년 10월 은행감독원으로부터 경영개선 권고를 받는다. 다만 경남은행은 경기악화에도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1000억 원 유상증자에 성공했으며, 1991년 경영 개선 계획 조건부 승인도 받는다.

이후 경남은행은 조직 축소, 적자 점포 폐쇄 등을 통해 경영 개선안을 이행한다. 다만 어려운 시기임에도 경남· 울산지역 총대출금의 77%를 지원하는 등 중소기업들의 구원 투수 역할에도 충실했다. 그 결과 경남은행은 2000년 ‘중소기업 금융 지원 철탑산업훈장’을 수상하는 등 지역 중소기업 전문 은행으로서의 위상을 높인다.

하지만 이는 같은 해 터진 ‘나라 종금 사건’으로 최악의 악수(惡手)가 돼버린다. 거액의 잠재 부실에 퇴출대상 잠재부실기업으로 지목된 것이다.

결국 경남은행은 2000년 11월 공적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3528억 원의 공적 자금 지원이 확정된다. 그 대가로 경남은행은 정부의 금융지주 통합안에 따라 2001년 3월 우리금융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다만 경남은행은 계열사 편입에 주저앉지 않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한다.

2004년 6월 경남은행은 한국신용평가가 실시한 금융회사 신용 평가 결과 지역은행 최초로 ‘AA’ 등급을 획득한다. 이는 시중은행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신탁, 금융채, 유가증권 대여업무 등을 통해 영업활동의 영역을 확장한 결과였다.

또한 2005년에는 지역민 수수료 우대제도를 시행해 약 5억 원을 지역민에게 환원한다. 이런 공격적인 영업 결과 2003년 말 11조원대였던 총자산은 2005년말 15조 원을 달성한다. 총수신과 총대출도 12조 원과 8조 원을 돌파한다.

2008.12.17. 제13회 중소기업금융지원 포상 ‘대통령 표창’ 수상 [사진=BNK경남은행]이미지 확대보기
2008.12.17. 제13회 중소기업금융지원 포상 ‘대통령 표창’ 수상 [사진=BNK경남은행]

이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또 한번 대한민국을 흔들지만, 경남은행은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을 확대한다. 당시 경남지역내 중소기업 대출 비중은 무려 87%에 달했으며, 140여 개 중소기업에 구제 방안을 제공했다.

이런 지역 기업들에 대한 아낌 없는 지원은 2010년 통합 창원시의 출범으로 호재가 된다. 창원시의 시금고에 선정된 것이다. 또한 지역 기업들을 직접 방문하는 등 고객 유치 활동을 적극 펼친 결과 경남은행의 총수신액은 2011년 20조 원을 돌파한다. 이런 노력의 결과 2014년 경남은행은 BS금융(現 BNK금융지주)의 손을 잡고 민영화 원년을 맞는다.

◆지역의 등불로 우뚝 선 경남은행…새로운 50년을 꿈꾸다


민영화에 성공한 경남은행은 그간 단기 성과 위주의 경영 정책을 수익성 위주로 재편하는 ‘비전 2020’ 전략을 수립한다. 2015년은 저성장 기조가 장기화돼 새로운 형태의 부가가치 창출이 금융사에 요구되는 시기였다. 그러나 경남은행은 BNK금융지주와의 시너지를 통해 다시 도약한다.

BNK캐피탈, BNK저축은행과 연계 업무를 통해 금융소외계층을 수용했으며, 경남은행 본점 내 BNK투자증권 영업부를 개설해 통합서비스 체계를 구축한다. 이는 지역 최초의 금융복합점포로 지역 통합자산관리서비스의 효시가 된다.

지역밀착 공익형 기업대출 상품 등을 통한 지역 중소기업 육성에도 앞장선다. 2014년 11월 기준 기업대출 17조 원의 90%(15.3조 원)을 지역 기업에 지원했다. 또한 2016년 상반기 기준 기술신용대출 규모가 1조6977억 원에 달할 만큼 기술금융 지원에도 앞장섰다.

2017.06.30. 조선업 경쟁력 강화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 [사진=BNK경남은행]
2017.06.30. 조선업 경쟁력 강화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 [사진=BNK경남은행]

특히 장기화된 불황에도 경남은행의 기업 사랑은 이어졌다. 2016년 경남은행은 구조조정 대상 조선사의 협력업체 및 조선사 소재지역의 소상공인을 위해 1000억 원 규모의 보증부대출을 실시했다. 또한 울산의 주력사업을 살리고자 자동차·조선·화학 등 관련 기업대출에 우대금리를 적용했다.

2018년 경남은행은 ‘새롭게 진화하는 은행’을 목표로 상품과 서비스를 고객 중심으로 개편한다. 핵심은 2018년 완성한 빅데이터 플랫폼이었다. 경남은행은 직업, 소득, 여유자금 등 고객별 특성을 분석해 맞춤형 금융상품과 금융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경남은행의 비대면 플랫폼 수신잔액은 1조 원을 돌파한다.

이후 경남은행은 로보어드바이저를 도입하고 오픈뱅킹 출시를 맞아 압도적인 퍼포먼스의 모바일뱅킹을 구현하는 등 고객들에게 차별화된 디지털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지역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금융지원을 확대하며, 지역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2021년 4월 1일 제14대 최홍영 경남은행장이 1일 본점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BNK경남은행]
2021년 4월 1일 제14대 최홍영 경남은행장이 1일 본점 대강당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BNK경남은행]
최홍영 경남은행장은 “변화와 혁신 등 새로운 물결이 경남은행을 넘어 지역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다 주기를 바란다”며 “저를 비롯한 전 임직원들이 하나가 돼 지역민의 삶이 윤택해지고 편안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신민호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sho634@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