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생애와 작품을 이해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곳, 힘들어 하던 그가 1년 간 머물며 200여 점의 작품을 남겼던 프랑스 남부의 따뜻한 작은 도시 '아를(Arles)'. 우리는 19세기 고흐가 그려낸 아를의 풍경 속에서 그의 예술적 천재성과 쓸쓸했던 마음을 동시에 발견할 수 있다.
"푸른 밤, 카페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어. 그 위로는 별이 빛나는 파란 하늘이 보여. …검은색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아름다운 파란색과 보라색, 초록색만을 사용해서 밤을 그렸어. 그리고 빛나는 광장은 밝은 노란색으로 그렸단다. 특히 이 밤하늘에 별을 찍어 넣는 순간이 가장 즐거웠어."
고흐가 자신의 여동생에게 쓴 편지에서 '아를르 포룸 광장의 카페테라스'(1888) 작품을 설명하는 구절이다. 그가 아를에서 얼마나 즐겁게 열정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는지를 느낄 수 있다. 파리라는 대도시에 지쳐있던 고흐는 1888년 2월, 작품 활동에 더욱 큰 열정을 품고 프로방스의 따사로운 도시 아를을 찾았다. 고흐는 당시 많은 인상파 화가들이 그랬듯이 일본의 우키요에(목판화)가 가진 단순한 선과 강렬한 색채를 동경했었다. 일본을 뜨거운 태양의 나라라고 생각했던 고흐는 프랑스 남부, 지중해와 가까운 아를이 마음속에 그렸던 일본의 예술세계와 맞다고 느꼈고 더 이상 자신에게 일본 미술이 필요 없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그가 아를로 내려간 이유는 매우 다양하지만 이렇듯 태양이 보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곳을 동경했던 것도 중요한 이유였다.
하지만 그 해 12월, 고갱과의 불화와 자신의 귀를 자르는 사건으로 고흐는 1889년 아를을 떠나 근처 생-레미의 정신병원에 입원한다. 그는 이 시기에 또 한 번 밤의 풍경을 그렸다. 그 유명한 '별이 빛나는 밤'(1889)이라는 작품이다. 이 작품은 론 강의 밤과는 다르게 무척 쓸쓸하고 우울한 느낌을 자아낸다. 우뚝 솟은 사이프러스 때문인지, 초승달 때문인지 스산하면서도 신비로운 밤의 풍경이다. 그 풍경은 아름다운 아를과 자신의 고향 네덜란드의 풍경을 결합하여 만들어낸 풍경이라고 한다. 잠 못 이루는 여름밤, 쇠창살 너머로 밤하늘을 바라보며 떠올렸을 아를과 고향의 풍경. 무엇이 그를 잠 못 들고 고향을 그리워하게 한 것일까. 흥미롭게도 아를에서 행복했던 시기에 그린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1888)과 발작 증세가 악화되고 힘들었던 시절 정신병원에서 그린 '별이 빛나는 밤'(1889), 이 두 작품은 모두 고흐가 남긴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밤 풍경 작품으로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1890년 7월 고흐는 결국 권총자살을 기도한다. 그리고 이틀 뒤 고흐는 숨을 거둔다. "산다는 것, 그 자체가 인생의 고통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그는 그렇게 자신의 고향을 떠나고 테오와 함께 살던 파리도 떠나 정착한 남프랑스에서 짧지만 격정적인 시간을 보내고 결국 숨을 거둔 것이다. 특히 고흐가 생-레미의 요양 생활을 하기 전, 아를에서의 1888년은 그의 생애에서 가장 열정적으로 자신의 예술세계에 가장 집중해 유명한 대작들을 남긴 시기이고 세상을 떠나기 전 아름다운 꿈과 낭만을 좇으며 그림을 그리던 시기였을 것이다. 아를에 가게 된다면 돈 맥클린의 '빈센트' 노래 가사를 떠올리며 론 강을 거닐어보기를 바란다. '별이 빛나는 밤. 푸른색과 회색으로 칠해요. 여름날 밖을 내다보죠. 내 영혼의 어둠을 아는 그런 눈으로….'
강금주 이듬갤러리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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