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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산책] 전통춤 우수성 위에 거둔 빛나는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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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산책] 전통춤 우수성 위에 거둔 빛나는 미학

시공간에서 다샛앓이로 기억과 미래 동시 품어

[글로벌이코노믹=장석용 문화비평가] 2007년 창립, 그해 6월 제1회 우리춤 대축제가 열린 이래, 금년 국립극장 해오름 극장에서 공연된 우리춤협회(대표 양선희, 세종대 무용과 교수)가 주최한 제8회 우리춤축제(2월 5일~9일)가 성대하게 종료됐다. 춤의 가치를 수용하게끔 하고 양적 충격, 미학적 성취, 체계적 수범을 보인 이번 공연은 리듬을 탄 동물적 감각으로 타 단체가 범접할 수 없는 춤꾼들의 낭만적 수사와 서사적 구성으로 관객의 마음을 휘저어 놓아 전국적으로 화제가 되었다.

▲내삶의고비에서
▲내삶의고비에서
총연출인 안무가 양선희씨는 박식한 지식을 바탕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방대한 양의 춤 선정과 안무가들을 자신의 역량과 설득으로 깔끔하게 마무리하는 수완을 발휘하였다. 저돌적 추진력으로 그녀는 이번 대극장 공연의 성공을 안무가 개개인의 기량으로 돌리면서 커튼콜마저 사양하는 대범을 보였다. 박제당한 편견의 고리를 끊고, 기회와 신념을 관철시킨 노련함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춤 연구에서 실용적 가치로 풍향을 바꾼 작업은 대역사에 해당된다.
이번 춤 축제는 빛과 색의 조합을 통한 춤 미학의 아득한 심연을 자극함으로써 한국창작무의 군집성 모색, 인간문화재와 원로들에 대한 존중, 흐트러지지 않은 고수들의 절제된 새로운 비기 공개, 겸손함이 빚어낸 스탭의 유기적 협동들로 관능과 농염이 차단된 항진에 대한 약속과 이 시대의 바람직한 춤 원형을 보여주겠다는 의지가 담긴 기념무(記念舞)였다. 두려움을 차단, 자신감에 대한 ‘뚜렷한 입장’으로 다양한 조합을 창출한 아이디어는 고도의 실천법칙이다.

▲내삶의고비에서▲내삶의고비에서
▲내삶의고비에서▲내삶의고비에서
전통 무용의 문양을 달고 목멱산으로 간 우리 춤들은 발레의 세련미, 주지적 현대무(現代舞), 대중적 현대 춤의 갈래를 우회한 전통무와 변주된 춤들이 꼿꼿한 지조로 네 개의 긴 뿌리를 내리고 있음을 알린다. 안개처럼 내려앉는 눈발을 마주하며 거칠게 호흡하던 춤은 ‘우리춤’의 시공간에서 닷새앓이로 기억과 미래를 동시에 품었다. ‘설득’과 ‘관용’이라는 진정제가 만들어낸 지식체의 일반화는 양식의 일반화로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했다.

‘옛춤, 숨결 고르다’편(2월 5일(수) 오후 8시): 축하공연은 우수작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레타 리 연출, 이동숙 안무의 오프닝에 해당되는 <화첩기행>은 거대한 원색의 고풍스런 궁중 의상, 한국의 전통을 대표하는 한복 퍼레이드, 변형 한복의 미를 펼친 향연으로 이어 펼쳐질 춤잔치의 화려함을 투사하는 과시의 장(場)이었다. 장엄한 궁중정재 음악, 기품과 절제 위에 자연스레 춤이 가미된다. 화려한 복식의 왕과 왕비, 로얄 패밀리들의 춤, 평화를 기원하는 춤들이 추어지고, 남성 오인무 등 군무의 조합과 진법이 펼쳐진다. 의상과 춤은 합체되고, 시각적으로 독립될 수 있는 영역을 확보한다. 이 사이에 자연스레 김명자의 <검무>가 끼어든다. 여성 5인의 한복패션쇼, 한복판타지가 지속적으로 교차된다. 색감과 조명의 변화가 다채로움을 더욱 부각시킨다. 머플러 휘날리며 등장하는 두 여인, 나비나 새를 형상화하는 모습이다. 한복에 수놓인 꽃들, 여인들의 손길, 미소들에 몰입하다보면 건장한 남성 7인무, 북의 리듬에 맞추어 칼을 든 무사의 자세, 점프, 시선처리 등이 비주얼과 호방한 역동성으로 집중을 유도한다. 이동숙은 패션 쇼 사이에 다양한 춤을 배치하는 구성의 묘를 선보인다. 옛 복식, 머리에 깃을 한 변형, 금빛으로 타오르는 보살형, 머리에 들인 물감, 이국의 풍경은 야자수를 모방한 모자 등으로 전이된다. 원색이 돋보이는 너비감을 선보인 남성 4인의 패션쇼, 다시 5인의 여성은 이집트 풍으로 치장, 이어 5인 여성은 금관으로 치장하고 등장한다. 비주얼의 완성, 마지막으로 양손에 장미, 몸에 달린 두 개의 장미꽃, 느린 흐름으로 적황청의 장미춤으로 화첩기행은 마무리된다. 시각과 음감을 확장시키며 전통은 현대에 살아있고, 옛것은 현대의 자양분임을 밝힌다. 숨 가쁘게 춤으로 치장한 <화첩기행>은 탄성과 경탄을 연출하였다. 주연급 연기자의 화려한 워킹과 자태를 엿보게 하며 궁중과 사대부의 복식을 패션쇼 형식과 춤으로 엮은 이동숙 안무의 신작 <화첩기행>(이동숙 무용단, 김문숙(서울춤아카데미), 김명자 무용단, 이용덕, 조성란)이 선보인 판타지이다. 2부에 공연된 우수작 네 편, 탄식의 제에 얽힌 김희정 안무의 <단(壇)>, 모자간의 추억 속에 사모의 정을 그린 박소림 안무의 <내삶의 고비에서>, 일제강점기 일본의 성노리게가된 여성을 감동적으로 그린 안정훈 안무의 <내 이름은 김복순>, 연의 소중함을 묘사한 김호은 안무의 <인연(因緣)>은 창작무용으로서 차세대 안무가들의 자신감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내이름은김복순▲내이름은김복순
▲내이름은김복순▲내이름은김복순
‘열락의 하연’ (悅樂의 賀宴)’편(2월 6일(목) 오후 8시): 전통무용의 거목, 김백봉(88) 무용가의 헌정무대, 전통무의 원형보존과 대중성 향상을 위해 평생을 춤에 봉헌했던 김선생, 그 주변의 후배들, 경희대 출신들을 주축으로 한 후학들은 혼신의 힘을 보탰다. 예술총감독 김말애 경희대 명예교수는 어린 제자들과 ‘화관무’를 같이 춤추면서 감동의 무대를 마련했다. 해설을 맡은 탤런트 채시라는 김백봉 선생과의 추억과 일화를 회고하면서 집중도를 끌어 올렸다. 프롤로그 소원은 ‘스승처럼 되고 싶었고, 스승으로부터 칭찬받고 싶었던’ 김백봉에 대한 헌사와 헌무가 이어진다. 술 취한 초립동을 보듯 희극성을 띄며 잔치 분위기를 연기한 양성옥의 독무 <에헤야노아라>로 부터 시작된 춤은 안병헌의 <격>(검무)에서는 칼춤에 대한 추억, 비장한 각오, 의미심장한 미소, 무사적 기품이 과거의 흑백 영상과의 대비로 고증, 재현의 묘미를 보여주었고, <청명심수> 다이제스트 판에서 권금향, 안병헌, 임성옥, 김효순은 가야금 리듬에 맞추어 느긋하게 심도감을 높여가며 분홍빛 정열로 각각의 개성을 드러내 보였다. 배경 막의 이미지는 가을날의 나뭇잎을 보여준다. 대금이 이끄는 선율에 취해있다면 보면 천으로 연결된 전환, 성균관대 전은자무용단의 <선의유동> 살풀이춤의 군무이다. 백색발레에 견주어지는 한국의 춤, 세찬 바람을 이기고 거문고보다 강한 숨결로 눈꽃으로 태어난 이 춤은 십육 인의 집체묘밀르 보여준다. 강강술래 포맷에 이르면 눈꽃은 찬연히 빛난다. 지희영의 <비나리>는 ‘어머니의 죽음’에 대한 명상을 명제로 두고 있다. 영산제를 모티브로한 이 춤은 상여소리에 오버랩 되는 백색 이미지의 고운 남성 춤결로 감동을 주었다. 강원대 김경회무용단의 <광란의 제단>은 군무로 즐기는 코리언 플라멩코 무당춤이다. 강열한 인상으로 한국춤의 깊숙한 부문을 차지하며 예술로 승화되었음을 확인하는 계기를 만들어 준 작품이다. 안귀호, 나용주의 이인무 <녹음방초>는 꽃피는 봄날의 시골, 처녀 총각의 사랑의 모습을 장난기와 희극성을 섞어 구성한 작품으로 인기를 끈 작품이다. 성균관대 전은자무용단의 <여인화사>는 전은자와 열 한명의 제자가 완전한 조화를 이루어 타악 장고와 춤이 공명효과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도구임을 보여준다. 경희대 김말애무용단은 보라와 주황으로 주의상의 색조로 삼고 김백봉의 예술의 핵심적 요체인 <부채춤>을 선보임으로써 김말애와 열여섯 제자는 정중하게 스승에 대한 예를 표했다. 이어 정은혜(대전시립무용단 예술감독, 충남대 교수)는 <화관무>로 김백봉 창작무의 백미를 선보였다. 호화롭고, 위엄을 갖춘 복식, 여기에 걸맞은 춤과 영상은 황홀로 가는 경이로운 분위기를 연출하였다. 공연이 끝나고 김백봉 선생에 대한 기립박수로 미수를 맞는 노 춤꾼에 대한 ‘열락의 하연’은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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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전통, 춤 복원에 지평을 열다’편(2월 8일(토) 오후 6시): ‘명작명무전’은 아홉 명의 홀춤이 선보였다. 정재만 <훈령무>를 아들 정용진(춤다솜무용단)이 재안무한 이 작품은 열두명의 병졸과 상관의 제식훈련, 조선말의 군사들의 훈련장면을 박진감과 경쾌함을 사물놀이 리듬에 담아 잘 표현한 작품이다. 원필녀의 <비상>은 덧배기 춤을 기본으로 하고, 새의 비상을 모티브로한 선비의 기품과 풍류의 한량을 여성이 추어낸 작품이다. 최정임의 <대궐>은 궁녀의 희로애락을 독무로 구성한 작품이다. 국립무용단 수석을 지낸 그녀가 궁중의 품위와 내밀한 궁녀의 심리를 능수능란하게 추어낸 작품이다. 김향금의 <황혼(송범류)>은 박성옥의 철가금 산조에 맞추어 노을 무렵 황혼의 이미지를 인생과 대비시켜 극대화 시킨 작품이다. 홍금산와 손병우의 <사랑가>는 판소리 ‘춘향가’중 ‘사랑가’에 집중, 무용화한 작품이다. 두 사람의 앙상블이 고수의 자태를 소지하고 있다. 김정학의 <신노심불노>는 ‘늙어가지만 마음은 늙지 않았다’는 뜻으로 조택원에 의해 초연된 이래 조흥동, 김정학으로 전수된 작품이다. 해학적 요소에 맞게 출연자중 비교적 나이가 어린(50대) 김정학이 노인역을 맡아 흥미를 끈 작품이다. 정양자의 <영남입춤>은 김해랑의 동래아류, 덧배기 춤의 춤본을 바탕으로 그녀가 재구성하여 추는 춤이다. 특유의 어깨춤 추임새가 돋보이며, 노련한 정양자 춤꾼의 내공이 돋보인 작품이다. 배정혜의 <교태>는 그녀의 춤 수사의 일면을 보여준다. 무당춤을 기본으로 일흔에 보인 소녀 연기, 나이를 초월한 연기 스펙트럼, 디테일한 연기기, 관객심리를 꿰뚫는 심리분석 등 완벽한 춤꾼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김숙자의 <산조(김진걸류)>는 진청 벨벳의 심오함만큼이나 가야금 산조에 실은 춤사위는 마음의 흐름을 따라 차분하게 인생의 심연을 표현한다. 국수호 <남무> 는 춤인생 50년에서 자신 있게 자신을 보여주는 춤의 첫 번째로 꼽는다. 남도의 계면조 가락에 실린 그의 연기력은 춤꾼일 수밖에 없는 이유를 설명한다. 이어 독무의 단조로움을 깨는 김말애의 <부채춤(김백봉류)>이 다시 등장한다. 이 작품들은 춤 복원의 진정한 의미새김과 춤 원형, 춤갈이의 비교무대를 선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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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갖추고 도로써 정진하고 이끌어간다’편(2월 9일(일) 오후 6시): ‘명작명무전’에서 여섯명의 경기검무보존회 멤버와 경기검무 보유자 김근희가 선보인 <경기검무>는 한성준, 강선영을 잇는 전통의 오묘함과 예술성을 드높인 공연이었다. 정재연구회 예술감독 김영숙의 <종묘제례일무 中 전폐희문>는 유네스코지정 세계무형유산걸작의 팔일무의 깊은 맛을 보여준 작품이다. 구음, 진법, 악기의 앙상블이 일체화된 ‘느림의 미학’을 보여준 작품이다. <호남살풀이춤> 예능보유자 최선은 무무(巫舞)의 최상을 고운 선의 부드러움과 춤사위에 섞인 격정을 추어냄으로써 황홀에 빠지게 하는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동래고무 예능보유자 김온경의 <산조춤>은 우조, 평조, 계면조의 가야금 선율에 춤가락을 얹어 진양에서 중모리에 이르는 장단에 따른 현란한 춤수사가 돋보인 작품이다. 태평무 전수조교 양성옥은 강선영류 <태평무>를 선보임으로써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형식의 원형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경기 도당굿 기본으로 자진도살풀이에 이르는 음악 구성도 흥미롭다. 승무 예능보유자 정재만의 <허튼살풀이>는 살풀이춤의 경계를 허문 자유로운 섬세한 춤이었다. 사물, 피리, 대금, 아쟁, 가야금은 탁월한 춤기교와 더불어 신명을 배가시킨 요소였다. 우봉 이매방류 춤 보존회 회장 김명자의 이매방류 <살품이춤>은 춤원형이 보여줄 수 있는 최상의 춤사위를 선사하였다. 한량무 보유자 조흥동의 <한량무>는 선비의 인생무상을 여성적 섬세함으로 절제된 품격과 자태를 보여준 작품이다. 한량무로 널리 알려진 김진홍의 <승무>는 깊이감과 내밀한 연기가 차별화된다. 장단, 리듬감을 창출해내는 노무객(老舞客)이 남긴 인상, 법고 위에 승복을 걸고 합장하는 장면이다. 국립무용단 수석단원 출신 이화숙의 <무당춤>(한누리무용단) 군무는 솔로들의 연기경연에서 집중해있던 관객들이 환호할 정도로 피날레를 장식하기에 충분한 운용을 보여주었다. 왕무당, 중무당, 소무당이 ‘청마의 해’에 악운을 물리치는 춤은 종교적 의미를 떠나 화려한 예술로 승화되었다.

▲인연▲인연▲인연▲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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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호흡으로 다가온 한국전통무용 중요무형문화재 선정작, 독립적으로 공연될 수 있는 우수초대작, 다시 보기 힘든 명작, 명무 퍼레이드는 우리춤의 우수한 예술성과 발전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라이브 음악사용, 다양한 조명 플랜, 스토리 있는 이음새, 효율적 영상 사용 등이 우리 춤의 세련미에 더욱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관객들이 즐거워하고 공감할 수 있었던 제8회 우리춤축제는 우리 전통무용의 진정한 가치를 일깨워준 소중한 공연이었다.

/장석용 문화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