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으로 행함은 반드시 더할 나위 없이 미세한 부분까지 삼갈 것이요, 은혜는 그것을 갚지 않을 사람에게 베풀기를 힘쓸 것이라.
<해설>
삶은 어쩌면 제 무릎 위에 거문고를 베풀고 타는 일 같을 수 있다. 거문고의 현은 너무 느슨해도, 팽팽해도 제 곡조를 이루지 못함이요, 아주 세밀한 정도의 긴장도를 유지하여야만 소리다운 소리에 이를 것이며, 설혹 잘 갖추어진 거문고라 할지라도 그를 한 몸같이 어울릴 사람이 아니라면 그 또한 어긋남이라. 거문고 하나 타는 일에도 저대로운 소리란 아무에게나 녹록할 일이 아니니 그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지는 삶이란 게 손쉬울 리도 없다.
살붙이에게라도 마음을 드러내는 그 일이 쉽다 할 것인가. 주면 더 한없이 내어놓으라 하고, 아니 주면 부족하다 칭얼댈 것이 비단 아이들만은 아니니, 그것이 내 가족을 벗어난 곳에 베푸는 일이라면 더군다나 되돌려 받을 것을 염두 해선 안 된다. 자식을 아끼매 이미 이만큼 주었으니 자라서 적어도 그만큼은 돌려받아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란다면 어떤가. 그 주는 마음에 이미 계산의 씨앗을 심는 일인 것이다.
세상 많은 일이 지폐의 일일지라도 그것으로 마저 다 채울 수 없음은 거문고를 탈 때 혼연일체 송두리째 저를 내려놓고 그 物과 어리지 않는다면 남에게 갈 것도 없이 제 귀조차 채울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살면서 경제의 일은 피할 수 없다. 허나 그럴수록 더 살펴야 할 것이 제 마음의 조심이며, 가족이 살가울수록 적절한 팽팽함으로 그 살핌의 삼감이 필요하고, 그러한 저변에서야 이웃에 봉사하고 기부하는 풍토가 제대로 자리 잡을 것이다.
스스로 ‘선한’ 일이란 의식이 조금이라도 남는다면 하는 그 일이 무엇이든 벌써 보답을 바라는 것이라 했다. 비록 금전적으로는 아니라도 내세에 좋은 데 갈 것이라는 면죄부 같은 형태로라도 말이다. 그래서 은혜는 갚지 않을 사람에게 베풀라는 것이다. 그러면 거기에 제 이름자 드러낼 일도 없을 것이요, 무엇을 했다 하는 인증 샷을 날릴 이유도 애초 없다.
베풂이 아니라도 행하면서는 ‘주는’ 게 아니라 ‘담는’ 마음이어야 한다. 내가 저에게 일으켜진 무슨 마음이 무엇이라도 하게 했다면 그 보상은 그 마음만으로도 이미 성취된 것이다. 그렇게 할 수 있었음의 발단인 저가 나와 동일시된 바로 나인 까닭이다. 내게 베풀며 나에게 갚으라고 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