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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밭 일군 사람(14)]한국창작무용 전기 마련한 손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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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밭 일군 사람(14)]한국창작무용 전기 마련한 손인영

[춤밭을 일군 사람들(14)]손인영(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


거친 바람 맞으며 무용 밭에 서 있는 女전사


한국창작 무용의 새로운 전기 마련


바다 닮은 사파이어로 멕시칸 아이비의 운명 타고나

외국인에게 강강술래 가르쳐 美링컨센터 야외무대서 공연


▲ 신데렐라되기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비평가] 손인영은 1962년 9월 2일, 아버지를 한의사로 두고 2남 1녀로 부산에서 태어났다. 푸른 바다를 품고 거침없을 것 같았던 어린 시절도 당시 근무지 이동이 많았던 아버지의 직업상, 초등학교 때 경남 진주로 이주하여 진주 중앙 초등학교를 거쳐, 진주여고를 졸업하였다. 바다를 닮은 사파이어, 손인영의 꿈이 ‘논개’의 활동무대에서 상상력을 숙성시킨 것이다.

진주가 배출한 많은 예인들처럼, 손인영은 고교시절, 최방자 선생의 적극적인 지도로 무용을 배웠다. 명문 진주여고에서 전격 서울로 진입, 덕성과 창의를 앞세우는 세종대 무용과에 입학하였다. 이때가 1981년 봄이었다. 봄은 봄이었건만, 민주의 봄은 아직 저 만치에 있었다. 정재만 선생이 있던 그곳에서 손인영은 연(緣)의 소중함과 도제적 가치를 익혔다.

대학 졸업 후 바로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국립무용단에 입단하여 7년간 무용수로 생활하였다. 이곳에서 무신(舞神) 국수호를 만나 본격적인 춤 창작 정신과 구성, 안무에 이르는 전 과정을 숙지하였다. 지금까지 그녀는 한국무용사에 ‘한 획’ 씩의 족적을 남기고 있다. 강한 추진력으로도 품위를 잃지 않고 있는 그녀는 멕시칸 아이비의 운명을 타고난 것이다.

▲ 금일403
혁명적 기질로 독보적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작품을 만들어 내고 있는 그녀는 의리와 정의를 중요시 여기며 무슨 일을 하든지 열정적으로 밀어붙인다. 그녀는 자율성을 중시하지만, 재미로 안무하지는 않는다. 박경리적 느긋함으로 숲을 유유자적 산책하다 세상의 험한 덫에서도 이성적 궁휼에 처하면 그녀의 눈빛은 번득이며 작품에 몰두하는 스타일이다.

국립 무용단 첫 작품출연은 『도미부인』(1991)으로 시작된다. 무용단 생활을 하면서도 1991년부터 개인 무용단을 조직하여 안무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2년 이화여대 대학원을 마치고, 자칭 안무에 대한 기본적인 소양이 없음을 절감하여 국립무용단을 그만 두고 1993년 뉴욕으로 유학을 떠났다. 자유세계로의 도피로 그녀는 새로운 춤세계와 조우한다.

유학기간 3년간 50여명의 다문화인들을 가르쳐서 강강술래를 뉴욕시 곳곳에서 공연을 하는 ‘강강술래를 통한 나눔춤’이라는 커뮤니티 프로젝트를 기획하여 링컨센터 야외무대 등에서 공연을 하였고, 나우(NOW)무용단을 초대하여 3년간 미국투어를 하기도 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을 하였다. 그녀의 추진력의 일부를 보여주는 사건들이다.

그녀는 뉴욕의 자연사 박물관, 워싱톤 케네디 센터를 비롯하여, 시러큐스, 보스턴, 필라델피아 등 20여 도시에서 40회 내외의 공연을 하고, 수많은 워크숍 공연과 강의를 하였다. 이후 1996년 콜롬비아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하고 외국인 기관인 재단법인 The Korea Society의 공연파트에서 공연 코디네이터로서 일을 하였다.

▲ 페미타지
주요업무는 한국 예술단의 미국 공연투어를 만들고 초중고에서 체험형 공연을 기획하는 것이었다. 뉴욕 유학생활 6년 동안 좀 더 넓은 세상에서 좀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고 경험하고자 했으며, 많은 것을 얻었다. 이후, 서울예술단의 예술감독으로 초빙되어 1999년에 서울로 돌아왔다. 그녀에게는 아직 고(故) 김진걸 선생의 춤세계와 만나고 있었다.

손인영은 서울예술단에서 『청산별곡』,『비나리』,『서동요』등의 작품을 창작한 뒤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고, 본격적으로 개인무용단을 활성화시켰다. 미국에 있을 때 느꼈던 동양에 대한 갈증과 한국미에 대한 목마름을 뉴욕 유학시절 느껴서인지 2001년부터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에 입학하여 예술철학을 공부하였다.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녀는 성균관대를 다니면서 꾸준히 무용단을 이끌었고 매년 1~2개의 신작을 꾸준히 만들었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소통』부터였으며 이후 『손의 죽음』,『페미타지』,『아바타처용』,『감각』,『웃음』,『안팎』,『위무』,『삼일밤 삼일낮』, 『신데렐라되기』,『흥부』 등의 창작 작품들을 만들었다. 비교적 상위개념의 춤들이었다.

‘손인영의 우리춤’, ‘전승과 창조’, 『금일 403』, 『금일 610』,『나례』,『인당수』등의 전통 재창작 작품들을 통해 춤낭비를 덜었다. 그녀의 감각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는 외국과의 공동 작업을 통하여 『Under the Roof』(Dance Theater of Ireland), 『So far… so close…』(아르헨티나 Mariana Belloto 무용단)라는 현대적인 작품도 만들었다.

▲ 삼일밤 삼일낮
특히, 외국과의 공동 작업을 통하여 다양한 기획력, 행정력, 창조력 등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공연과 공부를 꾸준히 하면서 학생들을 키우는 일에도 집중하였다. 당시, 한국예술종합학교와 한성대에 출강하면서 다양한 무용과 관련된 일들을 하기도 했다. 그녀의 데뷔 안무작 『틀 벗기기』(1991)이래 가장 다양한 분야를 체험한 한 해로 기록된다.

2004년 성균관대학교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그 해 PAT(비평가상)상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05년 올해의 예술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이후 그녀는 오로지 창작에 집중하였다. 그녀의 NOW무용단은 점진적인 성장을 하면서 3년간 집중육성단체가 되었고, 2년간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의 상주단체가 되는 성과를 이끌어 내었다.

2010년 서울형 사회적 기업으로 인준을 받을 만큼 그녀의 무용단은 예술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그녀의 무용단은 소외된 계층에 문화를 보급하는 일을 열정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특히, 체험형 공연과 이야기가 있는 공연 등을 통하여 춤을 쉽게 알리는 전도사 역할을 하고 있다. 필자가 꼽는 그녀의 대표작은 페미타지』(2003),『아바타처용』(2004),『안팎』(2005),『신데렐라되기』(2010),『삼일밤 삼일낮』이 아닌가 싶다.

▲ 인당수-춤, 심청
그녀는 2004년 인천시립무용단에서 <흥마당, 춤마당>에 안무자로 초빙되었고 또한 2010년 창원시립무용단의 객원 안무자로 초빙되어 단원들을 지도, 70분 길이의 창작 작품 『나례』를 공연하면서 이제는 개인 단체가 아니라 시립무용단에서 활동할 시기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2012년 인천시립무용단의 상임 안무자 및 예술감독이 되었다.

그녀의 최근의 대표작을 살펴보면서 그녀의 춤 철학을 살펴본다. 『소통』(2001)은 자연과 인간의 순수한 소통을 통하여 환경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과 인간의 삶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작업이다. 미디어의 발달로 인한 인간적인 소통의 단절을 경고하며 인간성의 회복과 순수, 다시 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페미타지』(2003)는 새로운 여성상에 대하여 또는 여성의 정체성에 대한 발견을 시도하는 작품으로 ‘여자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불이익이 아니라 ‘여자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긍정적인 가치 찾기를 발견하는 작품이다.

『아바타 처용』(2004)은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처용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코드 안에 천 년 전에 사라진 처용을 새롭게 부활했다. 아바타로 변신한 신, 처용이 펼치는 가상의 세계를 춤으로 현실화 하였다.


▲ 아바타 처용
『안팎』(2005)은 여성 3대의 개인적인 관계를 통하여 리얼리티를 확보한 후에 은유적인 움직임 기호와 상징적인 외연을 확장하여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서 소통을 차단하는 경계의 구분지음에 대한 물음을 스스로에게 혹은 서로에게 던지는 작업이다.

『웃음』(2006)은 웃으려고 노력하는 작품이다. 다름을 웃음거리로 치환해 버리는 획일화된 사회 속에서 뒤뚱거리며 세상 사람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려는 작고 왜소한 우리 자신의 자화상을 그리고 있다. 빨리를 세상살이의 이치로 받아들이는 사회 속에서 불편하고 느린 걸음으로 다수의 줄을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는 우리 자신의 모습은 웃어 버리기에는 그 아픔이 너무 강렬하다.

『위무』(2007)는 삶과 유리되고 화석화된 교육제도에 대한 비판의식이 중심 주제다. 삶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제도는 결국 삶을 옴짝달싹 못하게 묶어두고 있으며 제도를 위한 제도는 형식의 튼튼한 테두리를 칭칭 감고 삶을 억누른다. 우리의 ‘행복’이란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강한 의문을 이 작품은 던진다.

『금일 403』(2008)은 이 시대에 여전히 새로운 전통, 즉 시대의 마디를 넘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역사적 전통(조선시대)을 온전히 보존함과 동시에 그 전통을 창작의 재료로 활용하면서 역사의 지층을 좁혀보고자 만든 전통의 재창작이다.


▲ 흥부
금징무, 허정, 진주교방검무, 수류무, 무무, 둥둥동동, 가배 등의 새로운 전통작품을 만들었다. ‘Under the Roof-아일랜드와 공동작업’(2008), 지붕 아래에서 우리는 ‘하나’ 또는 ‘가족’이라는 것이 중심 스토리다. 가족 관계 속에서의 이타성과 사회에서의 이타주의에 대해 이야기하기 위하여 이타성이 아니었을 때 나오게 되는 행동이 전체적인 이야기로 드러난다. 경쟁, 이기적 행동, 미움 등등의 감정적 구별을 통하여 이타성의 중요함을 일깨우려는 작품이다.

『삼일밤 삼일낮』(2009)은 생명이 스러지고 삼일 동안 산 자는 죽은 자의 주위를 지키면서 온전히 내세로 갈 수 있도록 불을 훤히 밝혀 죽은 자를 달래는 <삼일장>을 춤으로 현대화 하였다. 저승가는 길이 너무 쓸쓸하지 않도록 산자는 왁자하게 긴 밤을 지키면서 술로 아픔을 달래고 놀이로 잠을 쫒으며 죽은 자의 흔적을 어루만진다.

『So far… so close…』(2009)는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장소, 인간과 상황과의 만남과 충격 그리고 경험에 관한 내용이 주제이다. 보편적인 정서를 아시아와 남미의 서로 다른 문화와 연계시켜 공동 안무 작업으로 풀어낸다. 아르헨티나 안무가 마리아나 벨로토(Mariana Bellotto_와의 공동안무작.

『신데렐라되기』(2010)는 자본주의의 극치를 드러내는 욕망의 기호로 작품화된 신데렐라 이야기인 이 작품은 타인의 욕망을 끝없이 욕망하는 나의 이야기며 욕망의 기호로 상품화되어 소외되고 타자화 된 우리들의 이야기다.


▲ 위무
『나례』(2010)는 고려 초부터 궁중에서 행해졌던 취귀의례인 ‘나례’가 지닌 ‘의식과 축제’를 동시대의 소통이라는 관점에서 현대화하였다. 닥종이 인형들의 재담, 불가의 의식무 범패, 용춤, 앵무새춤, 돈돌날이춤, 처용무 등을 우리의 전통의식과 놀이 그리고 흥겨움과 신명 등의 온갖 가무악적 요소들의 총집결이었다.

『흥부』(2011)는 제비, 뱀, 박도 끌어안고, 자신으로부터 모든 것을 빼앗아간 놀부도 끌어안는 흥부, 모든 것을 포용하며 모든 것을 나누어주는 흥부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해석하고 해체하여 형제애, 가족애 더 나아가 상생의 인류애를 담아내고자 한 작품이다.

인천시립무용단 예술감독으로서 그녀의 안무작 『인당수-춤, 심청』(2012)은 그녀를 시험할 최적의 무대였다. 부풀리고, 가라앉히고를 할 수 있었던 계기가 되었다. 이 작품에서 인당수는 아비가 만든 혼돈세상을 일깨우는 영웅 심청의 이야기로 심청의 효행은 관습에 얽매인 순종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운명을 해쳐나간 능동적 자기희생의 모습으로 풀어 낸다.

손인영, 그녀는 거친 바람을 맞으며, 전사처럼 서 있다. 그녀의 운명이다. 바람은 그녀를 잠재우지 못한다. 그녀는 늘 깨어있고, 운명을 즐긴다. 충격적 아픔이 스며드는 잔모래들의 습격에도 성을 지켜야 한다. 예견된 도발, 신중히 생각하고 행동해야 되는 운명, 타인과 달리, 남의 관심을 늘 받게 되는 그녀의 차기작은 고난을 이겨낸 영웅이야기가 좋을 것 같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