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캐나다, 프랑스, 호주 등은 최근 잇따라 과학자 유치 프로그램을 발표하고 학문적 자유와 안정된 연구 환경을 내세우며 미국 기반 과학자들을 노리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내 과학계 지원을 ‘비효율’로 규정하고 예산과 인력을 대폭 줄이자, 해외에서는 이를 ‘인재 유출’ 기회로 삼고 있다는 얘기다.
트럼프 행정부는 취임 이후 미국 국립과학원(NAS), 국립보건원(NIH), 항공우주국(NASA) 등 주요 기관의 연구비와 인력을 대대적으로 삭감했고 일부 사립대학에 흘러가는 연방 연구비도 크게 줄였다. 백악관은 내년도 예산안에서 NIH 예산을 약 40%, 국립과학재단(NSF) 예산을 55% 감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쿠시 데사이 백악관 대변인은 “이전 행정부의 사업을 점검하고 낭비를 제거해, 미국인의 우선순위에 맞는 연구 투자를 재정비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이같은 변화 속에 미국 주요 대학들은 인력 감축과 박사과정 신규 선발 중단 등을 잇따라 발표하고 있으며 지난 22일에는 트럼프 행정부가 하버드대의 유학생 모집 권한을 취소했으나 법원은 일단 제동을 걸었다.
이에 해외 연구기관들은 미국 내 불안정한 연구 환경에 주목하며 자국 과학계의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캐나다 토론토의 유니버시티 헬스 네트워크(UHN)는 ‘캐나다 리드(Canada Leads)’ 프로그램을 통해 미국 기반 초기 경력 생의학 연구자들을 유치하겠다고 밝혔다. 브래드 우터스 UHN 부국장은 “남쪽(미국)의 과학이 위협받고 있다”며 “전문성과 잠재력을 갖춘 인재 집단 전체가 이번 상황의 영향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는 지난 3월 ‘과학의 안식처(Safe Place for Science)’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하며 “연구에 제약을 느끼는 미국 과학자를 환영한다”고 밝혔다. 호주도 ‘글로벌 인재 유치 프로그램’을 통해 경쟁력 있는 연봉과 이주 비용 지원을 약속했다.
호주 과학원(AS)의 안나마리아 아라비아 대표는 “미국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응해 전례 없는 인재 유치 기회가 열렸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유럽을 과학의 터전으로(Choose Europe for Science)’라는 대륙 차원의 전략을 가동하며 “과학 연구의 자유를 법적으로 보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엑스마르세유대 총장 에릭 베르통은 “미국 연구자들은 무엇보다 학문적 자유가 보장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프랑스 유전·분자·세포생물학연구소(IGBMC)는 올해 미국에서 온 지원자가 지난해보다 두 배로 늘었다고 밝혔다. 독일 막스플랑크협회의 ‘리제 마이트너 우수 프로그램’은 미국 여성 과학자의 지원이 지난해보다 세 배 증가했다.
그러나 실제로 두뇌 유출이 일어날지는 아직 이르다는 전망도 있다. 미국은 여전히 전 세계 연구개발(R&D) 투자에서 29%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학·정부·민간을 합한 총 투자 규모는 세계 최대라서다.
그럼에도 미국 과학계 내부에서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위스콘신대 매디슨캠퍼스에서 신경 임플란트를 연구 중인 박사후연구원 브랜든 코번트리는 “미국을 떠날 생각은 없었지만, 지금은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뉴욕대에서 아동의 인종·성별 고정관념 형성을 연구하던 마리안나 장은 국립과학재단의 연구비가 끊기자 “미국이 더는 이런 주제에 관심이 없는 듯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국제 과학계는 미국과의 협력 중단으로 인한 장기적 파장을 우려하고 있다. 독일 막스플랑크협회 대표 파트리크 크래머는 “과학은 국제적 작업”이라며 “미국의 인재를 단순히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세계 과학 생태계가 공동으로 손실을 줄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IGBMC의 파트리크 슐츠 소장은 “미국은 과학과 교육에서 세계의 본보기였다”며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우리에게도 충격”이라고 밝혔다.
김현철 글로벌이코노믹 기자 rock@g-e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