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DB산업은행의 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 매각 지연, 인수자 변경 등 문제가 불거지면서 책임론이 부각되고 있다. 부실기업 구조조정 구원투수 역할을 자청했던 이동걸 전 산은 회장이 무리하게 밀어붙였던 굵직한 인수합병(M&A) 전략이 차질을 빚고, 일부는 헐값에 매각되는 등 혈세 낭비 지적을 받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대우조선해양, 쌍용자동차, KDB생명 등 대규모 공적자금이 투입된 매각이 줄줄이 좌초되고 인수자 변경, 매각 지연 등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태가 주요 기간산업 재편이 부실하게 추진되면서 독과점 문제, 주요국 기업결합심사 지연 등 문제를 간과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3일 정부와 금융권 등에 따르면 산은이 주도한 아시아나항공, 대우조선해양, 쌍용차, KDB생명 등 주요 M&A 전략이 차질을 빚으면서 헐값 매각, 구조조정 지연·무산 등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산은은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로 부실 기업의 법정관리를 맡게 됐다. 그러나 그동안 기업 경영 정상화 및 판매 전략이 성공적이라고 보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산은의 기업 구조조정은 기대한 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20여 년 동안 매각 작업이 진행됐지만 여러 번 좌절되면서 기간산업 재편에 어려움을 겪었다.
대우조선은 2008년 한화그룹과의 매각 협상이 무산된 후 2019년 현대중공업과의 협상도 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심사를 통과하지 못해 좌절됐다. EU 경쟁당국은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 시장의 과점 문제를 이유로 기업결합을 불허했다.
이에 대해 이 전 회장은 EU의 자국 중심적인 이기주의 태도를 비판했다. 그러나 합병으로 독점적 지위를 형성할 수 있어 이에 대한 해외 경쟁당국의 우려를 사전에 예측하고 대응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결국 지난해 9월 한화가 약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대우조선의 지분과 경영권을 확보하게 됐다.
작년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산은이 대우조선의 매각 기회를 잇따라 놓친 것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이로 인해 기업가치가 떨어지면서 헐값 매각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쌍용자동차도 매각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2021년 쌍용차 인수협상대상자로 에디슨모터스가 선정되면서 매각이 추진됐다.
당시 에디슨모터스의 자금조달 능력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지만 산은은 매각을 강행했다. 결국 에디슨모터스가 지급기한 안에 2700억원 규모의 인수대금을 납부하지 못하면서 계약이 무산됐다.
이후 쌍용차는 KG그룹에 인수돼 KG모빌리티로 사명을 변경했다.
2020년부터 추진한 아시아나항공과 대한항공의 합병 역시 미국과 EU 규제당국의 승인이 미뤄지면서 난항을 겪고 있다.
아시아나 합병은 2019년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인수합병 당시와 같이 독점 문제가 불거졌다. 두 항공사가 합병하면 시장에서 일부 노선에서 서비스 경쟁을 제한해 독과점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2월 한국 공정거래위원회는 조건부로 합병을 승인하되, 독점 문제로 인해 일부 국제선과 국내선 노선에 대한 운수권 이전 등 구조적 대책을 요구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표한 '대형항공사 M&A 관련 이슈와 쟁점' 보고서에 따르면 통합 항공사의 가격 인상, 계열 항공사 간 담합 가능성, 수익성 높은 슬롯 확보에 따른 진입장벽 구축 등이 합병 후 예상되는 경쟁 제한적 효과로 지목됐다.
두산중공업, HMM, 대우건설 등 회생에 성공한 기업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여기서도 산은의 역할보다는 각 기업의 내부 역량이나 시장 상황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편 HMM 매각도 불확실성이 높아지고 있다. HMM 인수에 관심을 보인 곳은 하림, 동원, LX 등이다. 그러나 매각 금액으로 최대 7조원의 자금이 필요하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매각이 순조롭게 성사될 수 있을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산은이 주도하는 기업 구조조정의 성과가 미흡한 점을 감안할 때 매각 문제로 추가적인 어려움을 겪을 경우 '산은 책임론'에 대한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노훈주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hunjuroh@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