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10 00:00
1959년의 일이다. 네덜란드 북부 흐로닝언(Groningen) 지하에서 유럽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전이 발견됐다. 전후 복구와 산업화로 에너지를 갈망한 서유럽 한복판에 거대한 자원 보고가 열린 셈이었다. 1960년대부터 국고로 천문학적인 가스 수출 대금이 유입되자 경상수지는 사상 최대 흑자를 기록했고 정부 재정은 풍족해졌으며 복지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팽창했다. 당대 관료와 언론은 이를 ‘네덜란드의 기적’이라 칭송했다.화려한 잔치는 10여 년 만에 파국으로 변했다. 가스 수출 대금의 대규모 유입은 외환시장에서 길더(Guilder)화의 급격한 실질 환율 절상을 불렀고, 이는 기계, 조선, 섬유, 정밀화학 등 전통 공산품 제조업의 가격 경2026.09.10 00:00
[김대호 칼럼] ‘닥터 코퍼’와 인공지능: 붉은 금속의 역사와 지능 혁명의 충돌인류가 맨 처음 사용한 금속은 바로 구리다.지금으로부터 약 1만 년 전, 튀르키예 아나톨리아 고원이나 자그로스 산맥 일대에 살던 신석기 수렵 채집인들은 모닥불 주위에 둘러앉아 있었다. 한 사냥꾼이 화덕 주변을 둘러치기 위해 주워 온 푸르스름하고 붉은빛이 감도는 무거운 돌멩이 몇 개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으로 굴러떨어졌다. 보통의 암석이라면 장작불의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산산조각이 났을 터였다.다음 날 아침, 차게 식은 잿더미를 헤치던 원시인의 눈에 기이한 광경이 들어왔다. 단단한 돌들은 깨져 흩어졌지만, 불길 속에 던져졌던 그 붉은 돌은2026.09.09 00:00
[김대호 진단] 반도체 열전 (52) 추론형 혁명과 메모리 반도체 오픈AI가 차세대 모델 ‘GPT-6 아스트라(Astra)’를 시장에 선보였다. 이스트라 발표에 가장 흥분한 이는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였다. 젠 슨황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엑스(X)에 “챗GPT에서 o1을 거쳐 아스트라까지 4년이 걸렸다. AGI(범용인공지능)가 도래했다”며 축하를 건넸다. 그는 아스트라 학습에 엔비디아 그레이스 블랙웰 NVL72가 이미 10만 개 이상 투입되었고, 차기 단계로 40만 개의 GPU가 곧 가동될 것임을 밝혔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뉴욕과 서울 증시가 일제히 반응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대형 메모리 반도체 기업들의 주가가 가파른 상승세2026.09.08 09:20
올해 국내 증시는 그 어느 때보다 극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상반기 불과 6개월 만에 두 배 이상 뛰며 ‘꿈의 지수’를 잇달아 갈아치우던 코스피는 9000선을 넘어선 뒤, 하반기 초입부터 급격한 조정을 받으며 5000선을 위협받는 롤러코스터 장세를 연출했다. 이 과정에서 레버리지 투자와 특정 대형주 쏠림, 급격한 변동성 확대 등 역대급 불장의 이면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너도나도 만스피를 외치던 ‘9000피 축제’가 막을 내리자 시장에서는 책임론이 고개를 들었다. 곳곳에서 개인투자자들의 곡소리가 터져 나왔으니 정부와 금융당국을 향한 책임론으로 번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내로라하는 글로벌 투자은행(IB)과 정치권까지2026.09.08 00:00
[김대호 진단 반도체열전] (52) 빚으로 쏘아 올린 AI 요새: 오라클은 왜 위험천만한 하이퍼스케일러로 변신했는가잘 나가던 오라클에 비상이 걸렸다. 신용평가 회사가 오라클의 신용등급을 대폭 하향조정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2026년 7월 9일 목요일 오후 1시 57분(미 동부 시각), 뉴욕 채권시장의 트레이더 단말기 화면에 일제히 붉은색 긴급 속보가 번쩍였다. 글로벌 3대 신용평가사 중 하나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발간한 평정 보고서였다. 내용은 충격적이었다. 세계 소프트웨어 제국의 상징이자 한때 월가에서 가장 윤택한 현금을 쥐고 흔들던 오라클(Oracle)의 장기 발행자 신용등급을 종전 ‘BBB’에서 투자적격 등급의 맨2026.09.07 00:00
[김대호 진단의 반도체 열전] (51) 아마존: 일본 열도를 멈춰 세운 ‘디지털 신(神)’, 실리콘 제국의 보이지 않는 손코로나 페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9월 2일 목요일 오후 1시, 일본 도쿄의 중앙관청가 카스미가세키(霞が関)와 열도 전역에 일제히 비명이 터져 나왔다. 당시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야심 차게 닻을 올린 일본 디지털청의 핵심 전산망인 백신 접종 기록 시스템(VRS)이 흔적도 없이 먹통이 되었다. 전국 지자체의 주민 행정 창구는 줄줄이 문을 닫았고 성난 민원인들이 들이닥쳤다. 금융의 심장부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3대 메가뱅크 중 하나인 미즈호은행의 모바일 뱅킹과 외환 거래 시스템이 멈춰 섰다. 하네다와 나리타 공항에2026.09.06 00:00
불타는 백악관과 1812년 전쟁의 망령: 미·캐나다 관세전쟁, 동맹의 외피를 찢다 미국 대통령 집무실을 흔히 화이트 하우스, 즉 ‘백악관(The White House)’으로 부른다. 그러나 이 건물의 명칭이 건립 초기부터 백악관으로 불렸던 것은 결코 아니다. 초대 입주자 존 애덤스 시절부터 이 유서 깊은 건물의 공식 명칭은 그저 ‘대통령 관저(President’s House)’ 또는 ‘행정부 관저(Executive Mansion)’에 불과했다. 이 건물이 오늘날 백악관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이면에는 피비린내 나는 북미 대륙의 역경과 상흔이 깃들어 있다.1812년, 신생 독립국 미국과 캐나다(당시 영국령) 사이에서 전면전이 발발했다. 개전 초기 미군이 캐나다의 수2026.09.05 00:00
반도체 열전 (50) 애플(Apple) … "반도체 혁신 숨은 주역"김대호 박사 글로벌이코노믹 연구소장 / 전 고려대 교수'인텔 제국'의 아성을 무너뜨린 스티브 잡스림 오랫동안 컴퓨터 세상은 '윈텔(Wintel)'이라 불리는 거대한 철옹성이 지배하고 있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와 인텔의 연산 칩이 손을 맞잡은 이 동맹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절대 권력이었다. 데스크톱과 육중한 서버 시장을 틀어쥔 인텔의 x86 왕국은 영원히 해가 지지 않을 제국처럼 보였다. 그 누구도 인텔의 두뇌와 아성을 무너뜨릴 수 없다고 믿었다.그러나 영원할 것 같던 제국의 성벽에 거대한 균열을 낸 이는 다름 아닌 스티브 잡스였다. 2007년 1월, 샌프란시스코의 무2026.09.04 00:00
일본 하면 우선 '와타나베 부인(Mrs. Watanabe)'이 떠오른다. 스시나 벚꽃보다도 여의도와 뉴욕 월가의 펀드매니저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이름, 바로 일본의 안방 금융 권력을 쥐고 흔드는 주부 투자자들이다. 와타나베 부인 , 이들은 도쿄의 평범한 아파트 식탁에 앉아 차를 마시며 노트북을 켠다. 그리고 눈 깜짝할 사이에 수억 엔의 돈을 클릭 한 번으로 지구 반대편 뉴욕 증시의 엔비디아 주식이나 브라질 국채로 쏘아 보낸다. 월가의 거물들이 이 와타나베 부인들의 손가락 하나에 벌벌 떠는 이유는 단순하다. 이들이 굴리는 자금이 전 세계 금융시장의 핏줄 역할을 해온 '엔캐리 트레이드'의 거대한 축이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수2026.09.03 00:00
월스트리트에는 오랜 격언이 있다. "주식시장은 꿈을 먹고 살지만, 채권시장은 현실을 계산한다." 테크 기업의 장밋빛 실적과 화려한 상장 행사에 가려져 일반 대중에게 채권은 늘 지루하고 안전한 '잠자는 거인'처럼 보인다. 은행 금고나 연기금 장부 한구석에 얌전히 묵혀 있는 종이 쪽지 정도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 거인이 몸을 한번 뒤척이면 세계 경제는 천지가 뒤흔들리는 대혼돈에 빠져들게 된다. 지금이 바로 그 때이다. 미국의 국채금리가 흔들리면서 뉴욕증시는 물론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고 있다. 채권을 처음 접할 때 가장 혼란스러운 대목은 "금리가 올랐는데 왜 채권 투자자는 손실을 보는가?"라는 점이다. 흔히 금리가 오2026.09.02 00:00
[김대호 진단] 일본 금리인상 베센트 공개 압박... 알고보니 " 트럼프 중간선거용"글로벌 금융시장의 시선이 다시금 미국 워싱턴과 도쿄로 쏠리고 있다. 스콧 베선트(Scott Bessent) 미국 재무장관이 일본은행(BOJ)을 향해 이례적으로 기준금리를 신속히 올리라고 공개 압박을 가하고 나섰기 때문이다.표면적으로는 엔화 가치가 지나치게 떨어져 미국의 무역적자가 늘어나고 있으니 환율을 정상화하라는 통상적인 요구처럼 들린다. 그러나 국제 금융의 복잡한 수면 아래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본질이 숨어 있다. 베선트 장관의 칼끝이 향하고 있는 진짜 과녁은 바로 '미국의 장기 국채 시장'이다.미국 정부의 빚더미와 국채 이자 부담이 사상 최2026.09.01 10:40
그동안 국내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돼 온 낮은 주주환원율과 불투명한 자본 배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국내 증시를 대표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사상 최대 수준의 주주환원 카드를 잇따라 꺼내 들면서 ‘주주환원 경쟁’의 포문을 열어서다. 특히 이번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단순히 환원 규모가 커졌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적인 인공지능(AI) 반도체 호황으로 막대한 현금을 벌어들이고 있는 한국 대표 기업들이 이제 성장의 과실을 주주와 나누는 데 적극적으로 나섰다는 점에 의미가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1일 이사회를 열고 2026년 주주환원 규모를 약 90조~110조 원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기존 최대 규모였던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