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245)] 문명의 충돌/문명의 공존
최근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전쟁이나 테러는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흔히 하는 말로 우리가 세계화된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밖에서 벌어지는 일이 그저 ‘그들’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와 ‘나’에게 직간접으로 또 실시간으로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국제 뉴스가 포털사이트의 첫머리를 장식하는 기사 한 줄에 불과하다고 할 수 없는 이유이다.국제적 사건들을 하나의 내러티브로 엮는 솜씨를 유감없이 보여준 책이 바로 새뮤얼 헌팅턴이 쓴 <문명의 충돌>(김영사)이다. ‘문명사적 관점에서 국제질서의 변화를 예견’했다는 이 책이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때가 1997년이니까 벌써 17년 전이다.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이 꾸준히 이 책을 찾고 있다. 그것은 이 책이 외신에 등장하는 다양한 정치집단의 물리적 충돌을 ‘명쾌하게’ 설명하는 힘을 보여주기 때문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헌팅턴 논리는 단순하다. 세계는 몇 가지 문명권으로 나뉜다. 문명 간에는 충돌이 불가피하다. 문명의 단층선을 경계로 국제분쟁이 벌어진다. 서구와 비서구의 충돌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세계 주요 문명은 중화, 일본, 힌두, 이슬람, (그리스)정교, 서구, 라틴 아메리카, 아프리카이다. 냉전 시대가 보여준 양극성이 사라지고 다극 다문명 세계의 복잡한 관계가 출현한다. 예를 들어, 서구는 인도와 미약한 갈등을, 중화와는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다. 반면 중화는 이슬람과 미약한 갈등을, 힌두와 심각한 갈등을 겪는다(330쪽 도표 참고).
그는 단순한 도식을 통해 국제 질서를 한눈에 파악하게 해준다. 이에 따르면 어째서 중동에 사는 젊은이가 청바지를 입고 햄버거와 코카콜라를 먹고 마시고 랩을 흥얼거리면서도 반미(反美)감정을 갖게 되는지 설명할 수 있다(72쪽). 곧 국제 정치평론가의 해설을 통하지 않고도 세세한 사건들을 해석할 수 있는, 소위 ‘프레임’을 갖게 된다. 그래서 명쾌하고 쉽다. 이 책이 지닌 매력은 바로 이러한 느낌에 있다고 하겠다.
하지만 허팅턴의 논리는 책 출간 당시부터 지금까지 논쟁의 한 복판에 놓여있다. 비록 책 끝에 문명 간 충돌이 세계 평화에 걸림돌이므로 이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지만, 허팅턴에 대한 반론은 그에 대한 호평 못지않다. 대표적으로는 그가 미국 보수주의 학자라는 점에 주목하는 사람이 많다. 책 자체는 어떨지 몰라도 배경을 이루는 관점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이다. 겉으로는 문명론을 통해 국제질서를 새롭게 해석하고, 이를 기반으로 냉전 이후의 상황을 정리하여 미래의 평화를 마련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결국 서구 문명을 모범으로 내세우는 편파적인 시각을 드러낸다는 비판이다. 허팅턴에 의해 중화 문명권에 속하게 된 한국과 한국인의 입장에서 깊이 새겨볼 대목이 아닐까 싶다.
<문명의 충돌>를 심정적 또는 정서적으로 동조나 거부하는 차원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전문적인 논의 대상으로 삼고자 한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 <문명의 공존>(푸른숲)이다. 프랑크푸르트 대학 국제관계학 교수인 하랄트 뮐러가 허팅턴에 대한 반론임을 공언하면서 저술한 책이다. 원저는 1998년에 나왔고 번역서는 2000년에 나왔다. 이 책들의 출간 연도를 관찰해보면 얼마나 논쟁이 격렬했는지(또 지금도 격렬한 상태인지) 알 수 있다.
뮐러는 허팅턴의 이론을 요약 소개하고, 이를 조목조목 반박한 후 자신이 생각하는 전망을 제시한다. 그가 제기하는 반론은 예를 들어 다음과 같다. 허팅턴은 서로 다른 문명에 속하는 집단 간 분쟁 중 상당수가 이슬람과 비이슬람 간에 벌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통계를 잘못 해석한 결과로, 범위를 조금만 넓힌다면 이 두 문명의 분쟁은 평균치에 불과하다. 보스니아 전쟁의 경우 허팅턴의 분석은 사실관계가 틀렸으며, 그가 제시한 문명의 충돌 도식에도 들어맞지 않는다.
그러나 뮐러의 비판 중 가장 중요한 대목은 과연 단순한 세계 이론이 필요한가? 하는 더욱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 제기다. 이른바 ‘오캄의 면도날’ 논쟁이다. 단순한 기본 가설로 많은 것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이 가장 훌륭하다는 시각은 정당한가. 뮐러는 미국 학자들이 절약적 이론을 선호한다는, 다소 유럽적인 관점을 보여준다. 하지만 국제 질서에서 결코 그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는 나라 곧 미국이 세계를 보는 관점은 늘 중요한 변수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결코, 유럽-미국이라는 해묵은 이분법을 들이대어서는 안 된다.
뮐러는 문명과 문화를 분리하여 생각해야 하며, 이런 점에서 허팅턴의 ‘문명’ 개념이 너무 단순하다고 지적한다. 특히 허팅턴이 규정한 문명이 사실은 종교 개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그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하고 편향되게 분석한다고 본다. 이어서 뮐러의 논의는 문명 간 충돌이 아니라 대화가 필요하다는, ‘명쾌하지 않은’ 결론으로 이어진다. 이론적 틀과 생활 세계는 다를 수밖에 없으며, 우리가 실제로 접하는 세계는 복잡할 수밖에 없다는 본인의 전제와 잘 통하는 끝맺음이다.
<문명의 충돌>과 <문명의 공존>, 논쟁하는 이 두 책을 출판유통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어떨까. 허팅턴의 책은 지금도 꾸준히 팔리고 있다. 반면에 뮐러의 책은 절판되어 도서관에서나 구할 수 있다. 아마 다양한 변수가 작용한 결과로 생각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충돌’은 독자들이 꾸준히 찾고 있지만, ‘공존’은 그 빈도가 훨씬 떨어진다는 현실이다. 뮐러가 허팅턴에 반론을 제기했듯, 나는 이런 유통적 현실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김우영 경기 안양여고 교사
- 『문명의 충돌』, 새뮤얼 헌팅턴, 김영사, 1997.
- 『문명의 공존』, 하랄트 뮐러, 푸른숲, 2000.
2014년 10월 1일(수)
이젠, 읽을 때!
(사)전국독서새물결모임 회원 김우영
경기 안양여고 교사, compunk@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