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훈의 오르겔이야기(44)] 가평의 채플
[글로벌이코노믹=홍성훈 오르겔 바우 마이스터] 2011년 2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일부분인 첫 홀이 완공되면서 마침 5대의 트루에 오르겔(가장 작은 오르겔)이 완성되어 기념연주회가 있었다.보통 완성된 오르겔은 태어나자마자 곧 바로 각자의 갈 곳으로 정해져 떠나게 된다. 다섯 쌍둥이를 떠나보내는 아쉬움에 마지막으로 서로 소리를 맞춰보는 화합의 의미와 5대의 파이프오르간이 동시에 연주할 때 어떤 화음이 나올까 궁금해서 연주회를 연 것이다. 서울시 디자인재단에서 ‘디자인, 오르겔을 만나다’라는 이름으로 기획한 행사였다. 사실 오르겔 문화가 발달된 유럽이나 북미 등에서도 여러 대의 오르겔이 한 자리에서 한꺼번에 연주하는 경우는 보기 드문 일이다.
그날 연주한 마지막 5번째 트루에 오르겔이 가평의 한 작은 채플에 도착했다. 건축물이 5년여만인 2014년에 완공되어 기념 준공식과 함께 오르겔과 앙상블의 연주회가 열렸다.


아시아에서는 아직 이렇다 할 만큼 시도한 적이 없는 이 프로젝트를 어느 순간 4대를 동시에 제작하는 기적같은 일이 눈앞에 다가왔다. 하나는 전국의 청소년들에게 좋은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 제작의뢰를 하였던 십대들의 쪽지 편집인 고 김 형모 선생님, 두 번째 성공회주교좌대성당의 합창단을 위해 오래전부터 소망을 간직해온 90여세의 한 교우께서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남기고 가기를 원해 그 동안 모아두었던 돈을 쾌척한 오르겔이고, 세 번째는 선교의 꿈을 꾸며 평생 오르겔을 소장하는 비전을 꿈꾸며 어릴 때부터 어머니에게서 오르겔을 배워왔던 KBS오케스트라의 오보이스트 윤혜원 선생님, 네 번째는 한국의 콘서트 홀에 오르겔이 없음을 안타까이 여겨 한국에서 제작된 오르겔을 반드시 세우겠다고 오래전부터 기다려왔던 세라믹팔레스 콘서트홀을 위한 것이었다.

오르겔제작가로서 지난 25년여 동안 적지 않은 오르겔을 지었지만 정작 자신을 위한 오르겔은 없었다. 제작소를 찾아오는 음악가 등 방문객들에게 수시로 제작소에서 연주회를 개최하여 파이프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소망을 간직해왔다.
하지만 한 개인이 소장하는 것보다는 보다 많은 이들이 이 소리를 듣고 평안과 기쁨을 얻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생각에 뜻하지 못한 가평의 한 채플의 제안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 마지막 오르겔이 현재 가평의 한 채플에 비로소 안치되게 되었던 것이다.
화가가 좋은 화폭을 갖고 싶어하는 바람처럼 오르겔제작가 또한 좋은 건축물에 세워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소리를 빚어내는 것은 오르겔이지만 그것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고 주체할 수 없는 감동을 주는 것은 바로 건축물이다. 그 건축물에 견주해볼 때 한없이 아주 작아 보이기만 하던 그 첫 소리가 공간을 타고 퍼지기 시작하면서 마치 오랜 세월을 기다렸다가 한꺼번에 터진 아기의 울음처럼 전 홀을 가득히 메울 때 나 스스로도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세상은 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 생명을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으며 창문 밖의 하늘을 가로질러 우주를 넘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