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의 발견Top50(42)] 21세기 멀티플레이어, 외교관
한국을 잘 알릴 수 있는 지식 필수
국제정세·정치적 감각 뛰어나야
국익 위해 희생정신·인내심 요구

그렇다면 외교관은 왜 화려해 보일까. 이들은 뉴스에 오르내리지도 않거니와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외교관이 화려한 직업이라고 느낀다. 아마도 보통 사람은 생각하지도 못할 해외여행을 마음껏 하고, 어디에 가도 귀한 손님으로 대접받으며,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업무를 진행하고, 게다가 대우도 좋을 것 같다는 인식 때문이 아닐까. 또 영어를 포함한 여러 외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할 줄 아는 만큼, 외교관이 되는 것 자체가 능력을 인정받은 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외교 업무는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고 힘들다.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일하는 만큼, 애국심과 책임감이 투철해야 한다. 아울러 우리나라를 잘 소개할 수 있는 지식과 상식이 깊고 풍부해야 한다. 국제 정세에 대한 정치적 감각도 뛰어나야 하고, 상대를 설득할 줄 아는 조리 있는 말솜씨와 논리적 사고력도 갖추어야 한다. 도덕적이어야 하고 국제 매너에 맞는 몸가짐도 필요하다. 덧붙여 국익을 위해 사사로운 희생을 감내할 만큼 희생정신과 인내심 또한 요구된다.
외교관은 다른 분야에 비해 인원수가 적어서인지 일반인이 외교 관련 직업의 특성에 대해 자세히 알기는 쉽지 않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영화나 방송을 통해 접하는 몇몇 단편적 모습을 통해서만 외교관을 이해하기 마련이다. 그 결과, 겉으로 드러난 화려한 모습만 보려고 하지, 이면에 감추어진 외교관의 업무와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따라서 외교관에 대해 깊이 있는 정보를 알려면 현직 외교관들이 쓴 책을 세밀하게 읽어 보는 일이 필수적이다.
먼저 외교관 생활 전반에 대해 총체적으로 잘 설명한 책으로 김효은이 쓴 <외교관은 국가대표 멀티플레이어>(2008, 럭스미디어)를 추천하고 싶다. 저자는 대학에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외무고시를 거쳐 외교관이 된 여성외교관이다. 이 책은 외교관이나 국제공무원을 지망하는 사람들을 위한 안내서를 자처한다. 그래서 외교관이 갖추어야 할 자격과 자질, 외교관이 되는 다양한 통로를 소개한다. 여기에 저자가 15년간 외교관으로서 겪었던 여러 외교 행사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외교 업무의 특성을 느낄 수 있게 한다. 외교에서 중요한 요소인 의전에 대한 정보가 많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런가 하면 제3부에서는 외교관으로서 만났던 특징 있는 인물들을 소개하여 외교관 생활을 둘러싼 다양한 인간관계를 드러내 보여준다. 예를 들어 역할 모델이 될 만큼 훌륭한 모범을 보였던 수잔 에카위 유엔주재 노르웨이 1등서기관, 한국어를 능통하게 하는 미르체아 지오아나 루마니아 전 외무장관의 일화는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다. 이 책이 도움되었다면 같은 저자가 비슷한 맥락에서 쓴 <청춘, 국제기구에 거침없이 도전하라>(2013, 엘컴퍼니)도 참고할 만하다.
외교관에 대한 개략적 소개에서 벗어나 구체적으로 업무가 진행되는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책으로 <돌아온 외규장각 의궤와 외교관 이야기>(2013, 눌와)가 있다. 병인양요(1866년) 때 강화도를 침공한 프랑스군은 퇴각하면서 외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던 물건들을 가져간 바 있다. 그 후 이 사건은 역사 속에 묻힐 뻔했다. 하지만 1975년에 프랑스국립도서관에 <조선조의 의궤> 297권이 보관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었고, 1991년 우리 정부는 이를 반환해달라고 프랑스에 요청하게 된다. 이때부터 시작된 외교 협상은 근 20년을 이어지게 되고, 그 결과 2011년 환수가 완료되었다.
이 책은 외규장각 의궤 반환 협상에 참여했던 저자가 외교관으로서 겪은 과정을 세밀하게 스케치하고 있다. 따라서 외교협상이 진행되는 단면을 매우 구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는 보기 드문 자료다. 저자 유복렬은 프랑스 문학을 전공하고 프랑스에서 유학한 바 있는 불문학자다. 귀국 후 대학에서 강의하다가, 국제관계 전문가 5급 공채시험에 합격하여 외교관이 되었다. 프랑스 사회를 잘 아는 전문가인 만큼 양국 입장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점이 돋보인다.
<어느 군사 외교관 이야기>(2014, 지식과감성)는 우리가 흔히 ‘무관’이라 부르는 군사외교관들의 생활과 업무를 소개하는 독특한 책이다. 저자 김성웅은 육사 출신 장교로 32년간 군 생활을 했으며, 그중 15년 동안 군사외교업무를 수행한 바 있다. 이 책은 저자가 체험한 경험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생생한 현장감이 넘친다. 업무 특성상 군사 기밀에 속하는 부분은 제외하고 있지만, 군사외교관으로 교육을 받던 과정, 오스트리아와 이집트에서의 외교 업무 체험, 유엔 평화유지군에 파견되었던 경험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사실 이 부분은 외교 업무 중에서도 특히 잘 몰랐던 분야에 대해 인식을 새롭게 하기에 충분하다. 뒷부분에서는 외교에서 군사 분야가 차지하는 중요성을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있는데 다른 책에서는 찾기 힘든 내용을 다룬다.
전문가를 스페셜리스트(specialist)라고 한다. 어느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과 기술이 깊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에 대비되는 말이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다. 모든 면에 두루 잘 알고 있다는 사람을 말한다. 과거에는 전문가가 우대를 받았다면, 21세기는 제너럴리스트의 시대일 수밖에 없다고들 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전망이다. 특히 외교에서는 더욱 그렇다. 외교관은 특정 전문 분야에 대해서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니다. ‘내 분야가 아니니 잘 모르겠다.’고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만큼 외교관은 넓게 또 깊게 알아야 하고,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과 국제인으로서 매너를 갖춘, 말 그대로 멀티 플레이어가 되어야 한다.
외교관은 화려함이 아니라 나라와 민족을 위해 봉사했다는 자긍심과 명예로 보상을 받는 직업이다. 어쩌면 그래서 더 매력적인 분야일지 모른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안녕과 세계 평화를 위해 한국인으로서 이바지할 수 있는 고귀한 직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훌륭한 롤 모델을 본받아 우리나라에도 훌륭한 외교관이 많이 배출되길 바란다.
/글로벌이코노믹 김우영 안양여자고등학교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