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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소리로부터 시작되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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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소리로부터 시작되었나니…

[홍성훈의 오르겔이야기(44)] 가평의 채플

[글로벌이코노믹=홍성훈 오르겔 바우 마이스터] 2011년 2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일부분인 첫 홀이 완공되면서 마침 5대의 트루에 오르겔(가장 작은 오르겔)이 완성되어 기념연주회가 있었다.

보통 완성된 오르겔은 태어나자마자 곧 바로 각자의 갈 곳으로 정해져 떠나게 된다. 다섯 쌍둥이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에 마지막으로 서로 소리를 맞춰보는 화합의 의미와 5대의 파이프오르간이 동시에 연주할 때 어떤 화음이 나올까 궁금해서 연주회를 연 것이다. 서울시 디자인재단에서 ‘디자인, 오르겔을 만나다’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행사였다. 사실 오르겔 문화가 발달된 유럽이나 북미 등에서도 여러 대의 오르겔이 한 자리에서 한꺼번에 연주하는 경우는 보기 드문 일이다.
그날 연주한 마지막 5번째 트루에 오르겔이 가평의 한 작은 채플에 도착했다. 건축물이 5년여만인 2014년에 완공되어 기념 준공식과 함께 오르겔과 앙상블의 연주회가 열렸다.

▲현악앙상블과의협연(오르겔:이민자교수)
▲현악앙상블과의협연(오르겔:이민자교수)
가평의 깊은 산 속에 있는 이 채플(카펠레)은 그 당시 아직 건축의 시작도 못한 상황이었다. 우선 300~400여석의 작은 채플이지만 그 건축물의 조감도를 보면 바깥쪽은 직선 구조로 되어있고 안으로 들어오면 둥근 반 원구형 형태를 띠고 있다. 밖과 안이 전혀 다른 느낌을 주는 건축물이다. 수직으로 천장과 바닥을 둘러싸고 촘촘히 박힌 홍성이 마치 떠 받치고 있는 듯한 모습에 압도감과 경건함이 함께 공전하는 매우 특이한 건축물이라 여겼다.

한국에도 이젠 이런 예술적 건축물을 볼 수 있게 되었다. 프랑스의 베르사이유대학 한국인 신 형철 교수가 설계를 맡았다.

▲가평채플내부
▲가평채플내부
한국에 귀국하면서 언젠가는 트루에 오르겔을 제작할 수 있기를 꿈꾸어왔다. 이 작은 오르겔은 구조나 기능 등은 일반적 오르겔과 같지만 크기는 1미터를 넘지 않는다.

아시아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만큼 시도한 적이 없는 이 프로젝트를 어느 순간 4대를 동시에 제작하는 기적같은 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하나는 전국의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 제작의뢰를 하였던 십대들의 쪽지 편집인 고 김 형모 선생님, 두 번째 성공회주교좌대성당의 합창단을 위해 오래전부터 소망을 간직해온 90여세의 한 교우께서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남기고 가기를 원해 그 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쾌척한 오르겔이고, 세 번째는 선교의 꿈을 꾸며 평생 오르겔을 소장하는 비전을 꿈꾸며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오르겔을 배워왔던 KBS오케스트라의 오보이스트 윤혜원 선생님, 네 번째는 한국의 콘서트 홀에 오르겔이 없음을 안타까이 여겨 한국에서 제작된 오르겔을 반드시 세우겠다고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던 세라믹팔레스 콘서트홀을 위한 것이었다.

▲트루에오르겔
▲트루에오르겔
내친김에 예정에 없었던 하나를 더 추가하면서 5대가 동시에 본격적으로 제작이 시작되었다. 그 마지막 하나는 사실 나의 제작소에 세울 오르겔이었다.
오르겔제작가로서 지난 25년여 동안 적지 않은 오르겔을 지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오르겔은 없었다. 제작소를 찾아오는 음악가 등 방문객들에게 수시로 제작소에서 연주회를 개최하여 파이프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소망을 간직해왔다.

하지만 한 개인이 소장하는 것보다는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소리를 듣고 평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에 뜻하지 못한 가평의 한 채플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 마지막 오르겔이 현재 가평의 한 채플에 비로소 안치되게 되었던 것이다.

화가가 좋은 화폭을 갖고 싶어하는 바람처럼 오르겔제작가 또한 좋은 건축물에 세워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소리를 빚어내는 것은 오르겔이지만 그것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고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건축물이다. 그 건축물에 견주해볼 때 한없이 아주 작아 보이기만 하던 그 첫 소리가 공간을 타고 퍼지기 시작하면서 마치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터진 아기의 울음처럼 전 홀을 가득히 메울 때 나 스스로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건축설계한베르사이유대학신형철교수(오른쪽)와필자
▲건축설계한베르사이유대학신형철교수(오른쪽)와필자
저 작은 오르겔에서 나오는 파이프소리들이 건축 바깥유리와 수직으로 길게 뻗은 홍성나무들 사이를 오고가며 부딪치면서 연못의 파장처럼 퍼져나가는 것이 눈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벅찬 감사와 감동으로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세상은 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생명을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으며 창문 밖의 하늘을 가로질러 우주를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