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따뜻한 독서편지(270)] 카렐 차페크 평전
프라하 한인교회에서 <카렐 차페크 평전>의 저자 김규진 교수님을 만난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한국에 있을 때도 메일로 교수님과 연락을 취한 적이 있었는데 낯선 이곳에서 얼굴을 뵙고 말씀을 나누게 된 것은 정말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김규진 교수님은 저를 보시자 대뜸 얼마 전 출간한 <카렐 차페크 평전>을 건네시며 함께 차페크의 생가에 가자고 하셔서 흔쾌히 그의 흔적을 찾아 나서게 되었습니다.카렐 차페크의 생가는 프라하 시내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 있어 차를 타고 수월하게 갈 수 있었지만 아쉽게도 내부 수리 중이라 문이 굳게 닫혀 있었습니다. 결국 집 주변을 돌아보며 외양만 보게 되었는데 다락방이 있는 빨간 지붕의 3층 집은 벽이 온통 붉은 담쟁이 넝쿨로 덮여 있어 완연한 가을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문 옆에는 20세기 체코 문학의 가장 중요한 작가인 카렐 차페크와 유명한 화가이자 사진가, 무대미술가인 요세프 차페크의 초상화와 명패가 나란히 붙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차페크 형제들’이라는 공동 필명으로 작업을 하고 이 생가를 중심으로 문학 커뮤니티를 만들어 활동을 했다고 하니 이곳이 그들 작품의 산실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가에서 멀지 않은 곳에 카렐 차페크 형제의 기념관이 있어 둘러보았습니다. 그곳에 <카렐 차페크 평전>에 소개된 카렐 차페크의 원저서가 여러 권 있어 관심 있게 보았습니다. 그 중 1920년에 발표된 이라는 책은 이미 우리말로 번역된 지 오래된 것인데 이 작품에서 처음으로 ‘로봇’이라는 용어가 쓰였다고 합니다. 차페크는 체코어의 ‘로보타’에서 글자를 따서 로봇이란 낱말을 만들었습니다. ‘로보타’란 강제노동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로봇이 권력을 잡고 인간을 말살하는 장면을 통해 현대 기술 문명의 비인간화를 상징적으로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차페크의 마지막 흔적은 비셰흐라드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비셰흐라드는 고지대에 위치하여 한눈에 아름다운 블타바 강과 프라하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으로, 이곳의 한켠에는 드보르작이나 스메타나, 얀 네루다 등 체코인들이 사랑하는 유명인들의 무덤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무덤은 살아 있을 때 모두 저마다의 개성과 능력을 발휘했던 것처럼 죽어서도 각자 다른 모습의 묘비로 거기에 서 있었습니다. 카렐 차페크의 묘비에는 책이 펼쳐 있고 펜대가 세워져 있어 하늘나라에서도 언제까지나 좋은 작품을 쓰고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카렐 차페크의 마지막 흔적을 살펴보면서 먼 훗날 나는 어떤 모습으로 이 지상에 남을 것인지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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