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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佛 정부, 존 로의 사탕발림에 놀아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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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佛 정부, 존 로의 사탕발림에 놀아나다

[왁자지껄 경제학]⑧ 미시시피 버블

[글로벌이코노믹=김종길 기자] 우리 사회에는 본인의 귀책이나 태만이 아닌 다른 환경적 이유로 인해 출발선에서 뒤쳐졌거나 아님 아예 출발선에도 서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그런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고 도전하려다 실패한 사람들에게 패자부활전을 열어주는 것이 사람사는 세상이고 그것이 곧 경제의 역할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경제의 주체인 인간 그 자체에 시선을 향하려 하지 않는다면 경제학은 '비겁한 미래학'에 머물 것이다. 경제학의 역사에는 소위 엄청난 대사건들이 있었다. 그 사건들은 당시에는 나방의 작은 날갯짓에 불과했지만 결과적으로 경제학의, 아니 인류의 삶의 모습을 바꿔놓은 엄청난 태풍이 되었다. 글로벌이코노믹은 '왁자지껄 경제학'을 통해 그 우행(愚行) 혹은 선택의 과정들을 반추(反芻)해가며 출구없는 탐욕의 시대, 우리의 모습을 반성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자본의 시대를 거쳐온 인류가 겪었던 수 차례의 대형 금융위기는 사실 우연을 가장한 끔찍하고 필연적인 악순환의 역사였다. 어떤 면에서 경기 호황은 거품으로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 부동산과 주식시장의 투기, 유명무실한 규제와 거품 창조에 일조했던 금융 신상품과 금융혁신이라는 구호들은 거품이 꺼지면서 자본시장의 시스템 붕괴와 투자 혹은 투기 주체들의 경제적 몰락, 나아가 전 세계적 재앙을 가져왔다. 최근의 경제위기가 수십 년 전 대재앙과 끔찍할 정도로 유사하고 그 재앙은 수 백년 전에 있었던, 당시 사회를 왁자지껄하게 했던 경제사의 대사건들과 너무도 닮았다는 사실은 단지 평행이론類의 우연이 아니다. 과거 대공황을 불러왔던 것과 똑같은 원인과 과정이 반복되면서 현 시대의 불신과 불황을 가져오고 있는 것이다. 탐욕이라는 이름으로 말이다.


1710년대 후반 프랑스 경제를 아예 파탄낼뻔한 대사건이다. 경제학사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두는 대형 이슈다. 당시 프랑스 왕 루이14세는 '태양왕'이라 불리며 72년간 프랑스를 다스리고 군사·정치 강국으로 만들었지만 재정은 고갈 일보 직전이었다. 1715년 정부 부채는 30억리브르에 달했는데 당시 1년 재정수입은 1억6500만리브르에 불과했다. 당시 프랑스 정부 부채는 30년 사이 20배 이상 늘었고 리브르 가치는 계속 하락했다. 정부 채무의 급증과 통화 조작으로 리브르 가치가 불안해지자 1709년 금과 은을 감추거나 해외로 유출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당연히 국고가 텅텅 비었다.

스코틀랜드 사람 존 로가 꾀를 낸다. 당장 금은보화가 없더라도 국가는 미래 수익을 근거로 화폐를 발행해 국고를 채울 수 있다고 프랑스에 주장한 것이다. 18세기판 ABS(Asset Based Securities, 자산유동화증권)라고나 할까? 미래의 돈으로 나라의 상업과 공업을 진흥시켜 더 큰 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장담했다. 처음 등장한, 현재와 미래라는 시간을 통일한 혁신적 이론이었고 이론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루이지애나는 약속의 땅이었고 신대륙 개발은 프랑스에게 많은 이익을 돌려준다는, 상당히 확률 높은 투자였다. 뒤를 이은 루이 15세의 섭정 오를레앙公 필리프 2세는 난국 타개를 위해 존 로를 금융 책임자로 임명한다. 게다가 애팔래치아산맥 미시시피강에서 로키산맥에 이르는 광활한 루이지애나주의 대외무역 독점권과 조세징수권, 심지어 주화주조독점권까지 제공한다. 존 로는 1717년 미시시피라는 이름의 회사를 설립하고 사업 목적 1번에 ‘루이지애나 금광 개발’을 기입한다.

존 로는 미시시피 회사를 확장해 세네갈과 중국의 무역까지도 장악하는 대인도 회사를 만들었고 엄청난 투자자금을 끌어모은다. 1716년 사설은행을 세우고 지폐 사용을 시작한다. 사적 은행이지만 정부의 어음과 정부가 인정하는 은행권이 은행 자산의 4분의 3이었다. 망조(亡兆)가 들면 비정상적인 것이 아무 장애 없이 정상으로 대접받는다. 1718년 그 은행이 아예 공식적으로 왕립은행이 된다. 존 로가 발행했던 은행권들이 이제 루이 15세의 승인을 받은 걸로 된 것이다. 이미 지폐처럼 유통되던 미시시피 회사 주식에 대한 투기 바람이 분다. 인플레이션이 고조된다. 미시시피가 사실상 국가 회사이었기 때문에 미시시피 주식은 사실상 정부 부채나 다름 없었다.

▲존로,희대의사기꾼인가?화폐경제의선각자인가?
▲존로,희대의사기꾼인가?화폐경제의선각자인가?


1720년 망조의 끝이 보인다. 왕립은행과 미시시피가 아예 통합된 것이다. 미시시피 회사의 주식은 실제 가치와 무관하게 계속 투기에 이용되고 있었지만 국가 채무로 인해 이로 인한 위기가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회사 주식이 너무 비싸지면 실제 가치와 가격을 맞추기 위해 새 주식들을 또 발행했다. 500리브르 주식이 1720년 초반 1만8000 리브르까지 올랐다. 그해 프랑스 콩티 왕자가 미시시피 지분을 팔아 금은으로 바꿨다는 소문이 돌자 현금을 금으로 전환하려는 열풍이 불고 프랑스 중앙은행 금고가 바닥난다. 1720년 여름부터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해 1721년까지 시가 총액이 97% 하락한다. 미시시피는 파국을, 투자자들은 파멸을 맞았다.
그동안 [왁자지껄 경제학]을 통해 소개했던 몇 가지 투기 사건들 속에는 한결같이 비이성적 낙관주의와 효력없는 규제, 다단계 금융시스템, 금융혁신이라는 과열된 구호, 자산의 거품, 금융권의 도덕적 해이 등이 공통적으로 발견된다. 미시시피 포말 사건에도 그런 것들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존 로가 장영자나 조희팔에 비견할 희대의 사기꾼처럼 보이겠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분명 그를 거품경제의 주범이라며 비난했던 시절이 상당하지만 케인즈 이후 경제학자들은 그를 상당히 높게 평가한다. 존 로가 ‘金이 곧 富’라는 중금주의의 논리에서 벗어나 화폐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었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는 것이다.

또한 그는 화폐란 국가의 부채이며 따라서 돈 찍는 것은 빚을 내는 것이고 당연히 그 빚을 갚을 능력과 비례한다는 것을 간파한 사람이다. 정부에 대한 도덕적 신뢰가 무너지고 국가가 징세 능력이 없는데도 화폐를 남발하면 대원군의 당백전처럼 되버린다는 사실을 명확히 깨달은 사람이기도 하다. 국가 부채로서의 화폐 발행 또한 당연히 국가 수입 즉 국가의 징수 능력에 비례한다. 화폐 발행으로 야기되는 인플레이션은 정부가 인민을 갈취하는 것이었다. 국채 발행에 의한 경기부양은 도적떼들에게 후대의 고혈을 빨리게 하는 책임 회피다. 이것이 무능한 정부와 탐욕한 지배계급을 박멸하지 못한 모든 나라의 고민이었으며 동시에 재상 존 로우의 딜레마이기도 했다.

그의 저서 <화폐와 교역>은 ‘어떤 방식으로 국가 경제의 혈액이라 할수 있는 화폐를 공급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존 로 자신이 내린 답들로 구성돼있다. 최근 금융위기를 맞아 그가 더욱 ‘버블경제의 아버지’처럼 묘사되는 일이 잦아지고는 있지만 300년이 지난 지금도 그가 제기했던 문제들은 문제로 인정받는다는 사실 외에는 별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가파산을 피하기 위해 또 빚을 져야 하나? 그러나 빚이란 금융업자들의 혹독한 고리채에 국가를 방치하는 것이다. 당시 프랑스 정부는 페르미에라는 징세대리인에게 세정을 위탁했다. 그들은 국가에 세금을 대납하고 국민들에게는 직접 이자를 붙여 세금을 징수했다. 마치 19C 청나라를 지배한 서양의 해관(海關)과 유사했다. 국가의 징세권이 민간에 넘어가자 국가의 몰락 속도는 빨라졌다. 이 상황에서 세금을 더 걷거나 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국고가 아니라 금융업자들의 배를 채워주는 것이다.

문제는 돈만이 아니었다. 그렇게 발행된 화폐(즉 국가에 이전된 부)가 생산적 투자에 쓰이지 못하고 신대륙의 일확천금을 향해 생산적 지점이 아닌 투기적 지점으로 흘러들어갔다는 것이다. 예상했겠지만 그 결과는 급속한 거품의 붕괴였다. 순진한 백성들과 귀족들 모두 탐욕에 희생된다. 미시시피 버블은 프랑스 식민지였던 루이지애나의 개발과 무역독점권을 통해 얻게 될 부에 대한 환상에서 빚어진 시장의 광기일 수도, 잘못된 가정에 기초해 빚어진 실수일 수도 있다.



존 로의 계획은 결과적으로 부실회사 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하면, 채권자들이 희생해주고(?) 부실회사의 채무 걱정은 사라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파산 직전 프랑스 정부가 발행한 부실 채권이 정부와 한몸인 인도회사(국왕이 대주주)의 주식으로 교묘하게 전환됐다. 존 로의 계획은 결국 루아얄은행(왕립은행)의 은행권과 인도회사 주식의 가치가 동반 급락하는 것으로 끝났다. 그 결과 국채 투자자들의 손에는 10분의 1 토막이 난 주식만 남았지만 정부는 국채 부담에서 벗어났다. 국채 투자자들과 인플레이션으로 실질소득이 줄어든 사람들이 정부의 엄청난 채무를 대신 갚아준 셈이다.

미시시피 사건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은 화폐든 국채든 빚을 내서 경제의 목숨을 부지하려고 하지말고 국민이 기꺼이 세금을 낼 수 있는, 공정 조세제도를 확립하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했다는 것이다. 그럴 의지도 없었고 시스템적으로도 불가능했기에 존 로의 사탕발림에 나라의 운명을 맡긴 것이다.

하지만 도박과 투기 중독이라는 망국병은 쉽게 치유될 수 없다. 상식과 양심을 잃어버린 국민들이 다시 각성하기 위해서는 오랜 세월과 많은 땀, 엄청난 피를 흘려야만 한다는 진리를 로우의 실패는 가르쳐주었다. 영국의 소설가 올더스 헉슬리는 "역사의 매력과 불가사의한 교훈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내려오는 동안 아무 것도 변한 것은 없지만 그렇다고 같은 것 또한 단 하나도 없다는 점"이라고 설파한다.

탐욕한 인간들은 실패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려 하지 않는다. 경제의 역사란 그처럼 인간의 우둔함과 아집을 확인하는 과정의 반복인지도 모른다. 금융위기, 아니 모든 위기의 원인은 사실 무관심이 아니라 탐욕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