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12)]
보다 나은 미래를 열어 줄 열쇠
입신양명의 유교 전통과 ‘恨풀이’로서의 교육은 한국적 특수성
인적자원 밖에 없는 우리에겐 질높은 인재양성은 국가적 과제

그러나 빛이 있으면 어둠이 있는 것처럼 한국 교육의 외형적 성과의 한편에는 그 부작용들이 만만치 않다. 우선은 과열양상의 교육열에서 비롯된 경제적인 문제를 들 수 있다. 2001년 사교육 시장 규모는 10조원 정도였으나 금년에 발표한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총 사교육비가 19조원으로 늘었다. 여기에 해외연수나 유학 등으로 인한 지출 역시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를 감안하면 사교육에 들어가는 비용은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교육 현실은 비단 경제적인 문제만을 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정된 지위를 두고 경쟁하기 때문에 사회적 기회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교육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신분상승에 있게 되기 때문에 그러한 목적을 충족할 수 있는 분야에만 인재와 돈이 몰리게 되고 소위 돈이 되지 않는 학문들, 특히 기초학문들은 질적으로 하락할 수밖에 없다.
더욱 중요한 것은 심리적 악영향이다. 자녀의 자발적 동기에 의해서라기보다는 부모의 뜻에 의해 실시되는 교육은 학생들의 자율성을 심각하게 박탈하며, 줄 세우기 식의 교육과 입시제도는 학생들의 스트레스를 가중한다. 이러한 교육의 피해자는 학생들뿐만이 아니다. 자녀의 교육에 모든 것을 던지는 부모의 삶이 행복할 리 없다. 늘어나는 교육비를 감당하기 위해 초과근무를 하거나 부업을 갖는 일은 예삿일이 되었고 부모가 채워주지 못하는 자녀들의 심리적 공황 상태는 또 다른 문제를 초래하게 된다.
한국 교육현실의 특수성
각계에서는 한국의 교육현실을 심각한 사회문제로 규정하고 그 해결책을 찾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정책의 변화나 입시제도의 개선 등과 같은 방법으로는 현재 한국의 교육현실을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이 지난 과거의 예에서 드러났다. 현재의 교육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문화적 맥락에서 살펴본 교육열 현상은 나라마다의 특수성에 기인한다. 한국은 아시아 국가들 가운데서도 유교적 전통이 강하게 살아 있으며, 특히 가족 관계는 아버지와 아들(父子)을 중심축으로 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부자중심축의 문화는 조상-부모-자녀로 이어지는 영속적인 관계로 이어지는데, 이는 교육의 문제가 어느 한 세대에서 끝나는 일이 아니라 선대에서 후대로 이어지는 목표가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즉 선대에서 고관을 배출하지 못했다면 후대의 자손들은 선대에 이루지 못한 목표를 이루기 위한 의무감마저 갖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자녀를 훌륭하게 키워서 입신양명케 하는 것은 조상에 대한 부모의 의무가 되며 과거의 가족적 전통이 많이 해체된 지금도 이러한 의식에서 자녀를 교육시키는 가정들이 종종 발견된다.
恨풀이로서의 교육
교육열에 영향을 주는 또 다른 원인은 부당감과 차별감(억울함)을 쉽게 경험하고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높은 수준의 평등을 원하는 한국사람들의 심리적 특성에서 비롯된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한국사람들의 평등주의는 ‘자식교육 잘 시켜 신분상승을 꾀해보자는 식’의 개인적 평등주의임을 강조한다. 즉, 남과 차별되기 싫어하는 한국 사람들의 심리는 결국 자식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해소하려는 왜곡된 교육열로 나타나기 쉽다는 것이다.

현재의 부정적 교육현실을 ‘한’으로 볼 수 있는 이유들을 꼽아보자면 우선 학생들의 입장에서 입시 및 성과위주의 교육은 학생들이 자신의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길을 제한한다. 또한 학생들은 부모와 교사의 요구에 의한 외재적 동기에 의해 학습하며 학습에 대한 자기통제, 자율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 또한 학업능력의 서열화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 역시 한으로 경험될 수 있는 조건을 충족한다.
이러한 교육현실은 학부모에게 있어서도 한스러운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한국의 학부모 역시, 한국의 교육 현실과 문화적으로 주어지는 부모로서의 의무감 등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에서 상황에 대한 통제력의 부재를 경험하며, 다른 부모들이나 다른 가정의 교육 여건 혹은 다른 이들의 자녀의 성취와의 비교를 통해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또한 한국의 현실에서 부모인 자신이 자녀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는 인식은 어린 나이의 자녀들을 국외로 내보내는 원인이 되고, 이로 인한 가족의 붕괴 및 해체로 인해 다시 한을 경험하는 한의 악순환이 형성된다.
그러나 이러한 부정적인 현상들이 존재한다고 하여 교육을 포기할 수는 없다. 교육은 개인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 위한 것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또한 교육은 개인 차원에서뿐 아니라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우리나라와 같이 작은 국토와 적은 자원을 가지고도 세계에 우뚝 선 나라들은 훌륭한 인적 자원을 잘 길러내고 활용해 온 나라들임을 알 수 있으며, 따라서 교육을 통한 질 높은 인적 자원의 확보는 한국의 국가적 과제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