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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로 질주하는 한국…행복한 노년 조건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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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령사회로 질주하는 한국…행복한 노년 조건은?

[심리학자 한성열의 힐링마음산책(57회)] 더 이상 노년기가 슬프지 않아야 한다

복지환경 아무리 좋아도 부정적 편견 극복해야


삶 전체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부터 바꾸자


[글로벌이코노믹 한성열 고려대 교수] 오복(五福) 중에서도 수복(壽福)을 중하게 여겼던 조상들의 바람을 보통 사람들도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인구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보통 65세 이상 인구비율이 7%이면 ‘고령화사회’, 14%가 되면 ‘고령사회’, 20%를 넘어가면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고령화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의 진입에 프랑스는 154년, 영국은 99년, 미국은 90년, 독일은 77년 소요되었고 일본은 35년 걸렸다. 한국은 2000년 고령화사회에 진입했고 2017년이면 고령사회에, 2026년에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는 초고속으로 초고령사회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노년기는가능하면회피해야할시기가아니라오히려고대하고반겨야할시기다.노년기에접어든어른신들이북구정신건강센터에서마련한프로그램을하고있다.
▲노년기는가능하면회피해야할시기가아니라오히려고대하고반겨야할시기다.노년기에접어든어른신들이북구정신건강센터에서마련한프로그램을하고있다.
수명이 길어진다는 것은 분명 다행한 일이다. “늙으면 죽어야 된다”고 노인이 말씀하는 것은 장사하는 사람이 “밑지고 판다”는 것과 처녀가 “시집 안 간다”는 것과 더불어 3대 거짓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회자될 정도로 누구나 오래 살려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 아마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는 다 오래 살려는 노력을 할 것이다. 이제 생물학적으로 오래 사는 것은 점점 해결되어 간다. 오히려 20세기 이래 인류가 처음으로 맞닥뜨리는 ‘인구고령화’ 현상이 과연 축복일지 아니면 재앙(災殃)일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 형편이다. 우리 주위에는 경제적으로 몹시 궁핍하게 생활하는 노인들이 “왜 이리 명줄이 긴지 모르겠다”고 진심으로 말씀하는 것을 흔히 들을 수 있다.

노년기가 길어지는 것이 축복이기 위해서는 그 시기가 행복해야 한다. 불행한 시기가 길어진다는 것은 재앙에 불과하다. 노년기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많은 요인들이 갖추어져야 한다. 먼저 건강해야 하고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야 하고 보람 있는 일을 원하는 만큼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이것은 비단 노년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연령층에 다 해당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개인은 물론 정부도 노년을 위한 복지와 의료정책을 잘 수립하고 시행하여야 한다. 하지만 이런 환경을 개선하는 복지 정책 외에 행복한 노년기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노년에 대한 부정적 편견을 극복하는 일이다. 아무리 건강하고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는 복지 환경을 제공한다고 해도 사회와 본인 스스로 노년에 대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면 행복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우리 사회는 노인은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라는 편견이 있다. 이런 편견을 ‘연령차별주의(ageism)’라고 부른다. 원래 우리의 전통적 문화에서는 노인을 공경하고 우대하는 것이 당연할 뿐만 아니라 강조되는 전통이 이어져왔다. 노인들은 상석(上席)에 앉고 제일 좋은 음식을 대접받으며 젊은 사람들에게 조언하고 충고하는 ‘연장자(年長者)’의 대우를 받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반대로 젊은이는 연장자를 모시는 것이 당연하고 바람직하다는 교육을 받아왔다. 이런 ‘연장자우대주의(gerontocracy)'를 바람직한 것으로 보는 사회에서는 노년기는 가능하면 회피해야 할 시기가 아니라 오히려 고대하고 반겨야 할 시기로 인식하게 된다.

하지만 20세기 이래 사람의 가치를 경제적 기여(寄與) 여부로 판가름하는 자본주의적 이념이 대체하게 되었다. 이 결과 나이보다는 경제적 사회적 공헌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한 가치로 되었다. 이 결과 노인보다는 더 활기차게 일할 수 있고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 더 빨리 효율적으로 적응할 수 있는 젊은이들이 더 사회적으로 필요하고 더 대우를 받아야한다는 의식이 커지게 되었다. 이처럼 ‘능력자우대주의(meritocracy)'가 팽배한 사회에서는 당연히 신체적인 면에서 열세에 놓일 수밖에 없는 노인에 대한 평가는 하락하게 된다. 그 결과 노년은 더 이상 대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로 가정과 사회에 백해무익(百害無益)한 존재라는 편견이 싹트기 시작했다.

노년에 대한 편견은 이상에서 언급한 사회·문화적인 변화에만 기인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일생을 바라보는 심리적인 관점도 편견에 크게 일조하고 있다.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모든 것은 변화한다. 이런 변화 중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을 ‘발달(發達)’이라고 부른다. 경제나 정치가 발달했다는 것은 과거 어느 시점과 비교해서 현재 정치 경제가 좋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린이는 태어나서부터 언어가 발달하고 인지(認知)가 발달하고 성격이 발달하고 사회성이 발달한다. 심리학에서도 어린이가 태어나서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변화해 가는 과정을 연구하는 분야를 ‘발달심리학’이라고 부른다.

‘발달’이라는 용어는 따라서 쉽게 ‘성장(成長, growth)’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어린이가 발달해 간다는 것은 성장해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성장한다는 것은 물론 긍정적으로 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부정적 성장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발달을 성장으로 인식한다면 우리의 삶은 세 단계를 거쳐 변화해간다. 첫 번째 단계는 태어나서 청년기까지의 시기이다. 이 시기에 어린이들은 신체적으로 심리적으로 발달해간다. 말을 못하던 갓난아이가 언어능력이 발달해서 말을 하기 시작한다. 키가 작던 어린아이가 점점 신장(身長)이 커가서 청소년이 되면 어른과 같은 정도로 성장한다. 인지 능력도 발달해서 말귀를 못 알아듣던 어린이가 청년이 되면 이제는 어른들과 대등한 위치에서 열띤 토론도 할 수 있게 된다.

이런 발달은 청년기까지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개개인의 삶과 관련된 대부분의 발달은 청년기에 그 정점(頂點)에 달한다. 키는 청년기까지 크고 더 이상 자라지 않는다. 새로운 것을 학습하고 응용할 수 있는 인지능력도 청년기에 최고조로 발달한다고 추정한다. 신체적인 능력도 청년기에 제일 발달해서 프로운동선수들은 아무리 열심히 체력을 유지하려고 해도 30대 중반에 이르면 벌써 은퇴 압력에 시달리게 된다.

▲노년기가길어진만큼노년기를행복하게보내기위해노력해야한다.시카고에있는시니어시티즌안내표시.
▲노년기가길어진만큼노년기를행복하게보내기위해노력해야한다.시카고에있는시니어시티즌안내표시.
청년기에 최고조에 달한 발달의 경지는 그 이후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나이가 계속 먹어가지만 그만큼 계속 키가 커지지는 않는다. 기억력을 포함해 새로운 것을 학습하는 인지능력도 청년기를 지나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언어능력이나 그 외 거의 모든 능력은 청년기를 지나서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더 이상 발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청년기에서 노년기에 이르는 성인기(成人期)는 발달하는 시기가 아니라 기존의 상태를 ‘유지(維持)’하는 시기이다.

청년기를 지난 어른들에게 “나이에 비해 젊어보인다”는 인사를 하면 거의 대부분 “고맙다”고 답례를 한다. 너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대화이기 때문에 그 대화의 기저에 깔려있는 암묵적 가치에 대해서는 별로 고려하지 않고 사용한다. 하지만 ‘나이에 비해 젊게 보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기저에 깔려 있기 때문에 그런 인사를 할 수 있다. 만약에 젊게 보이는 것이 부정적이라면 그런 인사는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나이에 비해 젊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긍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인정받고 고마운 마음이 드는 것이다. “왜 나이보다 젊게 보이는 것이 좋을까?” 라는 질문은 물을 필요도 없는 것이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니까. “젊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축복이니까!”

중년기 이후는 절망의 시기이다. 노년기에 이르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더 이상 젊음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제는 ‘퇴보(退步)’의 시기로 들어간다. 커가 더 이상 자라기는커녕 노인이 되면 오히려 작아진다. 기억력이 더 좋아지기보다는 오히려 퇴보해 간다. 기력이 점점 쇠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아무리 머리를 염색하고 화장을 진하게 한다고 해도 늙어간다는 것을 감출 수는 없다. 따라서 노년기는 젊음을 ’우상시(偶像視)’하는 문화에서 부정적인 시기이고 더 이상 “쓸모없는” 시기가 될 수밖에 없다.

▲한성열고려대교수
▲한성열고려대교수
발달을 성장과 동일시하는 문화에서 생활한다면 우리의 삶은 결국 세 단계, 즉 청년기까지의 ‘발달’ 단계, 중년기의 ‘유지’단계, 그리고 노년기에서 사망에 이르는 ‘퇴보’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아무리 후하게 생각하려고 해도 ‘퇴보’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는 없다. 따라서 노년기는 회피하고 싶고 가능하면 늦게 맞아야 하는 시기이고 어쩔 수 없이 맞을 수밖에 없는 부정적인 시기이다.

이런 문화 속에서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아무리 젊어서 잘나가고, 체력이 뛰어나고 능력이 뛰어났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쓸모없는” 노년기를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역설적으로 건강하게 노년기를 맞는 사람은 평균적으로 이 시기를 30여년 살아야 한다. 이 슬픈 삶의 여정을 바꿀 수 있을까? 물론 있다. 그것은 삶 전체를 그리고 노년기를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글로벌이코노믹 한성열 고려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