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묵간' 스물세 번째 기획공연…동시대 창작무용의 가공할 상상력

공유
1

'묵간' 스물세 번째 기획공연…동시대 창작무용의 가공할 상상력

지난 12월 5일(일) 저녁 다섯 시, 서강대 메리홀 대극장에서 ‘쿰댄스컴퍼니’(KUM Dance Company), 예술총감독 김운미, 대표 서연수) 주최·주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전문무용수지원센터·한양대·우리춤연구소 후원의 ‘묵간’ 스물세 번째 기획공연이 있었다. 영문 첫 글자 KUM의 역(逆)인 MUK(묵, 墨)의 ‘흑’(黑)과 ‘토’(土)를 상상으로 한 여섯 명 안무자의 작품은 한국창작춤의 진전을 확인시키는 창의성과 놀라운 기량을 선보이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한국춤 사위와 몸짓으로 동시대 한국춤의 약진을 실증하기로 기대받으며 신축년 묵간 잔치에 초대된 안무가 여섯 명과 춤꾼 서른네 명이 직조한 작품은 김재은 안무의 「어둠속에서도 푸르다 바다는」, 최은영 안무의 「Abyss」, 전미라 안무의 「Inside out」, 김소연 안무의 「시시각각:時視刻覺」, 성혜경 안무의 「작은 아씨들」, 박진영 안무의 「하얀 방: THE WHITE ROOM」이었으며 경연장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명품으로서 규모가 꽤 큰 공연이었다.
김재은 안무의 '어둠속에서도 푸르다 바다는'이미지 확대보기
김재은 안무의 '어둠속에서도 푸르다 바다는'
김재은 안무의 '어둠속에서도 푸르다 바다는'이미지 확대보기
김재은 안무의 '어둠속에서도 푸르다 바다는'


김재은 안무의 「어둠속에서도 푸르다 바다는」, 문학적 서사를 작품에 두루 깔고, 삶의 순환에 관한 몸짓 사유가 시작된다. 수사는 창작무용으로 장식되지만, 움직임은 시각이 돋보이는 현대무용에 가깝다. ‘순환에 관한 무용적 명상은 「달, 조각」의 순수를 관통한다. 분위기를 일구는 천과 사운드, 진청의 바다를 이겨내는 유연성을 확보한다. 순환의 상징인 수레바퀴가 인연의 사이를 오가며 의미를 나르고, 주제적 색상의 기둥이 세워지며 의지를 드러낸다. 낭만적 사유에서 시작한 춤은 바다를 지향한다. (출연: 이수빈 권대혁 김수현 임소현 정지혜 김재은)
최은영 안무의 'Abyss'이미지 확대보기
최은영 안무의 'Abyss'

최은영 안무의 'Abyss'이미지 확대보기
최은영 안무의 'Abyss'


최은영 안무의 「Abyss」, 심연(深淵)의 깊이감으로 춤을 성찰한다. 조소(鳥巢)를 떠나 시적(詩的)으로 살고 싶었던 세상은 미로의 늪이었다. 어두운 조도로 조형을 일구면 신비적 요소들이 심도를 높인다. 조형은 변주를 거듭하고, 느린 피아노 음(音)이 여운을 남긴다. 채색의 과거 속에 정답이 있음을 알린다. 올 블랙 의상의 몸짓 속 표정은 희망과 자유를 획득한다. 너무 푸르면 검은색으로 보인다고 한다. 안무자는 공동체 안에서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떳떳한 자신과 마주하기를 기다린다. (출연: 진솔 강하라 김근하 박기윤 김가은 유현아 최은영)
전미라 안무의 'Inside out'이미지 확대보기
전미라 안무의 'Inside out'

전미라 안무의 'Inside out'이미지 확대보기
전미라 안무의 'Inside out'


전미라 안무의 「Inside out」, 붉은 드레스의 여인은 장고의 몸통을 닮아있다. 열정을 휘감은 춤꾼의 필수품, 장고에 관한 기상예보는 흐림이다. 바람과 구름은 싐 없이 변형·반복하며 비를 꿈꾼다. 장고는 ’쉼‘의 도구이자 ’탑‘ 의미의 대상이다. 안무자는 무서운 균형과 중용을 견지하며 인간의 여러 인격과 자신을 타인의 몸에서 그려낸다. 그녀는 성장하면서 모든 것들이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며 우주는 한 몸임을 깨닫는다. 마음의 문을 열고 장고를 진 채 세상 밖으로 나갈 것을 모색한다. (출연: 강소연 양지수 이수현 오하솜 고수현 김민환 이승훈 전미라)
김소연 안무의 '시시각각'이미지 확대보기
김소연 안무의 '시시각각'
김소연 안무의 '시시각각'이미지 확대보기
김소연 안무의 '시시각각'


김소연 안무의 「시시각각:時視刻覺」, 언어유희로 시작한 제목처럼 지구라는 행성에서 인간의 시간은 공평과 불공평이 반반이다. 김소연은 사막의 한 가운데 외딴 마을의 움묵담비 같은 희망을 구사한다. 시계추 같은 느낌의 전구가 순간을 스쳐 가고, 동일 시각(時刻) 안에서 저마다의 시각(視覺)과 시시각각 변하는 각자의 시간을 춤으로 풀어낸다. 위대한 전통에서 발화된 춤은 존재를 각인시키고, 교양적 창작 태도에서 벗어나 김소연 체(體)의 따스한 감각적 안무력을 보여주었다. (출연: 정재현 유주연 이주휘 김민지 김민희 김재현 김소연)
성혜경 안무의 '작은 아씨들'이미지 확대보기
성혜경 안무의 '작은 아씨들'

성혜경 안무의 '작은 아씨들'이미지 확대보기
성혜경 안무의 '작은 아씨들'


성혜경 안무의 「작은 아씨들」, 동명 영화 <작은 아씨들>을 모티브로 여성미 강조의 춤은 장르적 경계를 허물고 소설 같은 인생을 촘촘하게 구성한다. 안무자는 바이올리니스트를 연주하게 하고 무대에 등장시키기도 한다. 장면의 시각화를 위한 조명, 발레적 분위기를 연출하는 두 쌍의 춤 연기력, 등장인물의 감정을 조율하는 음악 등이 합세한 작품은 섬세한 감정표현에 주력하며 움직임 하나하나에 정성을 부어 넣고 주제에 밀착된다. 고전적 분위기가 사라져가는 이즈음, 창작춤의 클래식화는 의미적 작업이었다. (출연:권대혁 송예빈 이종환 유부곤 성혜경)
박진영 안무의 '하얀 방'이미지 확대보기
박진영 안무의 '하얀 방'

박진영 안무의 '하얀 방'이미지 확대보기
박진영 안무의 '하얀 방'


박진영 안무의 「하얀 방: THE WHITE ROOM」, 안무자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변화에 주목하며 「하얀 방」을 창작한다. 삶의 시원인 모체의 「붉은 방」, 인간의 어두운 이면의 「검은 방」에 이은 「하얀 방」은 인간의 관계성에 집중한다. 이상향으로 가는 춤은 참신한 홀춤에서 무리춤으로 번지고, 깔끔한 연출력을 보인다. 앉아서 엎드린 자세에서 추는 무리춤은 기원의 모습이며, 마지막 장면은 해탈의 춤으로써 유토피아에 도달한 환희의 춤이다. 안무자는 수계 의식의 수행 솜씨를 보여준다. (출연:정하연 오정무 박정은 인서연 박수경 이영주 이현석 박진영)

‘쿰댄스컴퍼니’의 ‘묵간’ 스물세 번째 기획공연은 감상으로서의 춤과 예술창작 당사자와 비평가를 모두 만족시키는 성취를 이루어 내었다. 이번 공연은 신선도 지수 상위의 독창성, 같은 주제의 남다른 상상력, 작품을 구성하고 정교함을 채워 넣는 놀라운 순발력, 엄청난 시간을 투자한 연습량을 보여주는 기교의 안정성, 여러 팀의 등장에도 엉킴과 꼬임이 없는 간결함, 협업의 갈래와의 완벽한 조화, 이 모든 것을 총괄하는 예술감독과 대표의 힘을 느끼게 한 아름다운 공연이었다. 긴 시간에 걸친 공연 작품이 모두 우수함을 견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장석용 문화전문위원(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