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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맡겨본 경제에 공황의 검은 그림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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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 맡겨본 경제에 공황의 검은 그림자가...

[왁자지껄 경제학]⑤ 대공황(Great Depression)

[글로벌이코노믹=김종길 기자]1929년 9월3일 미국 다우존스지수가 연중 최고점을 기록했고 하루 뒤인 9월4일 투자자문사 대표 로저 배브슨이 연례 경제인회의에 나타나 입을 연다. 그리고는 한창 떼부자가 될 꿈에 부풀어 있는 사람들에게는 '미친 소리'로 밖에 들리지 않을 비관론을 늘어놓는다. "증시가 붕괴한다" "공장들이 문을 닫고 악순환이 되풀이된다" "가혹한 경제공황이 올 것이다" 등등. 언론은 배브슨을 '손실의 전령' '신경과민증 환자'라며 비난했고 증권가는 배브슨이 2년 전에도 같은 말을 했다며 'Mr Doom'(비관론자)으로 몰아세웠다. 경제학사에 그 이름이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어빙 피셔도 그 비난의 대열에 섰다. 상아탑 책상머리에 앉아 온갖 수학이론과 수사를 동원해 당시 주가 수준은 정당하고 파국의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그 경제학 대가(大家)보다는 시장이 훨씬 정직했다. 급격하게 주가가 빠지면서 일확천금을 노리던 사람들을 포함한 투자자들의 힘도 함께 빠진다. 투신사들이 6억달러 규모의 신주 발행으로 투자자들의 관심을 돌려보려 했지만 주가는 여전히 약세다. 이럴 때면 시장은 당시엔 이상하게 보이지만 결국은 전형적인 어떤 조짐을 나타낸다. 악재에 반응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9월 중순 바다 건너 영국의 거대기업 클래런스 하틀리가 사기사건으로 파산하자 시장이 요동친다. 영란은행이 이자율을 올렸고 영국 투자자들이 앞다퉈 미국 투신사 주식을 팔아치우며 원금 회수에 들어간다. 10월4일 제너럴모터스 대표 앨프레드 슬로언이 차량 판매가 급감한다며 '팽창의 종말'을 선언한다. 10월11일에는 메사추세츠 공공사업국이 주가가 너무 올라 액면가를 4분의 1로 분할하겠다는 한 회사의 요청을 거절한다. 이미 9월초부터 강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던 윈스턴 처칠이 10월24일 월스트리트를 걷다가 낯선 사람의 손에 이끌려 뉴욕 증권거래소 전시장에 들어섰다. 후에 '검은 목요일'이라고 불린 그날이다. 증시는 대폭락한다. 자금시장 경색도 없었고 은행이나 증권사, 기업이 무너지지도 않았는데도 증시는 공황 상태에 빠졌다. 개장 30분 만에 지수가 10% 폭락했다. 처칠은 이 역사적 순간을 우연히 목격한 것이다.


은행장들이 J.P 모건의 회의실에 모인다. 주식 매수를 결의하고 증시안정화 노력을 천명하자 일단 시장은 진정된다. 평균주가는 크게 하락하지 않았는데 거래량이 뉴욕 증권거래소 사상 일일 최대치인 1500만주에 달했다는 점이 문제였다. 불길했다. 아니나 다를까 검은 목요일은 전조에 불과했다. 주말이 되자 증권사들이 모종의 조치를 논의한다. 직원들이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면서 온갖 자료들을 폐기했고 마진론을 끌어다쓴 고객들에게 상환을 요구하는 전보를 준비한다. 월요일인 10월28일 재앙은 본격화된다. 다우지수가 260으로 주저앉고 콜시장에서는 외국 은행들과 기업들이 긴급하게 대출을 회수한다. 화요일인 10월29일에는 장이 열리자마자 마진론 상환을 요구받은 사람들이 상환자금 마련을 위해 보유주식을 투매한다. 공황의 검은 그림자가 뉴욕 증권거래소를 휩쓴다. 어디선가 많이 보던 그 장면처럼 거래소 직원들은 머리를 부여잡은채 미친 사람처럼 소리를 질렀고 브로커들은 넋을 잃은채 이리 저리 뛰어다니며 서로 부딪치곤 했다.


때마침 뉴욕 증권거래소 설비들마저 고장을 일으킨다.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대서양 해저 케이블이 불통되고 주가표시기가 고장을 일으켰으며 전화는 통화량 폭증으로 불통된다. 전보도 증권사들의 마진론 상환요구 폭주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 전보회사가 택시를 임대해 전보를 전달하는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거래가 끝나고 2시간 만에 주가표시판이 작동되지만 표시된 주가지수는 투자자들을 재차 공황 상태로 몰아넣었다. 다우지수는 30p 폭락했고 거래량은 1650만주에 달했다. 혹자는 이날을 '백만장자가 참수당한 날'이라고 불렀다.



대공황, 즉 Great Depression은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한 일종의 경고였다. 산업화된 서방국가들이 경험한 가장 길고 심한 공황이다. 발단은 미국이었으나 지구상의 모든 국가들이 생산 위축과 가혹한 실업, 심각한 디플레이션을 공감한다. 대공황의 참담함을 잘 나타내는 통계는 실업률이다. 미국의 경우 1929년 3% 수준이었던 실업률이 1933년 25%까지 올라간다. 농업 부문을 제외한 실업률은 무려 37%였다. 일자리를 찾지 못한 도시인이 세 명 중 한 명이라니 정말 참담한 상황이었다. 아무도 예측 못했다. 대부분 경제학자, 정치가, 기업가들은 대공황이 시작된 1929년 초반에도 미국이 번영의 큰 길 위에 서있다고 믿었다. 앞서 말했던 어빙 피셔는 1929년 “미국은 견고한 번영의 길에서 전진하고 있다”고 망언을 했고 1928년 대통령 당선자 후버는 수락 연설에서 “미국의 번영은 무한히 지속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GM 최고경영자 라스코브는 “누구나 주식시장에 주당 15달러를 투자하면 부자가 된다”고 했다. 당시 미국 노동자의 평균 주급이 17~22달러 수준이었다.


이같은 장미빛 전망은 당시 주식시장이 엄청난 호황을 구가했기에 가능했다. 1929년 주가는 1921년 대비 무려 4배나 높아져 있었고 기업이 높은 이윤을 내면서 주식배당금도 상승했다. 고임금의 혜택으로 노동자는 저축의 여력이 생겼으며 저축된 돈 일부는 주식에 투자됐다. 낮은 이자율로 인해 소비자는 은행에서 쉽게 돈을 차입했고 그 돈으로 자동차나 주택을 사고 심지어 주식투자에도 지출했다. 정부의 규제는 아예 없었다. 1929년9월에 접어들면서 주식시장이 출렁대기 시작했지만 투자분석가와 브로커들은 주식시장의 요동을 ‘일시적 현상’이라며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는 데 급급했다. 공산품 판매는 저조했고 완공된 공장들도 수급조절이 어려웠음에도 주가지수는 이를 전혀 반영하지 않고 오로지 상승세를 보였다. 대부분 경제학자들은 애덤 스미스類의 ‘자율적으로 조정되는 시장경제’를 주장했고 세상도 이를 신봉했다.



하지만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해줄 것이라는 이 믿음이 깨지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1929년10월24일 ‘암흑의 목요일’(Black Thursday)을 거쳐 10월29일 ‘암흑의 화요일’이라는 이름의 주식시장 대붕괴가 시작됐다. 10월29일부터 11월13일의 2주동안 증시에서 소멸된 주식 가치는 당시 돈으로 무려 300억달러다. 1차대전에 미국이 지출한 전비에 해당되는 금액이다. 주식시장 붕괴로 끝난 게 아니다. 수요가 감소했다. 소비자의 소비재 구입이나 기업 신규투자는 위축됐다. 주식시장의 붕괴와 대공황이 사실은 별개의 문제임에도 주식시장 붕괴가 생산과 고용의 감소를 초래했고 대공황으로 이어진 것이다. 주가 폭락으로 인한 부의 감소가 상대적으로 그리 크지 않은데도 소비자들이 느끼는 불안함이 상황을 더 악화시킨 것이다.

이제는 누구나 말하듯 경제는 심리다. 경제 변화에는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다. 경기 침체가 예상되면 기업은 고용을 줄이고 투자보다는 현금자산을 보유하려 한다. 소비자들도 불황이 예상되면 소비를 억제하고 저축을 늘린다. 지출 억제는 총수요 감소와 경기 위축으로 이어진다. 결국 경제 주체들의 예상과 불안감, 우려가 자기실현(self–realization)되는 것이다. 불황의 예상이 불황을 초래하고, 작은 불황이 불황을 심화시켜 공황으로까지 간다.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불황은 이웃 사람들이 일자리를 잃은 것이고 공황은 자신이 일자리를 잃는 것”이라고 했다. 공황은 자산과 신용의 거품 붕괴와 이에 따른 신용경색과 물가 하락이 원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미래 성장 잠재력의 훼손이다. 신규 투자가 실현되지 않고 생산에 필요한 장비의 생산이 위축된다. 연구개발에 투자하지 못해 새로운 발명이나 기술혁신이 이뤄지지 못한다. 기업이 파산한다. 파산 위험에 노출되는 취약점에 중소기업에 있지만 대기업도 자유롭지 못하다. 생산이 위축되면 경제는 생산 가능한 상품과 서비스의 손실로 서민들의 기본적인 먹고 입는 문제까지도 위협한다. 생산 위축으로 일자리는 크게 줄어든다. 미국 의회의 1976년 보고서에 의하면 1%의 지속적 실업률은 자살률을 4.1%나 증가시킨다고 한다.



자본주의가 본래의 탐욕을 내려놓고 자산을 재분배하고 부의 불평등을 해소하는 일은 두 번의 세계대전과 대공황이라는 큰 비극을 겪은 뒤에서야 (비록 매우 잠시였지만) 비로소 가능했다. 이런 비극을 재연하지 않고도 자산을 재분배하게 만드는 것이 깨어있는 민주시민의 역량이다. 노동부 장관을 역임했던 진보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after shock)라는 책에서 대공황의 원인을 ‘소수의 부(富) 독점과 그에 따른 유효 수요 부족’이라고 주장했다. 대공황 당시 미국 국민총소득 중 상위 1%가 가져가는 몫이 23%를 넘었는데 그가 책을 쓰던 당시에도 이 상황이 별반 바뀌지 않았다며 자본주의의 탐욕에 대해 경고했다. 문제는 지금 우리 앞에 놓여있는 현실도 당시 상황과, 라이시가 일갈하던 그때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돈으로 다른 모든 소중한 것들의 가치까지 재단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라이시의 경고는 아프리만큼 시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