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믿어주지 않는다 하여 제 홀로 본 바를 꺾지 말며, 저의 뜻대로만 하려 사람의 신중한 견해를 물리치지 말며, 보잘 것 없는 혜택을 챙기려 대의(大義)를 그르치지 말며, 여론을 빌미로 자신을 합리화하지 않느니.
<해설>
자신이 밑줄 그은 데 다른 사람도 밑줄을 긋는다면 그것이 바로 현대의 소셜이라 할 수 있다. 그렇게 하나둘 군중이 모인다면 파워세력이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비록 어느 한 구절이 마음에 든들 책 내용 전체가 개별적 견해와 전적으로 일치할 수 없는데서 소셜의 내부 모순과 이해간 알력이 생긴다. 반대로 쓰여 질 당시는 옳다고 여겼더라도, 그 저자의 시계태엽을 다 감고 보면 조금씩 다르게 혹은 전체가 대체될 소지는 늘 있던 것이고, 그래도 설혹 오래도록 대중이 여전히 밑줄을 긋는다면, 어떤 의미에서 대중은 저자는 이미 마쳐버린 시점에 정체된 채일 수 있다. 게다가 한 평생을 통한 정신적 변화가 반드시 다수긍정체인가도 재고의 대상이다. 대개의 저자는 제대로 한 번 밑줄 그인 개인적이며 대사회적 피크에 머물려는 퇴행적 반복을 거듭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스트셀러든 스테디셀러든 그 저자의 차원에선 알려진 대표작만 보는 것이 타당할 때가 더 많다. 그래도 그것이 단지 한 저작의, 한 센텐스 차원이라면 일생 한 번의 히트로도 죽을 때까지 우려먹을 소지가 된다. 하지만 대중의 입장에서 그런 히트와 피크는 지극히 찰라적이다. 개인적 성향으로 본다면, 죽을 때까지 한 가게만 다니는 고지식이 있는 반면, 내용은 별반 다를 바 없어도 이름과 겉모양의 현란함에 더 이끌리게 되어있는 것이 스마트폰 이미지 혹은 동영상 세대의 대표적 병폐이기도 한 것이다. 굳이 남자들만이 아니라, 인간의 눈이란 보다 쌈빡한 대체물을 쫓는 변덕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또한 드러나 보일 뿐인 말 그대로 개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