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인호, 김주빈이 풀어가는 현대무용은 닐스 프람(Nils Frahm)의 여러 곡을 믹싱하여, 놀이같은 독특한 형식과 방법론을 구사한다. 복면을 쓴 채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무대에서 등장하며, 카메라 셔터를 계속 눌러대는 행위는 춤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든다. 오만과 과오처럼 비쳐지던 반복적 행위는 그 원인에 귀기울이다보면 긍정적 수긍의 몸짓임이 밝혀진다.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행복한 기억, 슬픈 기억, 좌절하고 포기하고 싶었던 기억들, 돌아가고 싶은 순간에 대한 기억 등 다양한 기억들을 안고 산다. 그 기억에 대한 회상을 관객들과 공유한다.’ 무대의 전반부는 기본 조명을 깔고, 관객들과 분리되지 않고 오픈 형식으로 진행된다. 슬픔을 털고 자신을 드러내는 후반부조차 자신의 현실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없어한다.
김주빈이 보는 춤은 그 자체가 실제이고 현실이지만, 춤이 끝나고 남는 이미지는 허구이고 가상일 수 있음을 그는 인식하고 있다. 재빨리 현실로 돌아가야 하지만, 현실의 무게는 녹녹치 않은 폐쇄회로처럼 닫혀있다. 음악도 없이 건조하게 진행되는 전반부의 행위는 마른 눈물의 흔적이다. 비극 내에서 그가 구체적 모습을 드러낼 때 슬픔은 강도를 더한다.
안무가가 보는 세상은 프레임 안에 담기는 피사체처럼 스쳐가고, 끊임없이 다른 시선과 부닥치게 된다. 머물 수 없는 예술가들의 슬픈 사연이 밝혀진다. 남의 입을 빌어서 자신을 투영시키는 영상은 즉각 효력을 발생하고 동시에 진행된다. 보다 밀도 높은 형이상학적 테제로 카타르시스를 꾀했던 김주빈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빗겨나간 듯 한 느낌을 준다.
후반부에 김주빈은 서서히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흐린 조명 속에서 드러난 그는 소통을 원한다. 조인호와 하나가 된 김주빈, 그들은 극기와 희망의 메시지를 띄운다. 섬세한 감성으로 접근한 이 작품은 보다 많은 춤 동작을 원하는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이런 류의 많은 작품들은 사연을 쌓아놓고, 결론부에 한방씩을 터트린다. 결론, 그는 정체불명이 아니다.
『삶은 계란』, 『더미』, 『더미 시리즈Ⅱ: 입, 출 (Input, Output)』, 『더미 시리즈Ⅲ: 間(간)』같은 안무작에서 자신의 개성을 보여주었던 김주빈은 문명의 이기와의 싸움에서 바보가 되기로 결심했다. 더욱 버려야 할 때, 그는 깨달을 것이다. 그가 뒤틀린 세상을 바로잡는 진정한 용기는 전위적 춤이 아니라 오직 춤의 기교가 빛나는 춤으로 정면 승부를 거는 일이다.
/장석용 춤비평가(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회장)
안무가 : 김주빈
계원예술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무용학과 졸업 및 동대학원 수료
임학선댄스위 정단원
수상경력
제 44회 동아무용콩쿨 한국무용 일반부 창작 금상.
제 50회 전국신인무용콩쿨 한국무용 일반부 창작 은상.
제 9회 서울국제무용콩쿨 Creative Ethnic Dance, Senior Male 3rd Prize.
제 42회 동아무용콩쿨 한국무용 일반부 창작 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