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기

글로벌이코노믹

[한시산책-채근담]있다? 없다?

글로벌이코노믹

[한시산책-채근담]있다? 없다?

炎凉之態 富貴更甚於貧賤 妬忌之心 骨肉尤狠於外人 此處 若不當以冷腸 御以平氣 鮮不日坐煩惱障中矣 - <菜根譚> 前集 135 / 洪自誠

부귀하다고 거들먹이는 자는 없어 업신여겨지는 이보다 염량 곧 이익이 있을 때라야만 움직이고 그에 반하는 것에는 가차 없기로야 도리어 도가 지나치고, 강샘하는 마음이란 살붙이가 남보다 더더욱 비비꼬이니, 이러한 가운데 뱃속 심지로써 속수무책 당하지 않고 스스로 평정치 않는다면, 날로 번뇌 욱죈 자리에서 선명할 수 있으리오.

<해설>

뉴스는 현대의 매체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한 휘발성 소비재다. 문자화 되고 공기와 접촉하는 즉시 사라진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의 부와 귀의 속성에 가장 잘 맞먹는다. 이익에 있을 때라야만 거동하는 광속 스피드와 함께 그에 반하면 가차 없기로야 그 무엇도 당할 재간이 없는 염량 그자체이기도 하다. 아니 세상에 형체로써 있다는 것이 이미 염량일 수 있다. 목에 붙은 숨은 무한히 쉬어도 되는 공짜(?)라면, 식도로 내려가는 것은 값으로 환산할 단위들인 까닭이다. 목이 기도와 식도로 구성된다는 건 놀라운 신비가 아닌가. 공기처럼 겁 없이 들이켜고 내쉬어도 되는 마음과 여전히 죽을 때까지라도 지불해야만 살게 되어있는 구조로 말이다. 그러므로 몸이 있음으로 벌써 염량은 숙명이다. 하니 그 이면 바로 나에게 해당될지도 모를 ‘가차 없이 내버려짐’에도 기어코 항변의 소지는 있는가. 값은 어쩔 수 없이 유형을 더 추구하게 되어 있다. 보이는 모든 것에 값어치를 매기는 수순에서 그것이 몸이라 한들 무슨 대수이겠는가. 그러니 시선 두는 곳마다 도배된 몸의 내외부 수선 광고가 필수덕목인 것도 일변 수긍 아니 될 바도 아니다. 그렇게라도 값이 되는 싶은 것은 그저의 생존을 넘어선 돌출되어 상승하려는 본래적 욕망의 산물이다. 그러나 그 값이 동시에 과연 가치인가는 이젠 거의 별개의 사안이 되어버렸다.
그 연장선상에서 드라마들은 선과 악의 구도 외에는 더 달리 대안이 없어 보인다. 드라마속의 악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치밀하게 대담하고도 악랄해지고, 선은 말만 앞서는 떠벌이에다 선하다는 명분뿐인 종국의 더 치졸한 복수로 맞서는 결국의 해피엔딩의 수순이다. 하지만 그 무엇보다 요즘 사람들은 드라마라는 구실을 통해 맘껏 욕설을 내뱉는 배설을 한다. 기어이 그 악이 무너지는 꼴을 봐야 직성이 풀리겠다는 그는 명백히 선의 축도 아니다. 드라마는 선악을 분간하지만 거기서 사람들이 휩쓸리는 것은 대리전 양상이다. 드라마 속에서는 그렇게도 흔한 회장님이 어느 날 갑자기 출생의 비밀을 통해 바로 나를 상승케 할 초고속 상승 엘리베이터가 되는 꿈을 꾼다. 그러는 와중 내가 제처내야 하는 대상은 멀리 있는 막연한 동경 혹은 멸시 자로써가 아닌 옹기종기한 지척의 군락 속에서다. 가족은 핏줄로써 해체되고 수복하며 끊임없이 발목을 채고 안아주는 이율배반, 염량 하는 한편의 변덕과 비비꼬임의 그 자체로서 있다. 하여 내가 주어진 현실을 박차고 넘어서려할 때 그 앞길을 가장 막아설 가역의 강도는 바로 내 자신이 일생을 두고 공들여 부여한 친밀의 농도에 정비례한다는 것은 지독한 아이러니다.

숨 쉬며 세상에 온 나는 공짜다. 허나 먹어야 사는 삶은 살아있는 부가가치를 줄기차게 요구받는 도전이며 응전이다. 바로 그래서 죽도록 몸에 기거해야만 하는 나는 시시각각 공중분해 되는 휘발성의 소비재로써 있다? 없다? 여기.

/장은조 번역‧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