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장들이 J.P 모건의 회의실에 모인다. 주식 매수를 결의하고 증시안정화 노력을 천명하자 일단 시장은 진정된다. 평균주가는 크게 하락하지 않았는데 거래량이 뉴욕 증권거래소 사상 일일 최대치인 1500만주에 달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검은 목요일은 전조에 불과했다. 주말이 되자 증권사들이 모종의 조치를 논의한다. 직원들이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온갖 자료들을 폐기했고 마진론을 끌어다쓴 고객들에게 상환을 요구하는 전보를 준비한다. 월요일인 10월28일 재앙은 본격화된다. 다우지수가 260으로 주저앉고 콜시장에서는 외국 은행들과 기업들이 긴급하게 대출을 회수한다. 화요일인 10월29일에는 장이 열리자마자 마진론 상환을 요구받은 사람들이 상환자금 마련을 위해 보유주식을 투매한다. 공황의 검은 그림자가 뉴욕 증권거래소를 휩쓴다. 어디선가 많이 보던 그 장면처럼 거래소 직원들은 머리를 부여잡은채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고 브로커들은 넋을 잃은채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서로 부딪치곤 했다.
때마침 뉴욕 증권거래소 설비들마저 고장을 일으킨다.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대서양 해저 케이블이 불통되고 주가표시기가 고장을 일으켰으며 전화는 통화량 폭증으로 불통된다. 전보도 증권사들의 마진론 상환요구 폭주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전보회사가 택시를 임대해 전보를 전달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거래가 끝나고 2시간 만에 주가표시판이 작동되지만 표시된 주가지수는 투자자들을 재차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다우지수는 30p 폭락했고 거래량은 1650만주에 달했다. 혹자는 이날을 '백만장자가 참수당한 날'이라고 불렀다.
대공황, 즉 Great Depression은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다. 산업화된 서방국가들이 경험한 가장 길고 심한 공황이다. 발단은 미국이었으나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생산 위축과 가혹한 실업,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공감한다. 대공황의 참담함을 잘 나타내는 통계는 실업률이다. 미국의 경우 1929년 3% 수준이었던 실업률이 1933년 25%까지 올라간다. 농업 부문을 제외한 실업률은 무려 37%였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도시인이 세 명 중 한 명이라니 정말 참담한 상황이었다. 아무도 예측 못했다. 대부분 경제학자, 정치가, 기업가들은 대공황이 시작된 1929년 초반에도 미국이 번영의 큰 길 위에 서있다고 믿었다. 앞서 말했던 어빙 피셔는 1929년 “미국은 견고한 번영의 길에서 전진하고 있다”고 망언을 했고 1928년 대통령 당선자 후버는 수락 연설에서 “미국의 번영은 무한히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GM 최고경영자 라스코브는 “누구나 주식시장에 주당 15달러를 투자하면 부자가 된다”고 했다. 당시 미국 노동자의 평균 주급이 17~22달러 수준이었다.
하지만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이 믿음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29년10월24일 ‘암흑의 목요일’(Black Thursday)을 거쳐 10월29일 ‘암흑의 화요일’이라는 이름의 주식시장 대붕괴가 시작됐다. 10월29일부터 11월13일의 2주동안 증시에서 소멸된 주식 가치는 당시 돈으로 무려 300억달러다. 1차대전에 미국이 지출한 전비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주식시장 붕괴로 끝난 게 아니다. 수요가 감소했다. 소비자의 소비재 구입이나 기업 신규투자는 위축됐다. 주식시장의 붕괴와 대공황이 사실은 별개의 문제임에도 주식시장 붕괴가 생산과 고용의 감소를 초래했고 대공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주가 폭락으로 인한 부의 감소가 상대적으로 그리 크지 않은데도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안함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말하듯 경제는 심리다. 경제 변화에는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다. 경기 침체가 예상되면 기업은 고용을 줄이고 투자보다는 현금자산을 보유하려 한다. 소비자들도 불황이 예상되면 소비를 억제하고 저축을 늘린다. 지출 억제는 총수요 감소와 경기 위축으로 이어진다. 결국 경제 주체들의 예상과 불안감, 우려가 자기실현(self–realization)되는 것이다. 불황의 예상이 불황을 초래하고, 작은 불황이 불황을 심화시켜 공황으로까지 간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불황은 이웃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고 공황은 자신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라고 했다. 공황은 자산과 신용의 거품 붕괴와 이에 따른 신용경색과 물가 하락이 원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미래 성장 잠재력의 훼손이다. 신규 투자가 실현되지 않고 생산에 필요한 장비의 생산이 위축된다.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못해 새로운 발명이나 기술혁신이 이뤄지지 못한다. 기업이 파산한다. 파산 위험에 노출되는 취약점에 중소기업에 있지만 대기업도 자유롭지 못하다. 생산이 위축되면 경제는 생산 가능한 상품과 서비스의 손실로 서민들의 기본적인 먹고 입는 문제까지도 위협한다. 생산 위축으로 일자리는 크게 줄어든다. 미국 의회의 1976년 보고서에 의하면 1%의 지속적 실업률은 자살률을 4.1%나 증가시킨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본래의 탐욕을 내려놓고 자산을 재분배하고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이라는 큰 비극을 겪은 뒤에서야 (비록 매우 잠시였지만) 비로소 가능했다. 이런 비극을 재연하지 않고도 자산을 재분배하게 만드는 것이 깨어있는 민주시민의 역량이다.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던 진보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after shock)라는 책에서 대공황의 원인을 ‘소수의 부(富) 독점과 그에 따른 유효 수요 부족’이라고 주장했다. 대공황 당시 미국 국민총소득 중 상위 1%가 가져가는 몫이 23%를 넘었는데 그가 책을 쓰던 당시에도 이 상황이 별반 바뀌지 않았다며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해 경고했다. 문제는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현실도 당시 상황과, 라이시가 일갈하던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돈으로 다른 모든 소중한 것들의 가치까지 재단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라이시의 경고는 아프리만큼 시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